넓은 무대 공간, 대형 스크린에 갈색 도자기 그림이 등장한다.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단순한 물체 형상이다. 무대 앞의 한 사람이 가상현실(VR) 기기를 꺼내 들자 현장 분위기가 급변한다.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와 손동작 인식 장비를 착용한 이 프로그래머가 도자기를 손으로 빚어내는 동작을 하자 스크린 속 도자기의 모습이 그에 따라 바뀌었다. 글로벌 소프트웨어 업체 어도비가 지난 8월 세계 최대 컴퓨터 그래픽 콘퍼런스인 ‘시그라프 2022’에서 선보인 기술이다.
HMD를 쓰고 콘텐츠를 시청하는 한 방향 소통은 옛말이다. 메타버스가 새로운 ‘패권 기술’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현실과 구별이 어려울 정도의 가상 공간이 구현됐고, 두 세계가 상호작용할 수 있음이 사례로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메타버스 분야에서 뚜렷한 승자 없이 기업들이 ‘군웅할거’하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증강현실(AR)·VR 기술과 콘텐츠 품질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곧 승자가 모든 수익을 벌어들이는 독식 현상이 벌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실과 구별 힘들어진 가상현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가 11일(현지시간) 신형 VR 헤드셋 '메타 퀘스트 프로'를 공개했다. 메타 동영상 갈무리AR·VR을 기반으로 한 메타버스는 점점 차별화되고 있다. 메타의 메타버스 조직 리얼리티랩스는 기존보다 100배 정확한 명암을 구현하는 HMD를 만들고 있다. 구름과 태양광, 암석의 선명도가 현실과 대등한 1만6000니트(nits·1니트는 촛불 1개 밝기)까지 구현한다. 이를 위해 연간 12조원 상당의 적자를 낼 정도로 자금을 퍼붓고 있다.
메타가 11일(현지시간) ‘메타 커넥트 2022’에서 선보인 차세대 VR헤드셋 ‘메타 퀘스트 프로’도 그 연장선에서 내놓은 야심작이다. 이 헤드셋은 가상 세계와 실제 세계를 혼합하는 혼합현실(MR)까지 구현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현실 세계와 VR을 결합해서 구현하고 이를 상대방과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며 “상대방이 울고, 웃고, 먹는 등의 몸동작을 가상공간에 구현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메타버스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는 수단이자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메타와 VR 기기 경쟁을 벌이는 대만 HTC는 미국 스타트업 메타스테이지와 협력하고 있다. 소수의 소품만으로 나무의 흔들림과 인간의 손짓까지 정밀하게 구현하는 촬영 장비를 재조한다. 카메라 트래킹 기술의 글로벌 ‘빅3(옵티트랙·퀄러시스·비콘)’ 업체들은 트램펄린에서 뛰거나 모형 칼을 휘두르는 모습 등 다양한 역동적인 동작을 가상으로 구현한다. 3차원(3D) 게임엔진 세계 1위 업체인 유니티는 동물의 털을 한 가닥 단위로 구현하는 소프트웨어를 내놨다. 모두 자신만의 영역에서 잠재 경쟁자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움직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