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랑시에르 강연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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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11, 2008, 10:44:37 PM12/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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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적/미학적 전복La subversion esthétique

자크 랑시에르(파리8대학 철학과 명예교수)

홍익대학교 강연문, 2008년 12월 3일(수)

나는 미학[감성론]의 의미에 대해 내가 개념화한 것의 기본 요소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곧 알게 되겠지만 이 정의는 그 자체로 미
학과 정치 사이의 관계에 대해 특정한 관념을 내포하고 있다. 오늘날의 지배적인 담론들과 대립되는 관념을. 지배적인 담론들은 미학
을 취미판단과 관련된 사회 현실을 은폐하거나 철학적 사변을 위해서 예술적 실천[예술행위]을 왜곡하는 기생적 담론으로 만들려고 한
다.

프랑스에는 [미학을] 특히 신랄하게 비판하는 두 주요 형태가 있다. 어떤 저자들의 비난에 따르면, 서구에서 두 세기 전에 생겨
난 미학 전통, 보다 정확히 말하면 독일 관념론 철학의 맥락은 [계급에 따라] 상이한 감성적 태도가 있다는 현실을 [은폐하면서
그 태도를] 기만적으로 절대화한다. 이런 사회학적 비판을 특히 잘 보여준 것은 피에르 부르디외의 책, 󰡔구별짓기: 판단에 대
한 사회적 비판󰡕이다. 그 책은 󰡔판단력 비판󰡕의 중심 테마를 발본적으로 탈신비화하겠다고 자처했다. 칸트는 [󰡔판단력 비
판󰡕에서] 감성적 판단이란 대상의 형태에 무관심한 판단, 그리고 이 대상의 실제 존재에 결부된 선善 또는 쾌적에 무차별한 판단
이라고 생각했다. 부르디외는 [칸트가] 감성적 취미판단을 이렇게 독특하게 만들면서 사회 현실을 부인하고 있다고 보았다. 사회 현
실 속에서는 각 사회 계급이 자신의 존재방식에 상응하는 취미를 갖고 있으니 말이다. 부르디외가 보기에 무관심한 감성적[심미적]
판단은 ‘문화자본’을 충분히 소유한 자들이 [다른 계급과] ‘구별되는’ 취미를 지닌다는 현실을 가려버림으로써 [무관심한 감성적
판단을 하는 자가] 계급구별 위에 있다고 상상하게 만드는 철학적 가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미학적 사색에 대한 비난은 철학
내부에서도 올 수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해 분석철학으로부터 올 수 있다. 가령 분석철학 전통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 철학자 장-마
리 쉐퍼는 몇 년 전 󰡔미학이여 안녕󰡕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쉐퍼는 이전에 󰡔근대 시대의 예술: 18세기부터 지금까지의 미
학과 예술철학󰡕라는 책에서 [미학에] 작별인사를 하는 이유를 댄 바 있다. 쉐퍼는 예술행위 및 감성적 태도에 대한 구체적 분석
을 셸링의 󰡔예술철학󰡕과 헤겔의 󰡔미학󰡕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변적 미학의 악습과 대립시켰다. 쉐퍼에 따르면, 사변적
미학은 예술행위에 대한 구체적 연구를 대문자 예술의 절대화된 낭만적 개념으로 대체해버렸다. 사변적 미학을 괴롭히던 감각적인 것
le sensible과 지성적인[예지적인] 것l’intelligible의 화해라는 거짓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미학적 절대
l’absolu esthétique에 대한 이 철학적 비판은 ‘유토피아의 종언’을 둘러싼 현대 담론 같은 보다 큰 맥락에 각인되
어 있다. 이런 식으로 미학적 절대에 대한 철학적 비판은 예술적 모더니즘과 미학적 유토피아에 대한 고발과 쉽게 소통한다. 어떤
이들은 예술적 모더니즘과 미학적 유토피아가 예술을 삶의 형태로 변형시키는 것을 격찬하고, 그리하여 인민을 예술작품의 재료로 만들
어버린 전체주의로 가는 길을 열었다고 고발한다.

한편으로 반反-미학적 비판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예술의 절대화 또는 감성적 판단의 절대화에 맞서 [예술]행위들이 갖
는 현실성의 이름으로 추진된다. 다른 한편으로 다른 철학자들은 예술의 사건들이 갖는 급진성의 이름으로 미학 전통을 고발한다. 가
령 알랭 바디우는 󰡔비미학에 대한 작은 교과서󰡕에서 예술을 철학으로 봉합하는 것을 고발한다. 바디우는 예술작품들을 감각계 내
에서 벌어지는 관념Idée의 사건들로 만든다. 그래서 바디우는 이 사건적 역량의 이름으로 그는 시가 갖는 감각적 진리를 낭만적으
로 찬양하는데 타협해버린 미학을 거부한다. 특히 장-프랑수아 리오타르는 󰡔비인간󰡕과 󰡔포스트모던적 도덕성󰡕 같은 책에서
미학 전통이 근대 예술에 내재하는 단절의 역량을 봉쇄하려는 시도라고 고발한다. 리오타르는 이 [미학] 전통을 칸트의 미의 분석론
에 결부시킨다. 칸트의 분석은 개념을 통하지 않는 오성과 감성의 조화라는 관념에 바탕을 둔다. 리오타르는 칸트가 했던 미의 분석
론을 숭고라는 칸트의 또 다른 개념과 대립시킨다. 숭고 개념은 [미와는] 반대로 관념과 감각적 현실 사이의 그 어떤 조화로운 관
계로부터도 단절하기로 표시된다. 리오타르는 그런 식으로 근대 예술 전체를 이 숭고 개념의 현시로 만든다. 리오타르가 보기에 숭
고 개념은 예술적 모더니티의 과제를 정한다. 그 과제는 다음과 같다. 특히 구상figuration을 거부함으로써 지성적인 것과
감각적인 것 사이의 넘을 수 없는 틈을 표시하기. 리오타르가 말하는 식으로 하면 “표현 불가능한 것이 있음을 증언하기.” 리오타
르는 예술의 이 부정적인 과제와 미학의 긍정적인 니힐리즘을 대립시킨다. 미학은 황폐해져버린 문명의 관념들을 문화라는 이름 아래에
서 즐긴다. 미에 대한 미학적 니힐리즘과 숭고의 증언자로서의 예술 사이의 싸움은 리오타르가 보기에 트랜스-아방-가르디즘 또는
신-표현주의 회화 형태들에서 잘 드러난다. 그 회화 형태들은 구상으로 회귀하거나 구상적 소재와 추상적 소재를 섞는다. 또한 미학
에 대한 이런 고발은 현대 사상의 보다 넓은 맥락 속에 등록된다. [리오타르처럼] 표현 불가능한 것 또는 재현 불가능한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모더니티에 대한 특정한 사유, 진보주의적인 역사관을 뒤집는 사유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진보주의
적 역사관은 해방의 미래를 향해, 모더니티의 잠재성들을 완수하는 도래할 혁명을 향해 경도되어 있었다. 재현 불가능한 것에 관한
담론은 근대사를 유럽의 유대인 말살이라는 사건으로부터 출발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파국적 시각과 의견을 같이 한다.

이 다양한 비판들에는 적어도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그 비판들은 미학이 단순히 하나의 분과학문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사실
을 밝힌다. 미학은 철학이나 예술학이 아니다. 그것은 사유에 대한 어떤 관념, 해석 방식들, 사회와 역사에 대한 시각에 착수하
는 지각들과 담론들의 모체이다. 바로 이 점이 미학에 대한 내 고유한 성찰의 핵심이다. 그러나 나는 미학을 비판하는 자들의 방식
과 다르게 미학을 해석한다. 그 비판들은 모두 이 사실[내가 미학을 다르게 해석한다는 사실]을 풀어내야 하는 혼동의 징표라고 고
발하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그 비판들이 보기에 미학은 분석과 작품에 대한 평가 그리고 바깥에서 오는 근거들의 실천들[예술행
위]를 뒤섞어버린 책임이 있다. 이 부정적인 판결은 미학에 대한 비판들이 보여주는 두 번째 공통점이다. 그 비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론의 근거들, 예술행위들, 그리고 감성의 감응들affects을 다시 각자의 자리에 돌려놓겠다고 자처한다. 나는 이 입
장과 정반대 입장을 취한다. 예술을 미학 담론으로부터 분리해내길 바라는 것, 그것은 내가 보기에 그저 예술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
일 뿐이다. 이 비판가들이 고발하는 혼동이라는 것은 사실 매듭이다. 그것을 통해 사유, [예술]행위, 감응이 세워지고 그들의 영
토 또는 그들의 ‘고유한’ 대상을 갖추게 되는 매듭 말이다. 만일 ‘미학’이 어떤 혼동을 가리키는 이름이라면, 이 ‘혼동’ 덕분
에 우리는 대상들, 경험방식들, 그리고 사람들이 [미학을] 고발하면서 [미학으로부터] 고립시키겠다고 주장하는 그 예술에 대한 사
유형태들을 식별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예술은 그 자체로 정의되는 자율적 실천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또 예술의 이름으로
미학의 월권을 고발할 수 있을 그런 것도 아니다. 예술은 예술행위들을 식별하고, 그 식별을 지각방식들, 감응하는 형태들 그리고
특정한 이해 가능성의 형태들과 일치시키는 식별체제들 안에서만 존재한다.

나는 서구 전통 내에서 다음과 같은 부류의 세 가지 커다란 체제들을 구별할 것을 제안했다. 나는 첫 번째 것을 이미지의 윤리적
체제régime éthique des images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이 체제에서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것들은 예술 개념 아
래 포섭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들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 이미지들에 대한 판단은 서로 연결된 두 기준들의 소관이다. [첫
째,] 이 이미지들은 원본에 충실한가? [둘째,] 그 이미지들은 존재 방식들, 즉 그것들을 지각하는 자들의 성격과 도덕성에 어
떤 효과를 낳는가? 플라톤은 호메로스의 시들을 비난한다. 왜냐하면 호메로스의 시들은 신성의 특성과 양립할 수 없는, 따라서 좋
은 시민들을 양성할 수 없는 신들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레반이 바미안 석불들을 파괴한 사건은 그 석불들을 인류의 예술적
유산으로 보았던 자들에게 커다란 스캔들이 되었다. [하지만] 탈레반이 석불을 파괴한 까닭은 그들에게 그 ‘예술작품들’은 한낱 우
상들, 가짜 신들의 이미지들, 이미지가 되어버린 신들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두 번째 체제를 재현적 체제régime représentatif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이 체제는 일반적인 뜻에서의 예술,
즉 기술 속에서 모방의 예술들이 차지하는 특수한 영역을 따로 떼어놓기 때문이다. 재현적 체제는 이 모방의 예술들을 그 예술들의
진리와 도덕 효과들에 대한 윤리적 입법에서 해방시킨다. 재현적 체제는 [이미지의 윤리적 체제가 중시하는] 진리 및 도덕 효과에
대해 그럴듯함과 내적 일관성이라는 규칙을 맞세운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적인 행위연쇄들의 인과적 논리와 역사가 말해주
는 사실들의 경험적 연속succession을 대립시켰다. 그러나 내적 일관성은 예술적 발명들과 그것들이 전달되는 대상인 대중의
감성 사이의 안정적인 관계들의 체계 내에서 의미를 획득한다. 17세기 유럽에서 자리잡은 고전적인 미메시스 질서는 이런 종류의 체
계[재현적 체제]였다. 그 체계에서 예술가들이 따른 규칙들은 인간 본성에 대한 인식에 바탕을 두어야 했다.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인식이 관객들의 쾌락과 고통의 감정들을 결정하곤 했다. 그리하여 자율적인 모방들의 질서는 위계적인 세계 질서와 강력하게 이
어졌다. 자율적인 모방들의 질서는 재현할만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고, 고상한 주제들 또는 천박한 주제들을 재현하는 데
부합하는 형태들을 구별하곤 했으니 말이다. 자율적인 모방들의 질서는 그런 식으로 고귀한 비극 장르들 또는 역사화에서부터 통속적
인 희극 장르들까지 또는 장르 회화들을 대립시키곤 했다. 그리고 인물, 상황, 언어활동의 혼합으로 특징지어지는 소설을 비-장르라
며 배제했다.

나는 [모방의 질서와 위계의 질서 사이의] 이 일치들의 체계를 무너뜨리는 세 번째 체제를 예술의 미학적 체제régime
esthétique des arts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예술의 미학적 체제란 주제들과 장르들의 위계가 붕괴하는 체제이다. 어
느 주제든 재현해도 좋으며, 어떤 주제도 그것에 부합하는 형태를 미리 규정하지 않는다. 이 급작스러운 변환은 프랑스 혁명 시대
에 이루어졌다. 헤겔은 1828년에 세비야의 거지 소년들을 재현하는 바르톨레메 무리요가 그린 두 그림을 묘사하면서 그 변환을 특
기한 바 있다. 헤겔은 [무리요의 그림들을] 묘사하면서 이 소년들의 무사태평함을 찬미한다. 이 한가로움 때문에 소년들은 고대의
조각물을 통해 이상화되는 올림포스의 신들과 비슷한 자들이 된다. 헤겔은 [무리요의] 그림들을 박물관에서 보았다. 다시 말해 회화
와 조각이 왕자의 궁전들을 장식하고, 높으신 인물의 위대한 행적을 찬양하거나 신앙의 신비를 간증할 때 따르곤 하던 위계들이나 그
것들의 목적으로부터 분리되어 예술작품으로서 전시되는 중화된 공간 속에서 [그 그림들을] 보았다는 얘기다. 미학이란 이 새로운 체
제에 대한 사유이다. 미학이란 예술이 다른 것들[목적이나 위계들]로부터 분리되어 하나의 특정한 경험 영역으로서 고유하게 존재하
는 체제에 대한 사유인 것이다. 그리고 그 특정한 경험 영역의 고유한 장소는 박물관이다. 하지만 어떤 경계도 재현될 만한 대상들
과 그렇지 않은 대상을 더 이상 나누지 않는다. 미학이란 예술의 생산물들을 세상의 다른 대상들로부터 분리해내던 장벽들을 제거하면
서 예술에 자율성을 주는 이 본원적인 모순에 대한 사유이다.

예술의 자율성과 그 대상들의 타율성 사이에 존재하는 이 긴장은 재현적 질서와 단절하기에 이어진 보다 근본적인 긴장에 기초한다.
재현적 체제의 핵심은 포이에시스와 아이스테시스 사이의 결정된 관계를 전제한다는 데 있다. 포이에시스는 작품들을 생산하는 것이
고, 아이스테시스는 그 작품들이 지각되고 느껴지는 감각적 환경을 말한다. [작품] 생산이 규칙들에 따를 수 있었던 까닭은, 이
규칙들이 선택받은 대중의 감성에 상응하는 효과들을 결정한다고 추정되었기 때문이다. 미메시스가 붕괴한다는 것은 포이에시스와 아이스
테시스 사이의 이 결정된 일치가 붕괴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포이에시스와 아이스테시스 사이의] 이 단절이 바로 󰡔판단력 비판
󰡕의 핵심에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를 일치로 보는 고전적인 분석론과 숭고를 단절로 보는 분석론 사이에 사람들이 세우려
고 시도했던 대립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단절은 미에 대한 분석론에 이미 현존한다. 칸트가 말하는 미는 개념 없이 평가되
는 것이니 말이다. 미학이란 미메시스적 질서가 전제하던 ‘인간 본성’과 단절한다는 뜻이다. 이 본성은 예술가가 사용할 수 있는
주제들, 예술가가 그 주제들을 펼치기 위해 사용하던 형태들, 그리고 감정들을 느끼거나 작품들을 평가하는 대중의 자질들 사이의 일
치를 보장하는 규칙들을 정한다고 추정되었다. 자유미beautélibre와 종속미beautéadhérente를 나누는 칸트적 대립
은 다음의 단절을 인정한다. 미에 대한 개념은 작품이 얼마나 완성도 있는지, 건물이 얼마나 기능에 부합하는지를 정할 수 있게 해
주는 규칙들과 관련하여 이질발생적이다. 감성적[심미적] 경험의 대상이 되는 형태는 예술가가 재료에 부과한 형태를 말하는 것이 아
니다. 그것은 심지어 그런 형태가 전제하는 바, 즉 자신의 개념들을 부과하는 오성과 그 개념의 자극을 받는 감각재료 사이의 위계
적 관계를 부정하기까지 한다. 따라서 감성적 경험의 근거들은 예술의 근거들로부터 갈라진다. 예술은 항상 개념들에 감각적 형태를
부여하는 반면, 감성적 경험은 감각재료에 형태를 불어넣는 개념들, 즉 그 고유의 수용 모델을 만들려는 의도들을 ‘모름으로써만’
기능한다. 예술의 개념들과 감성적 경험의 개념-없음 사이의 틈을 메우기 위해 칸트는 천재 개념을 내세운다. 그러나 천재는 [그
개념 자체를] 희화화하는 해석이 바라는 것처럼 전능한 예술가의 자유로운 창조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천재란 예술작품
을 예술가의 앎과 의지에서 분리해내는 비인칭적 역량이다. 천재란 자기가 바라지 않는 것을 하고, 자기가 생각하지 않는 것에 형태
를 부여하는 예술의 역량이다. 미학적 체제의 예술은 [얼마나] 예술에 속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는 능력으로 측정되는 예술에 속한
다. 미학적 체제의 예술은 예술의 타율성을 수집하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으로 측정되는 자율성이다. 초현실주의 같은 20세기 예술
운동들은 바로 이 대립들[속하지 않으면서 속함, 타율성과 자율성]의 상호의존에 가치를 부여했던 것이다. 발터 벤야민과 테오도르
아도르노 같은 사상가들도 특히 그 점을 강조했고 말이다.

그들은 미학적 모순에 연결된 전복의 역량을 강조했다. 우리는 역설적 전복이 갖는 이 역량을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예로부터 출발해
서 생각할 수 있다. 칸트는 감성적 [취미]판단에 고유한 ‘무관심’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기 위해 그 예를 제시한 바 있다. 궁전
의 형태를 감성적으로[심미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 나는 선이나 쾌적의 관점에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궁전을 주거장소로서의 쾌적함
을 통해서, 또는 그 건물이 사회적 구별짓기의 기능에 부합하는지를 통해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그 궁전을 지었으면서
도 정작 본인들은 누추한 집에서 살고 있는 노동자들의 땀을 완전히 빼놓고 생각해야 한다. 나는 전시용으로 [궁전을] 짓게 만들었
던 부자들의 허영심도 빼놓고 생각해야 한다. 이에 대한 대가로 나는 나의 [감성적 취미]판단을 주관적 보편성으로까지 올릴 수 있
다. 칸트는 더 나아가서 어떻게 [개인의 감성적 취미판단을 주관적 보편성으로 끌어올리는] 이 능력이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여
는지, 어떻게 문화의 헛된 꾸밈새와 자연의 야만성 사이의 나눔을 넘어서는 ‘공통감’sens commun의 가능성을 여는지를 제시
한다. 칸트는 감각적 공동체가 「인간의 권리에 대한 선언」, 그리고 자유와 평등에 바탕을 둔 새로운 정치질서를 세우려는 혁명들
을 완수하기 위한 선先조건이라고 판단한다.

궁전의 감성적 형태에 대한 이 분석은 구별짓기에 대한 사회학자들의 진단을 정당화하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듯 보인다. 칸트 스스
로 감성적 판단은 사회적인 것을 부인否認하는 데 바탕을 두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나는] 그 논증을 뒤
집을 수 있고, 또 칸트의 ‘부인’이 부르디외의 ‘사회적 비판’보다 더 전복적임을 보일 수 있다. 부르디외의 비판은 미학적 가상
을 사회 계급들 사이에 취미 형태들이 배정되는 현실과 대립시킨다. 그러나 이 점에서 부르디외의 비판은 [이미지의] 윤리적 체제
의 전통을 따른다. 그 전통은 각 계급에 존재하고 느끼는 방식들, 이 조건에 부합하게 보고 말하는 방식들을 할당한다. 윤리적 체
제의 전통은 일찍부터 플라톤의 󰡔국가󰡕에서 자체의 철학적 정식화를 받아들였다. 플라톤은 각자, 그리고 공동체의 각 집단이
‘그의 고유한 일’을 해야 하며, 마찬가지로 영혼의 각 부분이 명령하거나 복종하는 그의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대
시대에 이 격언은 통치하거나 박식한 엘리트들의 강박적인 고민, 즉 보통사람들에게 그들의 조건에 낯선 취미와 열망들이 도입됨으로
써 야기되는 ‘탈계급화’의 출몰[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영감을 주었다. 공동체를 그들의 자리, 점유, 그리고 이 자리와 직무
에 부합하는 존재방식에 따라 정의되는 안정된 집단들의 집합으로 보는 시각을 나는 치안의 논리la logique policière
라고 정의한 바 있다. 치안의 논리에서는 전체가 부분들의 총합과 동일해지며, 각 부분이 그에 부합하는 몫을 갖는다. 또한 치안
논리에서는 전체에 바깥이 없고, 실재가 외양과 명확히 구분되며, 가시적인 것이 비가시적인 것과 명확히 구분되고, 말이 소음과 명
확히 구분된다. 반대로 정치의 논리la logique politique가 있다. 정치의 논리는 부분들, 자리들, 그리고 직무들
의 [치안적] 셈에 포함되지 않았던 보충적 요소의 도입으로 정의된다. 정치의 논리는 자리들의 나눔을 흐트러뜨리는 동시에 전체의
셈, 그리고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나눔을 흐트러뜨린다. 정치의 논리는 욕구들[이 지배하는] 어두운 삶에만 속해 있는 것
으로 셈해지던 자들을 말하고 생각하는 존재들로서 가시적으로 만든다. 정치의 논리는 어두운 삶[에서 새어나오는] 소음으로밖에 지각
되지 않았던 것을 담론으로서 들리게 만든다. 바로 이것이 내가 몫-없는 것들의 몫, 또는 셈해지지 않은 것들을 셈하기라고 불렀
던 것들이다. 그로부터 나는 민주주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자고 제안했다. 민주주의의 주체인 ‘인민’le peuple은 주민의 총합
이 아니다. 인민이란 아무나n’importe qui/nobody의 능력, ‘실력 없는/무능력한 자들’의 능력이 현실화되는 것이
다. 실력 없는 자들은 출생, 부, 힘, 또는 지식에 기초하는 통치에 필요한 모든 자격의 보충으로서 들어온다. 칸트가 궁전을 분
석하면서 제안한 것도 이런 종류의 보충적 요소이다. 칸트가 우리에게 일러준 것은 이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건축물을 통상
판단하는 데 사용하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 선이라는 개념에 따라 정의되는 지적인intellectuel 판단이 있
다. 다시 말해 그것은 건축가가 지식을 갖추고 있는지, 그리고 건축물이 기능에 부합하는지의 여부를 평가하는 판단이다. [둘
째,] 쾌적하다는 느낌에 따라 정의되는 감각적sensible 판단이 있다. 이 두 기준들은 위계적 논리를 정한다. 앎에 내적인
위계가 있고, 감각적 쾌적을 목적과 수단의 지성적 계산에 종속시키는 위계적 질서가 있다. 또한 쾌적의 위계도 존재한다. 바로
그 위계 위에 부르디외는 자신의 비판을 세운다. 또한 그 위계에 근거하여 18세기에 볼테르는 “취향을 가진 인간은 상스러운 인간
과는 다른 눈, 다른 귀, 다른 촉각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었다. 따라서 사실상 세 개의 위계가 있는 셈이다. 그 위계들은 지
성적인 선과 감각적인 쾌적의 고전적 분배에 따라 정의된다. 그리고 이 위계 속에서 부르디외는 감성적 판단에 대한 자신의 ‘비판
적’ 과학을 정의한다. 이 비판적 과학은 현실과 [미학적] 가상 사이의 간단한 나눔에 기초한다. 가상은 그 자체에 대해 어두운
사회적 삶과 그 삶에 빛을 던지기에 적합한 과학만을 현존하는 부분들로 셈한다. 그렇지만 칸트의 분석이 행한 것은 제3의 항,
즉 [치안적] 셈에 대한 보충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쾌적과 선의 위계를 벗어나 아무나의 능력을 정의함으로써 이 위계들을 무
력화시킨다.

프리드리히 실러는 외양을 즐기고, 외양을 가지고 노는 누구나 가진 능력을 󰡔판단력 비판󰡕의 주요 가르침으로서 끌어내며, [자
신이 쓴] 󰡔인류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의 중심에 [그 능력을] 집어넣기도 한다. 이 텍스트는 프랑스 혁명 기간에 작성되
었다. 그것은 자유에 기초한 국가에 대해 품었던 희망이 실망으로 바뀌었던 상황과 공명한다. 실러가 보기에 [자유에 기초한 국가
를 세워보겠다는] 이 시도가 실패한 것은 국가와 법을 통해 직접적으로 불평등의 형태들을 제거하겠다는 의지, 그리고 감각적 실존
의 보다 깊숙한 곳에 바탕을 둔 예속의 형태들을 제거하겠다는 의지와 관련되어 있다. 칸트가 말하는 상상과 오성 사이의 ‘자유로
운 유희’는 실러에게 있어서는 능동적인 형식적 충동과 수동적인 감각적 충동을 나누는 위계적 분배와 단절하는 놀이의 충동이 된
다. 실러는 [󰡔인류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 중 열다섯 번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인간은 유희하는 한에서
만 온전한 인간일 수 있다.” 유희는 외양 그 자체(어떤 현실도 가리지 않고, 어떤 목적의 수단도 아닌 외양)를 즐길 수 있는
능력이다. 유희는 형식과 재료, 능동성과 수동성, 목적과 수단 등 사회적 위계가 되기도 하는 개념적 위계들 같은 전통적인 위계들
을 무력화시킨다. 외양을 가지고 노는 능력은 고대의 신을 묘사한 조각상 앞에서 탐미주의자가 체험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그 능력
은 야생인이 몸을 치장하는 취미를 갖게 되는 순간에 그 야생인을 특징지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외양을 가지고 노는 능력은 예술작품
들이 지닌 특정한 본성과 연결된 것이 아니라 감성적 경험 자체의 독특성과 연결된 인류의 공통된 잠재성을 정의해준다.

다음이 중요하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모더니즘에 대한 담론들은 예술의 자율성, 작품의 예외성, 예술가의 개성을 강조했다. 그러
나 [예술의] 미학적 체제가 자율화하는 것은 작품이나 예술가가 아니라 특정한 경험방식, 감성적 경험방식이다. 감성적 경험이란 예
술의 형태들이 그 속에서 지각되고 사유되는 틀이다. 감성적 경험은 엄격한 의미에서 예술작품들만을 고려하는 유일한 영역을 넘어선
다. 감성적 경험은 감각적 세계에 대한 다양한 경험 형태들을 훨씬 더 폭넓게 정의해준다. 감각적 세계는 실용적인 관계들의 질서
또는 선과 쾌적의 위계들에 따라 조직되는 질서에 더 이상 국한되지 않는다. 감성적 경험은 가능한 감각적 경험세계를 정의해준다.
그 세계는 신체들의 자리와 점유에 부합하는 감각적인 것에 대한 관계 형태들과 신체들을 정렬하는 나눔을 흐트러뜨린다. 사회학자[부
르디외]는 이 흐트러뜨림을 [미학적] 가상이라고 고발한다. 자신이 가진 과학의 선을 위해서 그 사회학자는 권력을 가진 인간들이
사회 질서의 선을 위해 바라던 것을 바란다. 각 계급은 그의 자리에, 그것도 그 자리에 부합하게 존재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방
식들을 가지고 머물러야 한다는 것 말이다. 거꾸로 이 에토스의 고리에서 빠져나가는 것이야말로 일하고 욕구만을 가질 뿐인 계급으
로 밀려났던 자들이 개인적이고 집단적으로 해방되는 역사적 형태들의 핵심에 있다. 이 전복은 언어활동, 가시적인 것, 그리고 감각
적 경험의 모든 형태들과 새로운 관계맺기를 거친다. 궁전의 형태에 던진 무관심한 시선을 묘사한 칸트에 대해, 50년 뒤 [루이-
가브리엘 고니라고 불리는] 어느 소목장이가 자신의 텍스트로 응답한다. 그 텍스트는 노동하는 어떤 날을 묘사한다. 고니는 그 장소
들을 소유하는 자와 자신을 고용한 주인의 이중의 이익을 위해서 어느 사저私邸의 마루판 까는 일을 맡았다. 고니가 쓴 텍스트를 발
췌하여 인용해보겠다.


마치 제 집에 있다고 느끼는 양, 그는 그가 마루판을 깔고 있는 방 작업을 완료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그 방의 배치를 좋아한
다. 창문이 정원 쪽으로 나있거나 그림 같은 지평선을 굽어본다면, 한 순간 그는 [마루판을 깔던] 팔을 멈추고 널찍한 전망을 향
해 생각에 잠긴다. 그럼으로써 그는 옆집 주인보다 그 방을 더 잘 즐긴다.


이 텍스트에서는 예술이 문제가 아니다. 거기에서는 시선이 문제이다. 즉 노동과 소유의 공간에 대해 ‘무관심한’ 시선을 획득하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여기에서 ‘무관심’은 사회 현실에 무지한 탐미주의자의 초연과는 전혀 다른 것을 뜻한다. 그것은 팔을 써야
하는 강제된 노동과 전통적으로 지배의 자리에만 결합되어 있던 전망하는 시선을 붙잡고 스스로 해방되는 시선 사이의 분리를 뜻한
다. 이 분리는 [분배된 자리의] 점유와 실력을 연결하는 치안적 경제를 전복한다. 이 분리는 자신의 조건에 부합하게 보고, 말하
고, 생각하는 데 익숙해진 노동자 신체의 유기성을 해체한다. 이 분리는 [기존의] 자리들, 직무들, 그리고 느끼는 방식들의 나눔
에 더 이상 ‘들어맞지’ 않는 노동자의 새로운 신체를 만든다. [고니가 쓴] 이 텍스트는 예술에 대해서도, 정치에 대해서도 말하
지 않는다. 이 텍스트는 그것들[자리들, 직무들, 느끼는 방식들]을 그것들 자체 이편에서 연결하는 것, 즉 내가 감각적인 것의
나눔le partage du sensible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말한다. 감각적인 것의 나눔이란 감각적 경험 형태들의 분
배, 가시적인 것, 말할 수 있는 것, 사유할 수 있는 것의 분배이다. 그 분배 속에서 신체들은 이런저런 신체들의 실력 있음과
실력 없음의 분배가 주어짐에 따라서 공동체 속에 있게 된다. 정치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는 이 텍스트가 1848년 프랑스 혁명
기간 동안 혁명적인 노동자 저널에 실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집단적 목소리[를 외칠 수 있는] 가능성은 이러한 감성적
[미학적] 단절, 노동자들이 되는 방식들로부터의 분리를 거친다. 왜냐하면 피지배자들의 문제는 결코 지배 메커니즘에 대한 인식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지배보다는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신체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소목장이는 상황
에 대한 의식을 획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상황에 ‘적합하지 않은’ 열정들을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리에게 이르
고 있다. 이 새로운 신체의 자질을 만들어내는 것은 이런저런 예술작품이 아니다. 작품들의 새로운 전시 형태들에 상응하는 시선의
형태들, 다시 말해 작품들의 분리된 실존 형태에 상응하는 시선의 형태들이 새로운 신체의 자질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덧붙여 말하기
로 하자. 혁명적 노동자의 신체를 형성하는 것은 혁명적인 그림이 아니다. 오히려 이 혁명적 그림이 고대의 조각상, 중세의 동정
녀, 또는 죽은 자연에 던지는 중화된 시선을 통해 지각될 수 있는 가능성이 혁명적 노동자의 신체를 형성한다. 어떤 의미에서 작동
하는 것은 이 바캉스[중화]다. 현재 파리의 방리유들 중 한 곳에서 전개되고 있는 겉보기에 역설적인 예술-정치적 기획이 우리에
게 가르쳐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2005년 가을 파리의 방리유에서 일어난 반란은 폭발적인 특성을 보여주었다. 그곳은 사회적
유형流刑과 종족간 긴장들 탓에 발생하는 폭력으로 두드러지는 방리유 중 하나였다. 그곳에는 아프리카 이민자 출신 주민들이 다수를
이루어 살고 있다. 이 도시들 중 한 곳에서 ‘도시야영’Campement urbain이라고 하는 예술가 집단은 특수한 공간을 만
드는 기획 주변으로 일부 주민을 동원하는 데 착수했다. [그 특수한 공간이란] 모두에게 열려 있고, 또 모두의 후원 아래 있는
장소이다. 그러나 그 장소는 명상이나 고독한 성찰을 하기 위해 한 번에 한 사람씩만 차지할 수 있는 곳이다. 이 기획은 겉보기
에 역설적이다. 방리유 소요사태에 대한 분석들은 대부분 소요의 원인을 대중의 소비적 개인주의 때문에 초래된 ‘사회적 유대의 상
실’ 탓으로 돌리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 기획은 사태를 정반대로 본다. 문제는 사회적 유대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선택
할 수 있는 사회적 유대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 그리고 방리유에서 살면서 할 수 없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홀로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혼자 있을 수 있도록 이렇게 한 장소를 할애하는 것은 공간들 및 존재방식들의 분배에 감성적[미학적] 단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한 번 더 말하거니와, 이 감성적[미학적] 단절은 어떤 작품에 대한 시선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고
독과 공동체 사이의 정상적인 관계를 변경하는 경험 형태에 결부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위 기획은 ‘나와 우리’라고 불린다. 우리
는 쉽게 [나와 우리라는] 이 용어들을 그것들에 상응하는 철학적 표현, 즉 칸트가 말하는 [취미]판단의 감성적[심미적] 보편성으
로 번역할 수 있다. [방리유에 만들어진] 이 장소는 작품이 하나도 없이 텅 빈 박물관과도 같다. 대신 그것은 하나의 본질적인
기능으로 귀착된다. 즉, 감각적인 실존 형태들, 그리고 그것에 결부되어 있는 ‘실력 있음’과 ‘실력 없음’의 정상적인 분배에 절
단을 가한다. ‘나와 우리’라는 기획과 함께 추진된 영화는 각자가 선택한 문구를 새긴 티셔츠를 입은 주민들[의 모습]을 찍었
다. 이 문구들 중에서 내 기억에 남은 것은 이것이다. 어느 여자는 [그 기획을 통해 만들어진] 그 장소가 형태를 부여하고자 했
던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내가 채울 수 있는 텅 빈 말을 원한다.”

텅 빈 말을 채운다는 것. 이 정식은 상당한 반향을 일으킨다. 그것은 우리에게 내용이 없기 때문에 모두에게 귀속될 수 있는 감성
적[심미적] 판단의 주관적 보편성에 대한 칸트의 정식을 연상시킬 수 있다. 그것은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전체가 되자”라
는 혁명가[인터내셔널가]의 정식을 연상시킬 수도 있다. 프랑스 독자에게 그것은 불문학의 공상적인 여주인공들 중 가장 유명한 보바
리 부인을 연상시킬 수도 있다. 보바리 부인의 불행은 그녀가 책에서 읽은 단어들, 가령 지복, 열정, 또는 도취 같은 것들이
삶 속에서 무엇을 뜻할 수 있는지를 찾으려 한 데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소설을 쓴 작가인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야망을 연상시킨
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책을 만들고자 하는 야망, 자신의 문체의 힘을 통해서 모든 것을 손에 쥘 수 있을 책을 만
들고자 하는 야망이다. 이 야망은 플로베르에게 예술을 위한 예술의 챔피언이라는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그 책이 출간되자마
자 [책에 쓰인] 단어들이 말하는 대로 살고 싶어 한 이 여성의 이야기는 문학에서의 민주주의라고 비난받았다. 사실 순수문학의 자
율화는 가능성을 뜻하던 감성적[미학적] 전복에 대한 고려와 짝을 이룬다. 내가 보기에 이 모든 정식들의 관계를 사유하는 것이 감
성론[미학]에 대한 모든 성찰에 부과되는 과제이다. 이 과제는 감성적 구별짓기와 사회적 현실 사이, 예술을 위한 예술과 참여예
술 사이,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 등의 모든 표면적 대립을 해체하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감성적[미학적] 전복’, 이는 작품
을 만드는 형태들과 그것이 대중에게 만들어낼 수 있는 효과들 사이의 모든 직접적인 관계와 단절하는 것이다. 감성적[미학적] 전복
이란 감성적 경험의 자율화와 예술일 만한 대상과 그렇지 않은 대상을 나누고, 그것을 맛볼 수 있는 대중과 그렇지 못한 대중을 나
누는 모든 장벽을 제거하는 것 사이의 긴장이다.

이 본래적인 긴장을 이해하는 것은 예술의 진화에 대한 성찰을 조직하고 있는 수많은 개념들을 소환하도록 만든다. 나는 특히 모던
과 포스트모던 개념을 생각한다. 예술의 모더니티는 일반적으로 서구 전통에서 재현 예술과의 단절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그런 재현
개념은 편협한 방식으로 이해된 것이다. 사람들은 재현 개념을 구상과의 회화적 단절과 동일시했다. 그로부터 사람들은 모던한 반反-
재현적 혁명의 패러다임을 구축했다. 그 혁명을 통해 예술은 현실을 재현하거나 이야기를 말하는 과제로부터 해방됨으로써 예술의 재료
들과 기술들의 고유한 가능성들을 탐사하는 데로 향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술들과 각 예술의 자율화로 이해된 모던한 단절을 구축
했다. 바실리 칸딘스키, 카지미르 말레비치, 피테르 몬드리안은 구상을 제거함으로써 회화적 모더니티를 정초했다. 아르놀트 쇤베르크
는 표현적인 음악 전통을 버리는 12음계의 언어활동을 가지고 음악적 모더니티를 정초했다. 스테판 말라르메는 자동[사]적인
[verbe] intransitif 시 언어를 보통의 소통 언어와 대립시킴으로써 문학적 모더니티를 정초했다. 그로부터 사람들은
간단히 모더니티를 예술의 고유한 영역 속에서 예술이 자율화되는 것과 동일시할 수 있었다. 또는 사람들은 이 자율화와 정치적∙사회
적 해방 사이에 다소 쉽지 않은 상관관계, 가령 예술적 자율성과 자본주의 지배에 공모하는 상품 및 일상생활의 심미화의 대립, 예
술적 물질성의 우위와 맑스주의적 역사유물론 사이의 평행 등을 세울 수 있었다. 1940년대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모더니즘과
1960년대 구조주의의 모더니즘은 위와 같이 예술적 모더니즘과 정치적∙사회적 해방 사이에 등가관계를 세우려 했다. 나중에 말레비
치의 희고 검은 사각형은 유럽의 유대인 말살로 표시되는 세기의 경험을 예견하는 재현 불가능한 것에 대한 예술로 해석되었다. 그러
나 같은 1960년대에 팝아트, 누보리얼리즘, 그리고 예술적 행동주의의 다양한 형태들은 다른 모더니즘들을 되살아나게 하면서 위에
서 말한 인위적인 동일시를 파괴했다. 퍼포먼스와 다다이즘적 비웃음의 형태들, 일상적인 사물들, 통속화 또는 정치적 포토몽타주를
초현실주의적으로 전용하는 형태들. 그렇다고 거기에서 포스트모던적 단절, 고급예술과 대중예술 사이의 모더니스트적 분리, 예술과 상
품 또는 예술과 삶의 분리에 대한 작별인사를 볼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 분리는 회고적인 발명품일 뿐이었다. 이 ‘모더니
즘’은 그 자체로 예술적 형태들에 대한 뒤늦은, 그리고 자의적인 해석이었다. 그것은 예술의 자율성과 삶의 형태를 맞세우지 않으
며, 반대로 감성적 경험의 새로운 형태들에 연결된 예술을 정초하길 바란다. 그것은 고유한 잠재력을 각 예술의 물질성에 고립시키려
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자체의 예술 안에 다른 것들의 가능성을 들여오려 한다. 칸딘스키와 쇤베르크가 했던 탐구들은 다양
한 감각들을 서로 상응하게 만드는 예술의 시대를 희구하는 꿈속에 등록된다. 말레비치, 알렉산드르 로드첸코, 또는 엘 리시츠키가
했던 순수 형태들에 대한 탐구는 감각적 경험의 형태들을 재구축하려는 사유와 연결되어 있다. 그런 까닭에 그 탐구는 소비에트 혁
명 시기에 건축 프로젝트들 또는 선전 포스터에 영감을 줄 수 있었고, 또 분리된 현실로서의 예술을 없애려는 전망 속에 등록된
다. 말라르메의 ‘순수’시는 공동체를 봉헌하려는 사회적 소명을 명시적으로 자처했다. 그리고 말라르메의 순수시는 이를 위해 시의
전개와 조판에 음악의 효과들과 무용술[안무]의 형태들을 들여오려 했다.

이 뒤늦은 모더니즘은 예술의 자율성과 그 정치적 의미에 대해 일관되지 않은 우화를, 유사성들을 생산하는 것과 스스로를 동일시하
던 재현의 표면적인 해석 때문에 근대 예술의 ‘반-재현적’ 특성에 대해 일관되지 않은 우화를 구성했다. 그러나 재현적 체제는 유
사한 것들을 생산하라는 명령에 기초한 체제가 전혀 아니다. 그것은 부합, 그 용어의 강한 뜻으로 이해한 부합의 조정 속에서 이
생산을 틀 짓곤 했다. 재현적 체제는 재현할 수 있는 주제들, 그것들을 예술적으로 전개하는 데 부합하는 형태들, 그리고 감성적
수용 형태들을 일치시키는 규칙들을 정하는 체제이다. 재현적 체제는 그런 식으로 유사함들을 생산하는 가능한 방식들을 정한다. 미학
적 체제는 이런 점에서 보면 유사함들을 해방시키는 체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장르 회화를 복권하면서 시작하고 리얼리즘 소설
의 ‘초과’로 시작하는 것이지, 추상 회화의 형태들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예술의 미학적 체제는 작품들의 자율
성에 기초한 체제가 아니다. 작품들의 자율성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포이에시스와 아이스테시스가 단절됨으로써 발생한 효과일 뿐이
다. 미학적 체제에 의해 자율성을 갖게 된 것은 예술작품이나 예술가의 형상이 아니다. 자율성을 갖게 된 것은 그 안에서 이 작
품, 그리고 이 형상이 이해되는 경험의 형태, 다시 말해 감성적[심미적] 경험의 형태이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이 경험은 탈구
의 경험이다. 감성적 경험의 형태는 작품 속에서 현실화된 의도의 형태가 아니다. 자율성을 갖게 된 것은 그것의 지위 자체가 모순
적인 경험이다.

이 모순을 정의하기 위해 감성적[미적] 경험에 대한 실러의 분석으로 돌아가 보자. 한편으로 감성적 경험은 중지의 경험이다. 자유
로운 외양과 마주하는 놀이는 감각적 경험의 정상적인 형태들과 관련하여 하나의 예외적 경험을 정의한다. 그것은 중화의 순간, 어
떤 의미에서는 비행위의 순간, 또는 능동성과 수동성이 평등해지는 순간으로 묘사된다. 실러의 󰡔인류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들
󰡕에서 이 ‘비행위’는 조각된 머리, 조각된 여신의 머리인 루도비시의 헤라Juno Ludovisi로 상징화된다. 이 머리의 값
을 만들어내는 것, 즉 헤겔이 찬양한 스페인 거지 소년들과 그리스의 여신을 이어주는 것은 바로 그것의 비행위이다. 그 머리는 아
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는다. 이런 뜻에서 감성적 경험은 예외에 대한 경험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예외의 경
험과 박물관의 시대, 책과 대중 콘서트가 확대되는 시대에 작품들이 차지하는 새로운 지위를 연결할 수 있다. 그것은 자율화된 현실
들의 지위다. 우리는 그로부터 미학적 자율성과 예술적 자율성을 잇는 시각을 끌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비전은 이 자율성을 도래
할 자유로운 공동체에 대한 약속으로 만든다. 그러나 다른 한편 감성적 경험은 분리되지 않음에 대한 경험으로 표현된다. 그리스 조
각상의 아름다운 외양은 예술과 삶 사이의 분리를 몰랐던 예술의 생산물이고, 예술의 영역과 종교의 영역과 정치의 영역 사이의 구분
을 모르는 예술의 생산물이며, 공적인 삶과 일상생활의 형태 사이의 구분을 알지 못하는 예술의 생산물이다. 인간에 대한 미적[감
성] ‘교육’은 삶의 방식들을 변형하는 실질적인 프로그램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 프로그램은 예술과 삶의 이 비구분성을 새로운
형태로 실현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하여 칸트와 실러를 잇는 낭만적인 계승자들은 예술과 삶의 비구분을 다음과 같이 이해했다. 살아
있는 공동체의 프로그램과 법과 국가의 죽은 공동체를 대립시키는 식으로 말이다. 바로 이 관념이 그 자체로 정치 혁명에 반대되는
인간 혁명에 대한 맑스주의적 관념에 영감을 주었다. 또한 바로 그 관념이 소비에트 혁명의 순간에 미래파 아방가르드들의 프로그램에
도 영감을 주었다. 미래파 아방가르드의 프로그램은 더 이상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형태들을 구축하는 것이
다. 모더니즘을 예술의 자율성으로 보는 시각은 이런 시도에 반발하는 결산으로서 회고적으로 부과된 것이다. 사실상 하나가 아니라
적어도 두 개의 모더니즘이 있다. 예술의 미학적 체제의 근본적 역설을 해석하고 축소하는 두 가지 방식들. 다시 말해 그 역설이
란 예술의 근거들과 심미적 경험의 근거들 사이의 분리를 말한다. 예술적인 것과 미학적인 것 사이의 탈구를 제거하는 행동주의 모더
니즘이 있다. 그것은 예술을 분리된 작품들을 생산하는 활동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통된 감각적 삶의 형태들을 변형하는 과정,
따라서 분리된 현실로서의 예술을 제거하면서 예술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만든다. 거꾸로 감성적 경험의 해방력을 작품들에 전달함으로
써 탈구를 제거하는 모더니즘이 있다. 사실 이 두 해석은 두 극을 표시한다. 그것들 사이에서 감성적[미학적] 전복에 대한 해석
은 자리를 옮긴다. 그러나 대립되는 두 극들 사이의 긴장은 순수예술과 참여예술 사이의 대립과 결코 동일하지 않다. 위 해석들 각
각은 사실 서로 맞물려 있다. 그래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분석에서는 예술의 자율성이 가치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술에서 실
현되는 경험 형태의 특정성이 가치평가된다. 이 형태가 소외된 삶에 고유한 경험 형태들과 관련하여 만들어내는 틈 말이다. 그러나
소외된 삶의 경험 형태들이 평정의 형태들이자 이 삶을 윤색하는 형태들인 것과 마찬가지로, 예술에 고유한 형태들은 거꾸로 그 파열
을 전시하는 형태들이다. 만일 예술이 자신의 고유한 폐쇄를 떠안아야 한다면, 그것은 작품들이 자기 자신을 폐쇄하는 것의 불가능성
(아름다운 외양에 대한 탐구가 예술의 분리된 실존을 정초하는 사회적 고통을 현시하는 필연성)을 현시하기 위해서다. 만일 쇤베르크
의 예술이 아도르노에게 범례적이라고 한다면, 합리화되고 기계화된 삶을 비난하기 위해서는 [쇤베르크의 예술이] 이런 삶보다 더 기
계적으로, 훨씬 더 기계적으로 합리화되어야 한다. 또한 아도르노는 󰡔모세와 아론󰡕의 작가[쇤베르크]가 텍스트와 음악적 형태
사이에서 실현하는 지나치게 조화로운 일치를 고발하는 데 이른다. 자율적인 작품은 항상 침전된 사회적 경험에 속한다. 자율성이 정
치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의 불가능성이 정치적인 것이다. 역으로 기능적 건축물 또는 광고, 그리고 선전 게시물을 제작하는 자로
탈바꿈한 예술가들은 그것을 하려면 작품 형태의 이러한 변형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삶에 복무하는 기능적 예술은 그것이 생산하
는 것들의 형태 속에서 자신이 새로운 삶에 복무하는 기능적 예술이라는 사실을 상징화할 필요가 있다. 기능적인 유용성의 필요조건
을 넘어섬으로써 새로운 삶의 운동을 흉내내는 리시츠키의 레닌 연단 또는 로드첸코의 게시물과 사진들의 과장되게 기울어진 선들이 증
언하는 바가 그것이다. 자율적인 작품과 삶 속에 용해되지 않는 예술은 똑같이 감성적[미학적] 상황들, 경험의 가능태들을 재편성하
는 형태들을 정의한다. 미학적 모더니티를 정의할 수 있는 것은 두 모더니즘 사이의 긴장이다. 그러나 예술의 미학적 체제의 극들
을 정의하는 이 긴장은 다양한 예술 형태들과 감성적 경험 형태들을 위한 공간을 연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포스트모던 예술을 정의
할 수 있을 패러다임의 변화를 긍정하기는 어렵다. 현대 예술의 퍼포먼스, 설치, 비디오-설치 또는 비디오-퍼포먼스는 작품 생산
과 실험상황의 생산 사이의 긴장을 잘 구현한다. 그것들은 지각의 형태들, 감응의 양상들, 그리고 해석의 형태들을 변경하자는 제안
들로 스스로를 내세운다.

나에게 있어 미학에 대한 사유는 이 긴장들의 논리를 정의하고 그 논리가 지각 형태로, 해석방식으로, 삶의 프로그램으로 번역되는
방식을 정의하려고 시도하는 사유이다. 미학[감성론]은 미와 작품에 대한 이론 또는 학學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미학[감성론]은 경
험의 형태, 가시성의 방식, 그리고 해석의 체제로서 존재한다. 이런 뜻에서 감성적 경험은 예술작품의 영역을 훨씬 넘어선다. 감성
적 경험은 공동체를 정의하는 감각적 풍경의 움직이는 배분을 번역한다. 감각적 풍경이란 곧 볼 수 있는 것과 겪을 수 있는 것,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과 생각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어떤 분배를 뜻한다. 그것이 바로 내가 정의하려고 시도했던 감각적인
것의 나눔이란 것이다. 감각적인 것의 나눔이란 가능태들possibles에 대한 어떤 분배이며, 또한 서로 이 가능태들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어떤 분배이다. 감성적 보편성에 대한 칸트의 질문에서 핵심이 되는 것, 또한 내가 예증하려고 애썼던 예들
에서 핵심이 되는 것도 그것이다. 원근법적 시선의 지배를 주장하기 위해 [일하던] 자신의 팔을 멈출 자가 누구인가? 누가 고독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누가 텅 빈 단어들을 붙잡아 그것들을 채울 수 있는가? 이 미학적 질문들은 곧바로 정치적 질
문들이며, 공통세계를 편성하는 것에 대한 질문들이다. 앎의 대상에 대한 질문은 그 앎의 형태 자체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
질문들은 우리가 철학자, 예술사가, 문학이론가, 문화사회학자와 같은 상이한 전공 영역들로부터 빠져나가서 이 나눔의 지점으로 자리
를 옮길 것을 전제한다. 지각의 가능태들, 앎이 형성되는 방식들, 그리고 공통세계가 편성되는 방식들이 모두 함께 생겨나는 그 지
점으로 말이다. (번역: 양창렬 | 파리1대학 철학과 박사과정)

http://blog.jinbo.net/simppo/?pid=41#more_anchor41

한국 강연 질문과 답변 요약 | 사고들 | 2008년 12월 09일 04:34

민주주의와 인권, 2008/12/04, 서울대

질) 최근 한국에서 국방부의 금서목록이 지정되었는데, 온라인 서점과 대형 서점은 금서의 매출이 오르는 반면에 헌책방에서 같은 책
을 팔면 감독과 단속을 한다. 이 경우, 현실적인 투쟁의 중심을 조직해야 한다면, 내가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대형 헌책방을 중심
으로 연합하는 방식일 것 같다. 당신의 ‘셈해지지 않는 자들’에 비춰서 볼 때, 당신은 이 사안을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답) 먼저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전제하에,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내가 말하는 ‘이름 없는’ 혹은 ‘셈해지지 않는 자
들’은 (대형) 헌책방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헌책방’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셈해지지 않는 것을 셈한다는 것은 기존의 주
어진 이름들을 초과하는 것이다. 오히려 금서 목록을 읽고 반응하는, 예컨대 온라인상에서, 이름 없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
다.

질) 최근 한국에서 지하철 파업과 같은 경우, 파업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막상 정부와 언론에서 파업을 공격하고 나만해도 당장
불편을 겪으면 그것이 먹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노동조합, 정당, 시민사회단체 같이 현실적인 투쟁의 주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논의에 비춰볼 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답) 한국 상황은 모르겠지만, 프랑스에서도 철도파업과 같이 파업을 공격하는 비슷한 사례는 많다. 투쟁에서 문제는 정당이나 시민사
회단체가 아니다. 몫이 없는 자들이란 이러한 조직이 아니다. 여기서 새로운 정치적 주체는 이들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이름 없는
아무개들이다.

감성적/미학적 전복, 2008/12/05, 홍익대

질) 저는 평소에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다. 내가 보기에 당신의 작업은 프랑스 내의 정세에 대한 개입이라고 보인다. 특히 부르디
외와 교육에 관한 입장에서 차이가 보이는데, 차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사례를 들어서 설명을 해 주시기 바란다.

답) 기본 관점에서 차이는, 부르디외는 지배의 문제인 반면 나는 해방, 지적 해방의 문제이다. 교육문제에서, 부르디외는 지배가
교육에서 자동적으로 재생산된다는 입장이며 이것은 소외 맑스주의와 유사하다. 부르디외는 피지배자가 자신이 지배받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지배되는 상황을 전제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에 따를 때, 학교에서 평등은 이러한 지배의 가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반
면 이러한 가상을 옹호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칸트이다. 왜냐하면 칸트(의 미학)에 따르면, 사회적 불평등의 사실인 취향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르디외는 이러한 가상을 벗어나는 자들의 지위를 아무나가 아닌 과학자나 지식인들에 부여하였다. 나는 이
와 반대로 아무나의 지적인 평등에서부처 출발하여 지적인 해방을 주장하는 것이다.

질) 당신은 정치와 미학, 또는 윤리를 경험의 문제로 보고 있고, 여기에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미
학적 실천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가능한가?

답) 나는 프랑스의 방리유 문제처럼 구체적인 실천 전략보다 원리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나는 전략보다 일반인들이 가진 능력에
서 출발한다. 앞서 부르디외에 관한 질문과 연결된 것인데, 이러한 입장은 무능력에서 출발하는 입장과 대립된다. 노동자와 자본가
를 대립시키는 방식과는 현실적인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방리유 사태가 터졌을 때, 사람들은 ‘소통의 부족’이라는 통념을 말했지
만, ‘도시야영’의 활동가들은 ‘혼자 있을 공간의 필요’를 주장하고 창출했으며, 스위스에서 온 예술가들은 방리유에 퐁피듀의 예술
작품들은 전시했다. 또한 방리유의 청년들이 이 전시장의 경비가 되고 작품의 가이드가 되었다. 결국 여기에 걸린 문제는 이름 없
는 아무나들이 능력이 있다는 것이고, 이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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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요약문은 다분히 저의 주관적인 기록입니다. 제가 필기가 느린 편이고, 통역을 한 번 거쳤기 때문에 두 세번 '번역'과
'요약'을 거친 셈입니다. 특히 첫 째날은 메모를 하지 못해서 인상적인 질문만 옮겼는데, 참고로 주로 나왔던 질문의 요지는 다
른 날에도 반복되었 습니다. 특히 이 날은, 현실적인 정치적 주체의 가능성과 한국 및 프랑스의 현상황에 대한 질문이 많았습니
다. 마지막 날은 영어로 진행된 심포지엄이라서, 옮기지 못했습니다. 첫 째날과 넷 째날, 메모하신 분은 올려 주시면 좋겠군요.
다행히, 도서출판b에서 한국 강연을 출판할 때 질답을 덧붙인다고 하니까 그 때 확인이 가능할 겁니다.

>> 계속 보기...

질) 당신은 미학과 정치의 접합에서 상징적 보편화의 차원을 강조하는데, 이 과정에서 작동되는 배제는 다시 지배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즉, 미학과 정치에서 개별성의 차원은 어떻게 볼 수 있는가?

답) 나는 초기부터 미학과 정치의 관계에 관심이 있었다. 나의 경우, 19세기 노동자들의 문서고를 뒤지면서, 소위 집단적 해방
과 개인적 해방은 결코 나눌 수 없음을 발견했다. 당시에 널리 유포되어 있던 기대와 달리, 노동자 의식이나 하층문화는 없었다.
내가 발견한 것은, 감각적인 것의 나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노력과 그 조건에 대한 탐색이었다. 그것은 상징체계를 둘러
싼 투쟁들이었고, 소위 집단적 해방이란 개인의 소소한 감성적 경험을 거치는 것이었다.

질) 당신이 허락한다면, 한 가지 무식한 질문과 한 가지 무례한 질문을 하겠다. 무식한 질문은, 당신은 그람시의 영향을 받은 헤
게모니론에 바탕을 포스트 맑스주의자로 평가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무례한 질문은, 당신과 알튀세
르의 거리에 관한 것인데, 알튀세르와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문제는 무엇이며 혹시 개인적이고 사적인 문제는 없었는가?

답)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 나는 그람시의 영향을 전혀 받은 적이 없다. 무엇보다 나는 맑스주의 내부의 이론적 논란에는 관심
이 없었고, 19세기 노동자들의 문서고에 관심이 있었다. 포스트 맑스주의라는 구분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
서, 나와 알튀세르는 사적인 충돌은 없었다. 우리의 입장에서 근본적인 차이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견이었다. 알위세르의 이데올로기
는, 무지한 자와 아는 자의 구별에 근거한다. 즉, 무지한 자-이데올로기-피지배자와 아는 자-과학-전위나 무지한 자들의 대변자
로 대별된다. 이것은 알다시피 68년 학생운동에 대한 논쟁에서 불거졌으며, 알튀세르는 학생운동을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이것이 나와 알튀세르와의 차이이다.

질) 당신이 오늘 강연문, ‘감성적/미학적 전복’에서 칸트의 ‘천재론’을 평가하는 부분, ‘천재는 전능한 예술가의 자유로운 창조
성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천재란 예술작품을 예술가의 앎과 의지에서 분리해내는 비인칭적 역량이다’라는 언급은 매우 흥미
롭다. 그렇지만 실제 작가들은 분명히 의도를 가지고 작업을 한다. 그렇다면 당신의 미학체제에서 ‘바라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것
에 형태를 부여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답) 여기서 칸트는 예술가의 문제와 관객의 문제를 제가한다. 물론 분명히 예술가의 의도(또는 관념)가 존재한다. 예술가의 이러
한 형태의 문제와 관객의 지각의 형태가 존재한다. 여기서 후자가 더 중요하며, 관객들은 작가의 의도와 달리 다른 방식으로 지각한
다. 앞서 언급한 교육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보통 스승의 지식은 제자에게 그대로 전달된다고 혹은 효과를 미친다고 생각한
다.하지만 스승의 지식은 제자에게 그대로 전달되거나 효과를 미치지 못한다. 교육에서 제자의 체험과 효과는 스승의 그것과 구별된
다. 이러한 분리나 괴리 차제가 미학체제에 더 적합한 것이다.

질) 나는 문화사회학을 연구한다. 당신의 부르디외의 논의에서, 노동자와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 또 노동자들의 다양한 층위들에 따
라 세분화된 조건에서 각각의 경험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다양한 경험들을 공통의 감각 세계로 편입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며 그 증
거는 무엇인가? 현실의 삶에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답) 부르디외에 따르면 취향은 계급별로 차이가 있으며, 계급에 따라서 상징적 자본에 따라 경험 형태가 규정된다고 본다. 또 각
계급 내부에서도 경험은 개별적으로 다양하게 차이가 난다. 그의 문제는 이것이다. 물론 나는 이러한 차이를 인정할 수 있지만, 나
의 문제는 공통세계의 구성이란 감성적, 미적 경험을 보편화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구체적으로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예
컨대, 퐁피듀 센터는 예술적 관람의 기회를 제공하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場)과 공간, 즉 개별적이지만 접근이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 낸다.

질) 당신은 칸트의 ‘무관심한 판단’, 혹은 주관적 보편성이 정치를 생산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보편성이 달성될 수 있
는 조건들이, 가령 매체의 문제가 더 중요하지 않는가? 예컨대, 타문화가 경험되는 가상현실에서처럼, 마치 기술과 관련해서, 이것
을 공통의 공간에서 볼 수 있지 않는가, 영화가 큐비즘에 미친 사례로 있지 않는가?

답) 우선 보편화에 관해서는, 상이한 문화들이 존재하고, 우리는 타문화의 경험에서 보편성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것은 미학
적, 경험적 문제이며, 특수성의 문제에서 보편성으로 가는 문제이다. 칸트는 개념이 없이 (작동하는) 아름다움에서 보편화과정을 보
았다. 다음으로 기술과 매체에 관련해서, 나는 기술의 발달이 새로운 공통공간을 만들어 낸다고 보지 않는다. 특정 매체도 마찬가지
인데, 알려진 대로 (둘이 결합된 사례로서) 비디오 아트를 예로 들어 보자. 당시 사람들은 비디오 아트의 새로움, 시선의 변화
가 지각방식의 변화를 자동적으로 형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동시대 세계의 정치적 주체화의 형태들, 2008/12/06, 중앙대

질) 당신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자본이 항상 새로운 ‘아무것도 아닌 자들’을 만들어 내지 않는가? 따라서 그들보다 자본이 항상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닌가?

답) 물론 모든 체계는 자신의 원리를 지속하려 하고 기능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긴장과 갈등을 겪는다. 자본주의는 갈등
(또는 모순)을 내재한다. 네그리와 같은 경우나, 맑스주의자들의 일부는 자본주의 자체는 내부에 파국을 내재하고 있다고 본다. 어
떻든 하나의 체계로서 자본주의는 가지조절체계이고 재생산을 지속하려 한다. 하지만, 최근의 경제위기에서 보듯이 자본주의는 전혀 완
결적인 자기조절체계가 아니다. 체계가 폐쇄되고 완결되었다는 주장은 역사적으로 항상 무너져 왔으며, 이점에서 자본주의도 예외가 아
니다.

질) 제도화나 당의 문제를 거치지 않고, 과연 아무나가 가진 능력이 어떻게 가능한가?

답) 당 형태가 여러 가지 기능을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모든 당의 기본 목적은 권력의 쟁취, 획득이다. 반면에, 정치는 국
가-당 형태에서 독립된 것이다. 정치는 인민의 고유화하는 힘이다. 정치는 집단적 주체화의 보편화하는 힘에 기초한다. 정치는 국
가 통치와 관련된 몫에 관련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하지만 가능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국가영역과는
다른 공적 영역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틈새, 틈 속에서 ‘공통의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틈에서 삶의 형태와 토론
이 가능한 영역이 구축된다.

질) 탈정체성에서 공통의 형상을 발명하는 것이, 특히 새로운 국제주의와 유사한 논의로 보인다. 또한 그것은 그러한 조건에서 가상
적인 보편성의 형성과 유사해 보인다.

답) 정치적 보편화의 측면에서 볼 때, 우선 국제주의는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가령 국가들 사이의 국제주의, 자본들 사이의 국제
주의, 노동자들 사이의 국제주의, 오늘날 국가에 맞서는 국가주의를 들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국제주의가 어떤 실체화된 영역처
럼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나는 틈새, 예컨대 이주민의 문제에서 국제주의를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G8 반대 투쟁은 국민국가의 틈새가 아니라, 국제문제 자체에 한정되고 만다. 불법체류자의 문제처럼, 틈새에서 국제주의를 보아야
정치적 보편화로 나갈 수 있다.

질) ‘몫 없는 자들’은 이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즉, 이미 특정 정체성을 가진 상태에서 출발하는 탈정체화가 아
닌가?

답) (통역자가 보기에)이 질문은 잘못된 질문 같은데 통역을 하자면, 몫 없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자들을 의미한다. 몫 없는
자들은 사회(학)적인 특정한 범주, 예를 들어 주변부 주민과 같은 것이 아니다. 이들은 일정한 정체성에서 탈정체화하는 과정에서
모두가 가진 능력을 현시하는 자들이다. 특수한 집단에서가 아닌, 누구나가 가진 능력이란 의미에서 ‘전체’이지, 특정한 주민(의
일부)이나 노동자가 아니다.

질) 당신이 사용하는 치안(police)의 개념이 푸코가 <생명정치>나 <안전, 영토, 인구> 등에서 사용하는 치안의 사용법과
친화성을 갖는가? 푸코의 개념과 변별점은 무엇인가?

답) 푸코의 경우, 치안을 정치의 경우(또는 사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수단이나 장치로 사용한다. 즉 푸코는 치안
을 신체에 대한 기술, 테크놀로지의 측면에서 접근한다. 반면에, 나는 사회의 상징적인 편성에 관련된 것으로 치안을 바라본다. 특
히, 보충적인(또는 여분의) 요소를 배제하는 것으로서 치안을 파악하며, 보충적 요소를 기입하는 것이 정치이다. 이것은 권력도 기
술도 아니다. 감각적인 것의 나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나눔 등 여러 가지 나눔의 한 가지 방식이 치안일 뿐이다.

질) 물론 당신의 주장처럼, 맑스에게서 프롤레타리아트는 모든 계급을 소멸시키는 계급이다. 하지만 당신에 따를 때, 프롤레타리아트
가 경제적인 피압박 계급이 아니라면 과연 프롤레타리아트는 무엇인가?

답) 프롤레타리아 개념의 기원은 원래 경제적인 것과 관계없이 시작되었다. 이 말은 애초에는 아이를 낳는 사람이란 뜻이었다. 말
그대로 상징적인 몫이 없는 자들, 즉 단지 생물학적인 재생산만을 하는 자들이었다. 우리가 ‘정치적’으로 프롤레타리아라는 말을 사
용할 때, 셈해지지 않는 셈을 하는 것이고, 상징적으로 몫 없는 자들을 가리키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맑스는 물론 경제에서 이 표
현을 강조하였지만 정치적인 주체화에서도 사용하였으며, 맑스에게는 이런 측면에서 긴장이 존재한다. 나는 후자를 강조하는 것이다.
네그리 같은 경우, (정치적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경제적인) 인지 노동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를 경
제적 범주가 아니라 정치적 범주로 사유해야 한다.

질) 바디우가 말하는 ‘공백’과 당신이 말하는 ‘아무것도 아닌 자들’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답) 나와는 달리, 바디우는 정치를 체계 속에서 사유한다. 특히 집합이론에 의존하며, 집합론에서 공백의 존재에서 정치를 사유한
다. 말하자면 체계에서, 같은 말이지만 공백에서 주체화가 이루어지는 일반화를 사유한다. 나는 체계가 아니라 독특성에서 정치와 주
체를, 또한 역사적으로 구체적으로 정치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역사적으로 등장했던 슬로건과 발화 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들과 전
체가 관계 맺는 것을 탐색한다. 나는 역사 속에서 발견되는 독특성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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