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과 창조론의 합리성에 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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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27, 2005, 12:05:36 PM10/27/05
to veritasdei
진화론에서 창조론이라고 하는 입장을 비판하고
있다고 할 때에 그러한 비판의 실제적 의미는
상실한다고 말할 수 있다.

비판할 수 있다는 것과 비판의 정당한 성립이라고
하는 것은 다르게 나타 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객관적인 입장이다.


1. 진화론의 창조론 비판에 대하여서..

진화론에서의 창조론을 비판함에 있어서
합리성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것 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합리성이라고 하는 것이 그 객관성을 전혀
보장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을 말할 수 없을 때에는
그 비판의 실제도 의문시 되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진화론의 합리성이라고 하는 것이 객관성을
취한 합리성이면서도 그것은 상대적보편이라고 함에
있어서 그 주관적 객관이라고 함을 말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것은 주관적 객관이라는 개념을 보완할 수
있는 객관적이라는 동의적 정당함을 의지하기
마련이다.


주관적 객관이라고 함으로 진화론을 평가하는 것은
이미 하나의 진화론의 합리성에 비판적 실제를 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공인되어질 수 있는 객관적인
실제의 판단이 있다고 함을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은 메를로 퐁티의 눈과 마음이라고 함에서
밝히고 있는 과학비판이 되어지기 때문이다.(각주1)


2. 창조론의 실제이해..

창조론도 과학적 범주로서 제한되어질 수 있고
형태적 상관성을 생각할 때에 메를로 퐁티의
판단이라고 함에 있어서 창조론적인 입장을
실제적이라고 함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창조론을 말하고 있음에 있어서 과학의
형태를 취하고 표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조론이라는 것은 자존의 절대자의 행함이라고 하는
특수성을 가지며 그 특수성이 상대적 보편을
판단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즉 절대보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합리적 비합리성이 있다는 그러한 판단이라고
하는 것이 절대의 재가적인 차원에서 절대의 자기
정당함을 가진 증거로서 나타나는 상대적인
입장이라고 할 때에 그 앞선 판단 합리적
비합리성이라는 상대적 보편의 판단이라고 함의
종속적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자존의 절대자의
실제적 정당함을 부여받은 것으로써의 상대적
비합리성은 자체적 정당함을 가지게 된다.


즉 창조론은 과학적으로 비합리적인 표현이
가능하다고 하여도 자체적 정당함을 표현하는
가운데서 상대적 보편이라고 함의 기본적
정체성으로부터 동의를 받는 정당함을 의지하는
진화론적 판단을 받지 않는 것이다.

3.more..

과학의 이러한 상대적 보편의 판단을 받게 되어지는
그 실재의식은 시간의 보편성이라고 함에서
판단되어지는데 시간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하여
시간의 실재성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였고 이러한
시간은 운동과 인식의 상관성 속에서 진화론의
합리성의 실제를 규정하는 인식의 주체적 정당함을
부여하게 되어지고 있습니다.

인식의 주체.. 인식의 객체.. 모두 상대적인 판단의
실제에 따른 것으로 상대적 판단과 상관없이
자존하는 절대자의 주체적 인식과 객체적 증거라
고 하는 것을 판단하는 것은 이미 그 정당함을
자체적으로 가질 수 없는 실재의식의 결여에 따른
것임을 말할 수 있다.

4. 결론에 즈음해서..

진화론이라고 하는 것보다도 더 깊이 이야기 되어질
것은 진화론의 합리성과 그것을 지지할 수 있는
사상적 실재가 되어지는 역사와 시간의 비판이 이미
되어지고 있고 자체적 정당함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
그것을 마음에 두는 것이 진화론과 창조론의 과학적
증거들에 대한 시비를 앞선다는 것을 말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칸트이후에 인식이라고 하는 것이
시간이라고 함의 보편적 판단하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할 때에 이미 이러한 것은 인식론적 규정 즉
인식론적 존재론의 자체적 정당성이 없는 합리성이
비판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말하게 됩니다.

한편 창로론도 그러한 인식론적인 측면에서의
상관성이라고 하는 특성적 비판을 받아야 함에는
당연하다고 함을 말할 수 있지만 그러한 비판에서
비합리성이라고 하는 것을 규정하는 상대적
보편인식으로서의 시간의 실재인식은 자존의
절대자의 상관성에서 규정되어지는 창조론의 파생적
정당함을 입어 상대적 비합리성이 정당함을 입어
절대적인 합리성으로 자체적 정당함을 입음을 비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비판의 실제를 상대적
보편에서는 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존의 하나님으로부터의 정당함을 입게 되어지는
비합리성의 표현을 정당하게 사용하시는 절대자의
자존의 절대정당함은 부인되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창조론이라고 함이 비합리성이 있으면서도 정당하게
받아야 되어지는 것은 과학의 판단하에서 비로서 그
실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존의 하나님의
실존에서 비로소 실존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각주1) 메를로 퐁티는 『눈과 마음』에서 다음과 같이
관찰한다. "과학은 사물들을 조작하고 그들에게서
그 생명성을 사상시켜버린다" 현상학은 과학의
양심(conscience)으로 작용하면서, (과학적으로 규정된)
이른바 객관적 범주로부터 눈을 돌리도록 해주어
그것이 원래 파생되어 나온 우리의 체험을 상기할수
있도록 해준다. 메를로 퐁티는 『지각의
현상학』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설득력 있는 말로서
자신의 비판을 표현한다.

'나는 내 자신을 단순히 세계, 즉 심리학적, 과학적,
그리고 사회학적 탐구의 대상으로서만 이해할 수는
없다. 나는 내 자신을 과학의 영역 안에
가두어둘 수는 없다. 모든 세계에 대한 나의 지식,
심지어 나의 과학적 지식 역시 과학적 기호들을
사용하는 나의경험으로부터 얻어진다. 과학의 모든
보편성을 직접적으로 경험된 세계 위에 성립되고
그리고 만일 우리가 과학 자체에 대한 엄밀한 반성을
수행하여 그 의미와 범위를 정확하게 평가한다면,
우리는 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경험으로서 과학은
이차질서(secondorder)의 표현이라는 점을 재
환기함으로써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은 그 본성상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와 같은
존재의 형식으로서의 의미는 지니지 못해왔으며,
앞으로도 결코 그런 지위는 지니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세계에 대한 추론 내지 설명이기
때문이다.

중략

지리학이 어떤 지역에 관해서 우리에게 숲과
대초원과 또는 강이 무엇인가에 관해서 미리
가르쳐주는 것처럼, 모든 과학적 도식화 역시
사상자체에대한 추상적 파생적 기호언어이다'

현상학의 소관사는 과학을 비판적으로 음미하는
것인데, 그 이론적 구조는 선천적(a priori)인 기반, 즉
메를로 퐁티가 우리의 '활동적 지향
성'이라고 말한 전 이론적 체험행위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메를로 퐁티의 과학비판은 자연과학의 위기는
객관성이라고 하는 그 '자연적 태도'가 세계에
대한 인간의 지향적관계를 '인위적으로'
균열시키고 있다는 것을 망각하는 데에 유래한다는
후기 후설의 논거에 크게 빚지고 있다. 현상학은
이러한 균열을 폭로하고 거기에 항변한다.(리챠드
커니, 현대유럽철학의 흐름, 임헌규외. 한울출판사 pp.
106~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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