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현대사회이론 책을 통해 마르크스, 베버, 뒤르켐의 계급, 경제적 불평등, 이상적 사회에 대한 견해를 알아보고 비교할 수 있다. 계급에 대해 계급 무엇인가, 위치인가 공동체인가, 집합행동의 가장 중요한 주체인가에 대한 질문과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경제적 불평등의 원천은 무엇인가, 정당한가에 대한 질문과 이상적인 사회에 대해 이상적인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이상적인 사회를 실현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들을 중점으로 비교해 볼 것이다.
먼저 마르크스의 관점을 살펴보면 사회발전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끊임없는 생산적 상호작용의 결과이며 생산 활동은 사회의 근원이고 생산관계가 진전된 분업을 수반하고, 이 분업이 소수 집단에 의해 전유될 수 있는 잉여생산의 축적을 가능케 하고, 이 소수집단이 생산자 대중에 대해 착취자로서 관계를 맺게 될 때 계급이 출현한다고 하였다. 마르크스의 계급 개념의 핵심은, 인간집단들이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권에 대해 어떤 식으로 관계 맺는가에 따라서 정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계급은 위치가 아닌 공동체로 생각 할 수 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모든 계급사회들은 양분법적인 계급관계 모델인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가지게 되고 필연적으로 이들은 갈등 관계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계급체제와 계급갈등의 성격은 뒤이어 나타나는 사회형태들의 출현에 따라서 상당이 달라지고 이러한 계급들은 사회의 상부구조 사이의 주된 연결 장치가 된다. 즉 계급관계를 주축으로 정치권력이 분배되고, 정치조직이 형성되기 때문에 계급을 집합행동의 가장 중요한 주체로 볼 수 있다.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마르크스의 관점은 계급이란 생산관계의 한 측면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출발할 수 있다. 생산관계에서 생산은 혼자 할 수 없고 공동으로 해야 하는데 생산 수단을 소유한 소수의 지시자와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다수의 따르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노동력만을 제공하게 되고 잉여생산물이 생기게 되면서 많은 잉여생산물을 지시자가 축적해 나가게 되면서 불평등이 생기고 이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사회 체제의 이행 과정에서 경제적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마르크스가 생각한 이상사회는 기존의 지배, 피지배 계급 사이의 갈등이 완전히 사라지고 사적 소유와 국가가 없어지고 높은 생산력을 유지하지만 제약이 없고 자기 실현을 위한 일을 하는 공산주의 사회라고 생각 했다. 그리고 이 이상적 사회를 실현 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이전의 착취 양식을 타파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음으로 뒤르켐의 관점을 살펴보자. 뒤르켐의 시대를 살펴보면 목적론적 경향이 강했고 자유주의의 위기가 있었고 역사철학의 인기가 떨어지고 경형과학(통계학)의 인기가 오르고 있었다. 이것에 영향을 받아 뒤르켐은 통계학을 통해 추상적인 자유주의를 공격하였고 막스와 동일하게 구조주의 자였다. 뒤르켐의 계급론은 세명의 계급론 중 가장 취약한데 뒤르켐의 경우는 자신이 살던 시대를 분업이 발달한 사회로 생각 하였고 그러한 상황에서는 불평등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불평등을 정당화 할 수 있는 불평등과 정당화 할 수 없는 불평등으로 나누었는데 정당화 할 수 있는 불평등은 기회가 평등한 상황에서 공동체 서로의 의무와 기여를 서로 인식하고 제도화 되었을 때 발생한다고 하였다. 반면 정당화 할 수 없는 불평등, 즉 아노미적인 분업은 개인간의 과다한 경쟁을 조장하여 규범이 사라진 상황에서 발생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는 개인의 능력을 가로막는 제도가 많고 어떤 일의 결과의 차이가 너무 크게 된다. 즉 차별에 기초한 분업이다.
이렇게 뒤르켐은 아노미적 분업인 정당화 할 수 없는 불평등을 없애면서 이상적인 사회를 생각했다. 뒤르켐은 개인의 선택이나 행동에 의해 사회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할 수 있는 상당부분이 외재에 존재하는 것들에 의해 강압적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개인은 아주 약하다고 생각하였고 산업사회로 개인주의에 기초하여 동질성과 같은 전통적 집합의식이 없는 근대사회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직업집단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그는 직업집단을 복원하고 활성화 하면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개인은 국가에 대적할 수 없기 때문에 집단의 중요성을 강조 했다. 그리고 조합이 존재하여 이러한 2차 집단이 1차집단과 같아져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전문가 집단이 개인을 교육함으로써 해결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국가의 역할도 중요하게 생각 했는데 국가로 인해 이익집단의 이익이 조절 될 수 있기 때문에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도덕적 규제를 강화하고 직업집단과 함께 서로의 단점을 보안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베버의 관점을 살펴보면 베버는 합리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합리성은 이성적이고 어떤 것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 계층의 다양성을 주장 하였고 사회에는 법칙이 없고 이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다르게 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베버의 계급은 시장에 제공할 수 있는 자산, 능력의 종류에 따라 구분 된다고 하였고 시장이 계급을 만들어 내었다고 주장했다. 즉, 자본주의와 더불어 계급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노예와 영주는 계급이 아닌 지위 집단으로 구분 했다. 그리고 계급간의 연대성은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한 계급에서 여러 지위들 간의 갈등으로 인해 계급이 와해될 수 있다고 생각 했으며 계급과 지위집단은 상호 베타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계급을 공동체라고 생각 했지만 집합행동의 가장 중요한 주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베버는 생활 기회의 불평등을 만드는 것이 다양하다는 다층성, 다원론을 주장했다. 이것의 원천으로는 economic, social, political 이 있으며 서로 연관되지 않은 독립적인 것이라고 주장 했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는 권력 투쟁이며 권력은 지배 피지배관계를 만들며 피지배층이 자신의 위치를 수락하고 정당성을 받아드릴 때 안정적 불평등 상태가 형성된다고 했다. 그리고 이 관계를 정당화 시키기 위해 전통적, 카리스마적, 합리적인 방법으로 정당화 시켰다.
그리고 이런 전통적, 카리스마적, 합리적 지배를 통해 발전해 오다가 근대, 현대에 들어서 합리적 지배가 강화되는 면모를 보였다. 합리적 지배가 강화된다는 것은 관료제가 강화 되는 것인데 이것에 의해 인간소외를 가져오고 민주주의 발달에 부정적일 것으로 생각하여 근대, 현대 사회의 미래를 암울하게 보았다.
이렇게 마르크스, 뒤르켐, 베버가 생각하는 계급, 불평등, 이상적 사회를 알아 보았다. 세 명의 학자들이 비슷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있고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보는 것도 있었다. 이것은 세 명의 학자가 살아온 시대, 교육, 환경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렇게 계급, 불평등, 이상적 사회에 대해 유명한 학자 세 명의 관점을 공부하면서 지금 현재의 시점에서는 어떻게 생각 할 수 있는가 많은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맑스, 베버, 뒤르켐의 계급론을 비교하되 다음과 같은 측면들을 두루 살피면서 논의하시오.
[마르크스, 베버, 뒤르케임의 계급론 비교]
20061105 나선윤
사회학이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즉 인간의 사회적 공동생활을 설명하려는 학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누군가를 만나고 이해하며 때로는 대립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현상들을 분석하려고 시도하면서 다양한 사상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언가에 대한 논의는 바야흐로 계급, 경제적 불평등, 나아가 이상적 사회의 실현이라는 난제를 우리에게 던져주었다. 이렇듯 변모하는 사회가 만들어내는 진통 속에서 이를 설명하고 해결하고자 생각한 세 사람의 위대한 사상가가 있다. 마르크스, 뒤르케임, 베버가 바로 그들이다. 이 세 사람은 같은 문제에 대해 저마다 다른 시대상황을 겪으면서 각자의 독특한 의견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과연 이 세 사상가들이 바라본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먼저 마르크스는 유물론적 관점에서 사회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다른 하등동물과 다른 이유는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해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생산을 한다는 것이다. 생산이란 활동은 혼자 할 수 없기에 근본적으로 사회적 활동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형성된 생산관계는 생산수단의 소유와 생산물의 분배 방식에 따른 지배․종속을 내포하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노예제 사회에서의 주인과 노예, 봉건사회에서의 영주와 농노,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본가와 노동가처럼 말이다. 역사가 발전됨에 따라 형태가 달라질 뿐 그 본질인 지배․종속의 관계는 결국 다양한 형태의 갈등을 자아내며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곧 계급관계이다. 정리하자면, 마르크스는 ‘생산관계를 기반으로 형성된 지배와 갈등 관계, 적대적 관계에 있는 몇 개의 커다란 집단’을 계급이라 정의내린 것이다. 그는 객관적으로 특정한 계급위치에 속하는 것만으로는 어떠한 사회변혁도 이루어낼 수 없다고 보았다. 계급으로 분할된 관계 속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각을 가지는 것만이 사회적․역사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즉, 타 계급에 대한 적대의식과 소속된 집단에 대한 동질감을 통해 계급으로서의 자기의식을 지니게 됐을 때, 계급투쟁을 통한 진정한 사회변혁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렇듯 마르크스가 말하는 계급으로부터 야기된 경제적 불평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부구조 이론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사회를 경제적․물질적 토대가 되는 하부구조와, 당대의 하부구조에의 특성에 따라 그 형태가 규정되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로 설명하고자 했다. 이러한 상부구조는 하부구조하의 지배계급의 이해를 반영한다. 앞서 말했다시피 지배․피지배계급을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노예, 토지, 자본과 같은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이다. 생산수단의 독점적 활용은 사유재산의 차이를 만들어내고 계급투쟁의 원인이 된다. 이렇듯 지배계급은 기존의 생산관계를 유지하고자 끊임없이 지배 이데올로기를 유포하고 심지어는 경제외적 강제를 행하기도 한다. 이는 결국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불평등을 자아내는 근본적 원인이기도 하다.
마르크스는 이런 경제적․정치적 불평등 속에서의 생산관계는 결국 역사적 흐름을 타고 변동을 겪을 것이라 보았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생산력은 끊임없이 발전해 온 데 비해 생산관계는 쉽사리 변하지 않아 정체를 겪기 마련이다. 어느 순간에 기존의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발전을 잡아끄는 족쇄로 작용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생산력과 생산관계 간의 모순이 발생하여 기존의 사회를 변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된다. 이처럼 근본적인 생산양식의 변혁은 궁극적으로 새로운 사회로의 면모를 갖추는 굉장히 폭력적인 성향의 혁명 과정이라고 마르크스는 보았던 것이다. 그는 앞서 말한 것처럼 지금의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자기모순에 빠질 것이라고 보았다. 자본가 계급에 대한 피지배 계급인 노동자들의 저항과 투쟁은 결국 자본주의를 공산주의라는 이상적 사회로 변모시킬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공산주의 사회란 기존의 지배․피지배 계급간의 모든 갈등이 사라지고,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하여 자기실현으로서의 노동을 실천 가능한 평등사회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편 뒤르케임은 기능주의적․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사회를 분석하는데 주력했다. 그는 자신이 살던 당대 사회의 특징을 분업이 발달한 사회로 규정지으면서, 분업의 결과로서 불평등이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공동체에 대한 서로의 의무와 기여를 이해하고, 모든 개인들에게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는 사회 속에서의, 즉 도덕성과 공정성이 보장된 정상적 상태의 분업 하에 일어나는 불평등을 도덕적 불평등이라고 정의내린 것이다. 그에 반해, 급속한 사회변화 속에서는 개인들이 규범적 혼란을 겪으면서 부도덕적 불평등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이는 사회적 규제의 미비로 인한 아노미적 분업이나 개인들의 능력 실현을 가로막는 규칙의 존재로 야기되는 강압적 분업처럼 병리적 상태의 분업이 야기한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사회 발전의 원동력을 분업으로 생각한 뒤르케임은 사회의 병리적 상태, 다시 말해 아노미적 상태를 문제시 삼으며, 그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을 통해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그려보고자 했다. 그는 사회가 개인에 선행한다고 보았다. 개인의 선택이나 행동에 의해 사회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할 수 있는 상당부분이 외재에 존재하는 것들에 의해 강압적으로 결정된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사회는 개인으로서는 결코 발현할 수 없는 특성이 존재하는 일종의 유기적 체계로 결론지었다. 이는 사회 연대 방식의 변화를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한데, 그는 전근대사회와 근대사회를 구분지으며 연대의 변화를 설명했다. 먼저 분업이 미발달한 전근대 사회는 농경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로서 개인들의 동질성을 바탕으로 기계적 연대를 유지한다고 보았다. 이는 근대사회로 넘어오면서 분업의 발달과 더불어 유기적 연대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근대 사회는 산업사회로 개인주의에 기초하기에 더 이상 동질성과 같은 전통적 집합의식이 바탕이 되지 못한다. 이를 대체하여 새로운 유형의 연대를 형성하는 요인을 뒤르케임은 분업을 통한 기능적 의존성의 발달로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급속한 사회 변화 속에서 이전의 신념들이 흔들리면서 새로운 연대로의 발현보다는 연대를 저해하고 사회가 부도덕해지는 상태가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를 아노미적 상태라 설명하며 현대사회의 중심적인 사회문제라고 생각했다. 이런 아노미 상태를 해결하고 유기적 연대를 탄탄히 하기 위해서는 개인들을 묶어 줄 새로운 도덕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뒤르케임은 주장한다. 그는 대안으로 가장 먼저 직업집단의 복원을 말한다. 직업집단은 이전 사회에서의 친족집단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면서 도덕적 고립 상태에 빠진 개인을 구원하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성장을 통해 시민 도덕의 근간을 제시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직업집단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다음으로는 이러한 이익집단을 묶어줄 수 있는 집합적 존재의 표상으로서 국가의 존재를 강조했다. 직업집단과 국가가 서로의 위험성을 견지해가며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나감으로써 정상적인 사회질서를 회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루기를 기대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베버의 주장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베버는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았지만, 역사유물론을 비롯한 몇몇 주장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그는 역사유물론이 경제적 요인의 중요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계급을 보다 다양한 경제적 요소를 통해 다원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그는 소유의 차이가 계급위치를 결정짓는 요인임을 인정하면서도 사회적 불평등은 그 형태에 따라 서로 다른 토대로부터 기인한다고 본 것이다. 이를테면 경제적 측면에서의 계급집단, 사회적 측면에서의 지위집단, 정치적 측면에서의 파벌처럼 말이다. 이들은 분명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지만 근본적으로는 독립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있어 계급은 불평등을 야기하는 다양한 원인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러한 독립적 관점에서 베버는 해당 사회의 산업구조 및 시장상황에 따라 개인이 재화를 얻을 수 있는 기회의 차이가 주어지고, 이는 곧 삶의 기회의 차이로 이어지며 이를 통해 계급이 형성된다고 본 것이다. 이렇듯 소유의 종류에 따라 계급위치를 세분화하였기에, 더욱 사회적 변동을 야기하는 집합적 행동이 일어나기가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베버는 다원론적 입장에서 계급 현상을 파악했기에, 그에 따른 불평등 역시 여러 요인을 통해 형성됨을 알 수 있다. 그는 권력과 권위에 의한 지배의 현상에 매우 주목했다. 그는 권력을 ‘상대에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힘’이라 정의하면서, 이를 통해 불평등을 어떤 규칙적 유형으로 정립하는 과정을 지배라고 보았다. 이 과정에서 피지배계급이 서열체계하의 자신의 위치를 수락하고, 나아가 지배계층의 지시를 따를 때 안정적 불평등 상태가 형성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러한 불평등의 정당성을 확립하는 기반을 세 가지로 분류했는데, 전통적 지배, 카리스마적 지배, 합리적 지배가 바로 그것이다.
이 중 베버는 전근대사회에서 현대사회로의 이행을 합리화, 탈주술화의 과정으로 보았다. 그는 현대사회의 자본주의가 급격히 발달한 이유를 바로 프로테스탄트 윤리에서 보이는 합리성에서 찾으려고 했다.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예정설을 근간으로 근면과 금욕에 힘쓰는 종교적 성향을 보이는데, 이는 곧 자본주의 정신의 근간으로서 그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처럼 그는 다양한 사회영역에서 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합리화를 통해 설명하면서 현대국가의 발달 역시 합리적 지배를 통해 나타내고자 노력했다. 역사적 변천 과정을 보면 합리적 지배, 즉 법을 통한 지배가 경향적으로 강화되는 면모를 보이는데, 이는 곧 관료제의 강화로 이어진다고 베버는 주장한다. 하지만 동시에 합리화로 발달한 사회가 결국 비합리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현대사회에서 합리화를 통해 관료제가 발달하고, 이는 결국 모든 사회문제의 해결을 관료제의 강화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면모를 나타내게 된다고 주장한다. 관료제의 지나친 팽배는 결국 인간을 수단으로 봄으로써 인간소외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발달에 매우 부정적일 수 있다고 바라본 것이다. ‘인류의 미래는 어떠한 에너지도 잃은 채 관료제의 쇠창살에 갇힌 상태가 될 것이다.’라는 베버의 주장은 합리화의 역설로 인해 나타나는 사회의 모습을 확연히 보여준다.
지금까지 마르크스, 뒤르케임, 베버가 그려내는 사회의 모습, 그 중에서도 계급론과 불평등론, 그리고 그들이 보는 이상사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저마다의 관점으로 바라 본 사회는 몇몇 같은 주장들도 보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각자만의 독특한 시각을 확연히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지금은 그들이 살아갔던 사회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양한 학자들이 지금도 새로운 사회이론을 주창하고 있지만 그들의 생각의 큰 부분이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이 세 사상가로부터 비롯된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다시 한 번 이 세 사상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될지 한번 쯤 생각해보는 시간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사회학특강 - Essay - 맑스, 뒤르케임, 베버의 계급론 비교
20110208 화학공학과
박성민
먼 과거에서나 지금 우리가 사는 현재에서나 인간사회에서는 항상 계급 혹은 계층이라는 것이 존재해 왔다. 이 계급에 의해 우리는 각자의 클래스를 인식하고, 업무가 분담되기도 하며, 생활양식까지 달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계급에 관한 연구는 근대사회에서부터 많은 사회학자로부터 연구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였으며, 이로부터 수많은 가설, 의견, 주장들이 생겼다. 지금부터는 근대 이후의 인간사회에서의 계급연구에 큰 영향을 끼친 맑스와 베버, 뒤르케임의 입장을 통해 계급이라는 것이 어떤 특징들을 내포하고 있는지 알아볼 것이다.
먼저 계급이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근대 이후의 사회 상황으로 바라보았을 때, 가장 먼저 나온 계급의 개념은 맑스가 제안하였다. 맑스는 계급을 지배와 피지배 관계에 의거한 이원론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는 근대사회뿐 아니라 더 이전의 사회에서도 발생하는데, 노예제의 사회에서는 노예소유주와 노예, 이후 봉건제의 사회에서는 영주와 농노, 근대사회에서 바라보면 자본가와 노동자로 이들 모두 지배-피지배 관계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계급의 개념은 다양하게 분화된 사회에서는 적용하는데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의 백정과 같이 경제적으로는 상당한 위치에 있음에도, 사회적으로는 천대받는 직업을 이원론적으로는 분석하기 어렵다. 따라서 맑스의 계급 개념을 보완하여 등장한 것이 베버의 계급 개념이다. 베버는 계급을 소득, 직업, 권력, 교육 등 다양한 요소들이 서열화가 되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았다. 즉, 계급은 각 요소에 의해 다양화되고 분화 된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맑스의 이원론적 계급과는 확실히 다른 개념이다. 뒤르케임은 구조주의적인 관점으로 계급을 설명하려 하였다. 그는 어떠한 사회 내에서 한 사람, 또는 집단이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가 그 사람이나 집단의 행동양식을 결정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계급의 위치에 따라서 행동양식의 차이가 발생하고, 이는 전근대의 기계적 연대, 혹은 근대의 유기적 연대의 형태로 계급 집단을 구성한다.
마르크스는 그의 계급론에 의거해 계급의 집합행동에 대해 생각해 보면, 계급의 적대적인 경제구조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면, 계급의식이나 자의식이 계급 집단 내에 생성되게 되고, 이는 혁명, 또는 반란, 시위 등 집합행동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어 한 사회의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영향을 끼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은 나의 생각이지만 이러한 변화를 일으킬 집단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지배관계에 놓여있는 계급 집단에 의해 발생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한다. 즉, 계급 집단은 그들의 집합행동을 통하여 사회 다방면의 점진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주체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 이렇게 계급 사회에서 발생하는 불평등, 그중에서도 경제적 불평등이 일어나는 원천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지 알아보자. 베버는 경제적 불평등뿐 아니라 다른 불평등에 대해서도 분석을 하였는데, 사회적 불평등에는 지위(status), 정치적 불평등에는 파벌(party), 마지막으로 경제적인 불평등에는 계층(class)을 각각의 불평등에 대한 원천으로 언급하였다. 맑스의 경우, 경제적 불평등의 원천을 생산수단으로 보았다. 이 생산수단을 소수 자본가가 소유하게 됨으로써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게 되는 다수 사람, 노동자들을 지배하는 관계가 만들어져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생산관계가 계급 사회의 불평등을 야기한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뒤르케임은 위의 두 사회학자와는 약간 다른 견해를 밝힌다. 뒤르케임은 자연적 위계가 존재하고 특별한 임무의 부여, 또는 전문성을 위해서 불평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 그는 이러한 불평등을 정당화된 불평등(?)으로, 공동체에 대한 의무와 능력을 인정할 때, 제도화가 될 때의 불평등으로 정리하였다. 즉, 뒤르케임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차이에 근거한 경제적인 불평등은 정상(normal)적인 개념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정당화 된 불평등이 있는 반면, 사회 내에서 도덕적인 규범 등이 무너진 상태는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를 아노미 또는 아노미적 차별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렇다면 계급과 불평등에도 맑스와 베버, 뒤르케임이 꿈을 꾸었던 이상적인 사회는 어떠한 사회일지 생각해보자. 이 역시 각각의 사회학자에 따라서 꿈꾸는 이상 사회가 다른데, 가장 먼저 맑스는 개개인의 생산수단이 철폐된 사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이상 사회로 꼽았다. 즉, 맑스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자본가-노동자 사이의 지배-피지배 관계가 사라진 사회를 가장 이상적인 사회로 본 것이다. 뒤르케임은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자연적인 불평등은 인정하였지만, 이외의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불평등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지 않았다. 즉, 자연스러운 분업의 형태가 아닌 기회의 평등한 보장에 대해 장애물들이 존재하는 강압적인 분업에 대해서는 생각을 같이 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그는 아노미 적 차별의 폐지를 주장하였는데, 이를 위해 도덕적 규제를 재확립하는 것이 불평등을 없앨 수 있는, 이상사회를 건설 가능하게 하는 방법으로 보았다. 그는 구체적으로 직업 집단의 복원과 활성화, 또 2차집단의 1차집단화를 언급하였는데, 이러한 연대의 개념을 통해 전문가의 집단이 활성화되어 아노미적 분업을 최소한으로 만들어 불평등을 없앨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베버 역시 여러 가지 주장을 통해 그가 생각하는 이상 사회를 추측해볼 수 있다. 그는 합리성을 가장 중요한 자신의 키워드로 생각하였는데, 이 때문에 이론적, 실질적, 가치, 도구적 등의 부분에서 합리적인 사고와 합리성을 통해 정당화가 이루어지는 사회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러한 이상적 사회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상속제도와 자본(돈)이라고 생각된다. 자본은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 악화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이 될 뿐 아니라, 이로 인해 다른 가치들이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또한, 여기에 상속제도가 존재한다면 자본에 의해 기회의 평등한 보장의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며, 이를 통해 경제, 사회, 정치 부분에서도 동등한 기회보장을 어렵게 만든다.
지금 까지 언급되었듯이 맑스, 뒤르케임, 베버의 계급론은 계급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있을뿐더러, 이들이 말했던 의견, 주장들에도 유사점과 차이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이 꿈꾸었던 이상사회는 유사할 것으로 생각된다. 불평등이 사라지고, 계급 집단 간의 차별이 최소한으로 이루어지는 사회, 비록 맑스, 뒤르케임, 베버는 이 이상사회로 가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인간사회를 이상적으로 만들기 위해 연구를 했었을 것이다.
20110433
강태형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 경제..등 각종 분야에서 새로운 현상이 발생하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의 우선순위가 뒤바뀌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변동을 맞는 사회를 규명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바로 사회학자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사회학자들로는 마르크스, 뒤르케임, 베버가 있는데, 지금부터 이들의 계급론에 대해서 논의해보자.
가장 먼저, 마르크스는 계급 자체가 경제적 요소에 의해 변화를 겪는 사회 속에 존재하는 불평등에서 출발한다고 주장하였다. 역사 속에서 피지배 계급과 지배 계급이 지속적으로 존재하였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다. 지배 계급은 피지배 계급을 이해하려하지 않았고 결국 혁명에 의해 몰락하게 되었다. 이로 미루어 보아 계급은 집합행동의 가장 중요한 주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마르크스는 경제적 불평등의 원천을 자의식이 투영된 생산 활동의 부재에서 찾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특징을 ‘이윤획득을 목적으로 상품생산이 이루어진다는 점, 노동력이 상품화된다는 점’ 등으로 보았는데 이 부분에서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경제적 불평등이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마르크스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보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경제적 불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자본주의와는 달리 복지국가의 이념을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는 평등한 분배를 도모하기 때문이다.
뒤르케임의 주장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구조주의이다. 뒤르케임은 인간의 행동과 여러 가지 선택은 모두 사회 구조 때문이므로 인간의 행동은 별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그의 자살에 대한 관점인데 전에는 죄악으로만 여겨졌거나 어떠한 정신병으로 여겨졌던 자살이 사실은 사회가 부여하는 가치관에 의해 일어나는 것임을 밝혀낸 것이다. 또한 뒤르케임은 혈연, 지연, 학연..등 과 같은 강압적 불평등은 부당하지만 각기 다른 개인의 능력을 요구하는 분업 체계의 발전에 따라 생겨나는 경제적 불평등은 정당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공통점을 기반으로 했던 기계적인 연대에서 노동 분업으로 인해 근대사회는 유기적인 연대를 특징으로 가지게 된다. 이 때 기존의 집단과 다른 성격의 집단에 속하게 되었을 경우 이 집단에 적응해야 하는데 집단의 규범이 뚜렷하게 정립되지 않거나 정립되어 있더라도 적응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무규범 상태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아노미적 분업에 대한 뒤르케임의 해결 방안 중 하나는 직업 집단 공동체의 활성화를 들 수 있다.
한편 베버는 이원론을 주장한 마르크스의 견해와 달리 계급이 다원적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고로 불평등이 경제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불평등의 원천: class,status,party) 따라서 베버에게 계급이란 공동체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한 베버는 전근대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종교, 관습 등에 기반 한 전통적 믿음(ex) 가톨릭- 면죄부)에서 벗어나 합리성(rationality)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베버는 인류에 대해 가장 어두운 예견을 한 학자중 하나인데 그 이유는 법적 합리적 지배가 만들어진 사회는 경향적으로 관료제가 강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료제가 강화되면 모든 사건들이 법에 의해 판결되므로 당연히 관료들에 대한 의존성이 점진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계급론 비교
20090495 문성훈
1. 마르크스
마르크스에 따르면, 계급은 경제적 요소, 즉 자본의 소유 여부에 따라 생성되고 다른 계급과 구별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 내의 계급은 자본을 소유한 부르주아지와 자본이 없는, 즉 무산계급인 프롤레타리아로 나뉜다. 이들은 필연적으로 서로 적대적 관계인데, 그 관계는 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의 생산물이나 생산 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그들의 자아 실현의 기회를 잃어버린다. 마르크스에게 계급은 모든 인간 활동의 원천인데, 이는 문화, 종교, 도덕 등의 상부구조는 하부구조, 즉 계급 질서나 생산 관계 등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경제적 불평등의 원천을 생산 수단이나 자본의 소유 여부에서 보았다. 생산 수단을 가진 계급은 다른 계급을 착취하고 이 과정에서 불평등이 생긴다고 본 것이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이런 현상은 정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없어질 것으로 보았는데, 자본주의 이전의 체제에서는 이전의 지배계급이 다른 계급으로 교체되는 데에 불과했다면 자본주의의 붕괴 이후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체제를 거쳐 불평등이 없는 체제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마르크스가 본 이상적인 사회는 자본주의 체제 그 이상의 것이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 체제는 그 내부모순으로 인해 혁명으로 무너지고 이를 사회주의 체제가 대체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사회주의 체제는 단지 과도기적 단계일 뿐이고 최종적으로는 이상적인 공산주의 체제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 체제는 노동자가 더 이상 자신의 생산물에서 소외되지 않는 사회라고 마르크스는 설명한다. 마르크스가 보기에는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장애물은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마르크스는 역사적 필연성으로 인해 자본주의가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모순이 극에 달하면 프롤레타리아는 필연적인 혁명으로 부르주아지의 착취 체제를 타도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 체제를 수립한다.
2. 뒤르켕
뒤르켕은 마르크스처럼 계급을 서로 대립하는 관계로 보지 않았고 재능과 능력의 차이에 따른 분업의 결과로 각 집단이 구분된다고 보았다. 뒤르켕에 따르면 사회 집단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가 그것이다. 기계적 연대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지니고 있는 동질감, 이를테면 가족이나 종교 등으로 인해 생기는 연대감이라면 유기적 연대는 분업의 결과, 즉 서로 간의 차이점에 기초하여 생기는 집단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와는 다르게 뒤르켕이 보는 계급은 위치라기보다는 공동체에 가까울 것이다.
뒤르켕의 시각에서 볼 때에 사회적 불평등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자연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평등이 있다. 자연적 불평등은 선천적인 능력의 차이에서 오는 분업과 이윤의 배분에 따른 불평등이고 뒤르켕은 이런 불평등은 정당하다고 본다. 하지만 사회적 불평등의 경우는 비정상적인 분업에서 오는 불평등이고 이는 개인의 선천적인 능력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당하지 않다고 본다.
뒤르켕의 이상적인 사회는 아마 개인 – 직업집단 – 국가의 구조를 잘 갖춘 체제일 것이다. 이 사회 구조에서 직업집단은 선천적인 능력에 따른 분업에 의한 유기적 연대의 결과물로서 개인과 국가 사이의 갈등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한 국가는 단순히 치안이나 국방 등의 행정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닌 사회 전체에 도덕적 기준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이런 관점대로라면 뒤르켕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마르크스의 것과는 그 특성이 달라지는데, 마르크스가 경제적 관점을 중시하였다면 뒤르켕은 계급혁명으로 인한 사회 발전을 거부하고 사회를 직업집단들의 구조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뒤르켕이 생각한 이상적인 사회의 형성을 방해하는 것은 뒤르켕이 지적한 대로라면 지나친 이기주의 등이 될 것이다. 지나친 이기주의는 도덕적 질서가 없는 아노미 상태로 빠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3. 베버
베버는 계급의 형성은 시장의 형성과 화폐경제의 발달에서 나온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사유재산이 형성되고 계급이 생기며 계급갈등이 형성된다고 본 것이다. 이 점에서는 마르크스와 시각이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마르크스와 그의 차이는 마르크스가 경제적 지위를 프롤레타리아와 자본가 두 단계로 정의한 데 비해 베버는 여러 개의 단계, 즉 자본가, 화이트칼라, 블루칼라 등이 존재한다고 본다. 베버와 마르크스의 사상의 또 다른 차이는 다른 모든 것이 경제적 요소로 해석될 수 있다고 본 마르크스에 비해 베버는 계급뿐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지위도 경제적 지위로 완전히 환원될 수 없는 고유의 계층 구조를 구성하고 이것들은 그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한 것이다.
베버에 따르면 계급 사이의 갈등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데, 베버는 계급 갈등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계급의 사람들이 현재 분배 체제가 부당하다고 여겨질 때에만 발생한다고 본다.
이상적인 사회에 대해 베버는 마르크스의 역사 발전의 논리, 즉 사회의 경제 체제는 필연적으로 진화해서 이상적인 공산주의 체제로 나아갈 것이라는 관점을 거부한다. 뿐만 아니라 베버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옹호하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체제는 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관료제의 폐해로 인해 결코 이상적인 사회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베버의 관점에서는, 서구 합리주의와 관료제는 해결할 수 없는 모순 관계에 빠져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베버의 관점에서는 이상적인 사회는 존재하지 않거나 최소한 서구 합리주의에 기초한 자본주의 내에서는 있을 수 없다.
마르크스, 뒤르켐, 베버의 계급론 비교
20090606 공혜란
마르크스에게 계급은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로 나눠지는 집단이다. 그의 입장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한 집단은 자본가계급과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여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것으로 삶을 사는 노동자 계급으로 나뉜다,
그에게 계급이란 하나의 위치로 계급 내부 사람들의 상호작용을 고려하기보다, 계급 사이의 불평등과 그로 인한 갈등이 사회변동의 주요 원인이라고 말했다. 거대자본가들에게 자본이 집중되어 있고 노동계급은 노동을 착취당하는 관계의 심화로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은 부당하고 그렇기 때문에 부당함을 깨달은 노동계급이 철학에 기반한 반란을 일으켜 사회를 변화시킬 것으로 생각했다. 그에게 이상적인 사회란 계급갈등이 없는, 계급이 자본과 생산수단 소유의 차이로 인해 일어나므로, 결국 계급이 나누지 않는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했다. 이는 공산주의로 그는 곧 자본주의는 내부모순으로 무너질 것이며 사회주의 또한 과도기적 양상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국가의 도래를 예견하였으나 이러한 이상사회가 도래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 내부의 결속력과 동기부여가 중요한데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이 철학에서 근거를 찾고 인간에 대한 성찰을 통해 노동계급이 동기를 얻을 것이라 하였으나 지속적인 노동계급 착취로 인해 이 계급의 사람들에게 사유, 성찰이 불가능할 것이다.
뒤르켐은 기능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회학자로, 계급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나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계급이 나눠지는 것이 효율적인 생산에 바람직하기 때문에 계급이 그렇게 나뉜다는 기능주의적 설명이다. 그에게 계급은 집단이다. 뒤르켐에게 사회는 하나의 유기체로 계급내부와 계급 간의 유대와 연대가 사회 통합에 필수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분업화로 인한 개인주의가 만연할 것이라고 예견하였으나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유대감은 기계적 연대에서 유기적 연대로 형태만 바뀔 뿐 여전히 존재하고 그것이 사회 통합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구조주의적 입장을 취해 사회는 개개인의 합 이상의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분업화가 역사적 산물로서 당연히 발생하는 현상으로 보았고 그로 인해 사회는 관료제가 발전할 것으로 예견하였다. 뒤르켐의 시각에서 관료제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관료제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 그 것이 남용되는 상황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기능주의적으로 설명하자면, 관료제는 생산성을 증가시키며 그렇기 때문에 발전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관료제에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과도한 paper work와 구성원 사이의 연대감의 부재이다. 또한 감시관계로 인한 관료제 내부 비효율성과 부정행위의 발현이다.
마지막으로 베버는 시장(market)에 의해 생기는 경제적 능력의 차이가 계급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장에 의해 생기는 자연적 계급불평등은 사유재산의 합리화와 화폐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화폐는 모든 생산물과 노동까지도 단일화가 가능하도록 하여, 실제적으로는 불균등한 그리고 불평등한 거래를 낳는다. 베버에게 어느 정도 불평등은 자연적 불평등으로 여겨져 시장에 의한 자연스러운 결과로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계급 사이에서 교환과 거래가 합리적으로 일어나야 하지만, 계급간의 권력(power)의 차이로 인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법, 계약이라는 합리적으로 보이는 구조에 의해서 불평등한 거래 안에 갇히는 상황이 일어난다. 이러한 합리성에 갇힌 자본주의 사회의 미래에 비관적인 입장을 보였다.
마르크스, 베버, 뒤르케임의 계급론 비교
컴퓨터공학과
20110193 이동하
가장 먼저 마르크스 계급론의 중요한 특징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지배계급과 그렇지 못한 피지배계급, 이 둘로 계급을 나누었다는 것이다. 그는 역사 유물론을 주장하며 역사적으로 나타났던 계급 관계 및 계급 갈등들을 이러한 이분법적 계급으로 설명하려 하였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마르크스는 계급을 다원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닌 ‘집단’으로 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또한 경제적 불평등의 원천을 소수 지배계급의 ‘착취’를 통한 잉여생산의 축적으로 보았다.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면 계급간의 갈등이 커지게 되고, 생산력의 발전과 정체되어있던 계급관계의 모순이 합쳐질 때 피지배계급이 주체가 되어 집합행동이 일어나게 된다고 설명한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더 나아가 공산주의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보았다. 사회주의에서는 자본가의 생산소유를 철폐하였기에, 생산수단의 소유를 통한 계급과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국가’라는 단일이성이 생산을 관리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지적했던 과잉생산 또한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는 바람직한 노동을 막고 자기실현의 수단으로써의 노동으로부터 인간을 소외시키는 자본주의를 비판하였다. 또한, 자본주의는 과잉생산 때문에 시스템 그 자체로써 지속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고 자본주의가 몰락하게 되면 사회주의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계급론에 대한 뒤르케임의 입장은 마르크스의 갈등론적 입장과는 반대로 기능주의적인 측면을 보인다. 뒤르케임에 따르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능력의 차이를 가지고 있고, 이러한 현상은 자연적으로 분업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분업의 결과로 불평등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노미적 분업이나 강압적 분업 등 비정상적 분업의 경우, 자연적인 불평등 외의 불평등을 낳게 되고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보았다.
뒤르케임은 정상적 분업이 잘 발달한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정상적 분업이 잘 발달하기 위해서 두 가지의 조건이 필요하다고 보았는데, 직업집단의 활성화와 국가의 도덕적 역할이 그것이다. 직업집단을 통해 도덕적 고립으로부터 개인을 구원할 수 있으며 개인들로 하여금 공동체의 가치를 지향하게 할 수 있다. 또한, 국가가 집합의식의 표상이 되어 직업집단 사이의 갈등을 해소시키거나 집단들이 자신들만의 집단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뒤르케임은 ‘상속제도’를 이상적인 사회를 실현하는 데 있어 장애물이라고 평가하고 철폐를 주장하였다. 상속제도야 말로 비정상적 분업, 즉 아노미적 분업과 강압적 분업을 만들어내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막스 베버는 불평등의 다층성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위의 두 사회학자와는 다른 입장을 가진다. 베버가 했던 여러 주장들의 가장 바탕이 되는 특징은 ‘사회현상을 설명의 대상이 아닌 이해의 대상으로 보고 인과적 다원성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계급론에서도 드러나는데, 계급 갈등의 원인을 다양하게 보았다는 점이다. 경제적인 상황으로 발생하는 ‘계급(class)’ 뿐 아니라, 사회적인 요소가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지위(status)’, 정치적인 불평등으로 발생하는 ‘파당(party)’ 등 여러 불평등을 다원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베버에게 ‘계급’이란 경제적인 시장 상황(Market Situation)을 공유하는 집단이었고, 어떤 집단 내에서도 시장 상황에 따라 계급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상황과 다른 지위집단의 영향으로 계급 내의 집단의식이 강하지 않으며, 이는 계급이 집합행동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막스 베버는 권력 투쟁의 역사에서 나타난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여러 지배 형태에 의해 정당성이 부여된다고 보았다. 전근대적 사회에서는 전통적 지배나 카리스마적 지배가 우세했던 반면, 근대 사회에서는 법적 합리적 지배가 강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책과 글에 기반하여 지배를 정당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서도 알 수 있듯, 베버는 합리성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발전하게 되고 미래에는 합리주의가 팽배한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베버는 사회문제를 모두 법이나 관료제를 통해 해결하려는 미래 사회를 암울하게 평가하였다.
<사회학 특강 Report>
Karl Marx, Max Weber, Emile Durkheim의 계급론
산업경영공학과
20110137 김호겸
우리 사회는 불안정하다. 어느 사회에서나 그 사회에서의 문제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고 크고작게 다르다.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사회학은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학문이다. 사회의 문제를 깨닫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데 있어서 마르크스, 베버, 뒤르케임 다음 3명의 학자의 견해와 이론은 현재까지도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중에서도 그들의 계급론에 대해 말해볼 수 있겠다.
그들의 계급론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앞서, 계급론이 무엇인지 알아보아야 한다. 계급론(Theory of class)이란 사회가 경제적 이해관계에 있어서 두 개 이상의 집단으로 분열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계급론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어 왔으나, 과거에 계급분열의 근본원인은 정확히 명시되지 않았다. 다음 세 학자는 이 계급론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고, 이 견해나 저서들은 사회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가장 먼저 칼 마르크스의 계급론에 대해 알아보자. 마르크스는 생산관계에 의한 계급차이를 언급하였다. 마르크스는 유물론으로 전체를 상부구조(제도, 법, 예술문화 등)와 하부구조(생산관계)로 나누고 하부구조인 생산관계가 사회의 상부구조를 결정짓는다고 하였다. 따라서 생산관계가 그 사회의 계급을 결정하는 잣대인 것이다. 그가 말하는 계급은 생산수단을 누가 소유했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게 된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은 미소유한 사람과 불균등이 일어나게 되며 소유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지배하는 지배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생산관계가 된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계급론에서 계급은 공동체의 의미보다는 위치(position)의 의미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위치의 역할이 강한 마르크스의 계급은 집합(group)행동에서 큰 주체가 되지는 못한다.
생산관계를 강조한 마르크스의 이론에서 경제적 불평등은 단연 일어나며 그 원천은 생산수단이 될 것이다. 생산수단의 소유여부에 따라 그 계급이 결정되고 그로 인하여 경제적인 class 또한 결정지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단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의 경제적 지위는 물론 하부구조의 여파로 인해 상부구조, 즉 정치적인 위치도 함께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정당하지 못한 이유는 노동자들이 노동을 ‘착취’ 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산과정에 노동자의 직접적인 개입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자본가(생산수단을 소유한 자)에게 얼마나 노동을 착취당하는지 알지 못하고, 자본가에게 반격을 할 기회조차 생기지 않게 된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이상은 공산주의이다. 마르크스는 역사적인 큰 제도들의 변혁을 유물론으로 설명하는데 이를 역사유물론이라 한다. 마르크스는 역사유물론을 통해 원시시대 – 노예제 – 봉건제 – 자본주의 – 사회주의(미래) – 공산주의에 이르는 제도의 혁명들을 설명하고 있으며, 이는 다시 생산문제와 관련된다. 인간의 생산력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발전되는데 이에 비해 정적인 생산관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제도의 변혁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현재 자본주의에서 과잉생산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주의로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을 모두 국가소유로 하기 때문에 생산성이 저하되고 비용이 증가하는 등의 문제점이 다시 생기게 된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공산주의로 나아갈 것이라고 하였다. 물론 이 때의 공산주의는 과거의 반강제적 힘에 의한 공산주의가 아닌 자발적인 이상적 공산주의를 뜻한다. 이 공산주의에서는 사적 소유가 가능하며 높은 생산력을 유지하지만 아무런 제약이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자기 실현과 자가계발을 위한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이상적인 상태인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의 말대로 제도가 바뀌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의 이상세계로 가는 길에서의 장애물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동안의 변혁을 보면 단순한 시장과 생산관계의 변화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국가가 개입해왔다. 이는 생산관계에만 초점을 둔 마르크스의 제도변혁에도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지적해 줄 수 있는 과거의 예시들이 된다.
그렇다면 뒤르케임에 대해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뒤르케임은 베버에 비해 마르크스와 성향이 비슷하다. 그는 구조주의,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구조주의가 가지는 의미를 간단하게 설명해보면 사회현상을 만드는데 있어서 인간행동의 영향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인간행동이란 처해있는 사회구조의 산물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개개인의 행동이 사회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현상이 먼저 일어나고 그 여파로 개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이는 뒤르케임의 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회를 보는 것은 사회적 사실만 본다. 개인은 그 사회의 일부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구조주의적 관점은 ‘자살론’에서도 보여진다.
그는 도덕성이 사회를 묶는 고리라고 생각했다. 도덕성은 집합체적 속성을 띄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적이익의 한 형태인 집합이익을 추구하며 공동체적인 면을 더 중요시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사회를 보려면 그 당시의 유대, 연대를 관찰하면 된다. 전근대에서는 분업을 통한 기계적 연대(mechanical solidarity)가 이루어졌으며 이것이 근대로 넘어오면서 점차 유기적 연대(organic solidarity)로 바뀌었다. 기계적 연대는 ‘우리는 같다’ 라는 마인드를 기반으로 서로 유대감이 형성되어 사회를 구성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에 반해 유기적 연대는 ‘우리는 다르다’ 라는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상반되는 사상을 가지고 비슷한 유대효과를 이끌어낸다는 것이 모순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유기적 연대는 서로 다르지만, 차이에 기초한 기능적 유대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충분한 유대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생산수단의 소유를 통해 계급을 나누었기 때문에 불평등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뒤르케임은 달랐다. 그는 기능적 시각에서 보았을 때, 불평등은 분업의 수단으로서 정당하다고 보았다. 게다가 분업을 통한 생산을 위해서는 위계질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그가 무분별하게 불평등 자체를 지지한 것은 아니다. 그는 정상적 분업이나 도덕성과 공정성을 가지는 분업을 정당한 불평등이라고 보았다. 이와 반대로 강압적 분업, Anomie적 분업은 부당한 불평등으로 보고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당한 불평등은 공동체에 대한 서로의 기여와 노동을 인식하고 제도화하기 때문에 사회에 도움을 주지만 부당한 불평등은 기회박탈, 과다경쟁의 제어불가 등의 문제를 초래하기 때문에 배제한 것이다.
그렇다면 뒤르케임이 생각하는 이상사회와 고쳐야 할 문제점들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부당한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도덕적 규제의 재확립을 주장했다. 그 내용으로는 먼저 직업집단을 복원함으로서 개인이 이기적 욕심보다 집단의 가치를 중요시 여기게 하는 것이다. 그 다음 그 집단들을 아우를 수 있는 국가가 필요하다. 여기서 직업집단이 중요한 이유는 국가와 개인간의 직접적인 대면을 막기 위해서이며 이는 도덕적 규제의 재확립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또한 뒤르케임은 국가가 경제뿐만 아니라 도덕적 역할도 맡아 정치사회 전체인 정부가 아닌 정부권위가 집중되어있는 기구인 관리들의 조직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앞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며 뒤르케임이 말하는 이상사회를 이루기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에서 언급한 마르크스와 뒤르케임과 가장 비교되는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마르크스와 뒤르케임의 견해가 비슷하고 상호보완적인 것에 비해 베버는 합리성을 모토로 사회를 이해하려고 한 학자이다. 그는 합리성을 중요시하며 신 같은 것에 의존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사회를 판단하였다. 베버가 말하는 계급이란 시장에 제공가능한 자산과 노동의 차이를 뜻한다. 즉 market situation이 곧 class situation이라는 것이다. 베버는 다원론을 주장하며 계급의 다양성을 이론화하였다.
베버는 공동체로서의 계급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계급간의 연대성이 강함은 의심하지 않았으나 단지 한 계급에서 여러 지위집단(신분질서)간의 갈등으로 인해 계급이 와해될 수 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계급과 지위집단은 상호 배타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제상황이 불안정할수록 신분질서보다는 계급질서가 더 강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그렇다면 집단행동에서 베버의 계급론 얼마나 중요한가? 베버가 말하는 계급은 집단의 중요한 주체이다. 그러나 영향을 끼치는 것이 계급뿐인 것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베버는 같은 계급관계 내에서 다른 지위집단을 가짐으로써 집단행동이 방해받고, 심한 경우 집단이 와해될 수도 있다고 하였다.
이제 경제적 불평등에 관한 베버의 견해를 들어보자. 베버는 다원론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계급뿐만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의 원천도 한가지가 아니다. 즉, (total) class를 결정하는 원인은 economic class, social status, political party 등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원인들이 서로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즉 상호간에 환원되지 않는다. 위 내용을 반대로 말하면 economic class를 결정하는 원천은 social status, political party를 포함한 많은 이유라는 것이다.
베버가 말하는 다양한 원천을 통한 경제적 불평등이라면 이는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경제적 불평등을 이야기 하려면 베버가 가진 자본주의에 대한 관념이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 베버는 공산당 선언에서 알 수 있듯이 경제적 불평등을 창출하는 제도인 자본주의를 썩 좋게 보지 않았다. 자본주의가 봉건제도로부터 지위 및 신분에서의 해방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나, 그 빈 자리를 오로지 돈으로만 채웠다고 생각했다.
베버가 바라보는 미래상은 그다지 밝지 않다. 계급의 존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상적인 사회는 권력의 지배관계가 안정화 된 사회일 것이다. 이는 권력의 지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지배층이 이를 수용하는 상태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안정화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권력의 정당성은 단연 ‘합리적’ 이어야 할 것이다. 이는 베버가 보는 3가지 정당성 중 근대사회에서 사용되는 정당성이며 이치에 맞다. 베버는 권력의 ‘합리적’ 정당성으로 인하여 법적-합리적 권력이 증가하게 되고 이것이 다시 관료제 강화에 기여하여 최종적으로는 인류의 미래가 관료제의 쇠 철창에 갇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사용되었던 합리적 정당성이 다시 어두운 미래상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마르크스, 뒤르케임, 베버의 계급과 불평등,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각자만의 이상사회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들의 사상이 다른 사회학자들에 비해 더욱 중요한 이유는 논리적으로 크게 모순된 점이 없으면서도 3명의 방향이나 특성이 독특하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사상을 서로 비교해보며 상황에 맞는 포인트를 찾을 때 그 의미가 더욱 빛을 발할 것임에 틀림없다.
맑스, 베버, 뒤르켐의 계급론을 비교하되 다음과 같은 측면들을 두루 살피면서 논의하시오.
마르크스, 베버, 뒤르케임의 계급론 비교
20090666
물리학과
정장균
지난 2008년 전 세계적 경제위기 이후, 여러 국가들의 잘 못된 대처로 인해 계급간의 갈등이 더 심해지고 있다. 2011년에는 극기야 전 세계적인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 갈등을 고조 시켰다. 여러 국가들이 그 당시 직면한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무조건적으로 대기업들을 구제해주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때의 판단이 옳았다 할지라도 현재는 그에 따른 부작용 때문에 많은 서민들이, 많은 노동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현재 경제적 불평등이 극에 달한 상황에 현재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마르크스, 뒤르케임, 베버는 어떠한 생각을 가졌는지 알아보자.
위에 대한 현상에 마르크스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기업들이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에게 착취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생산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본 마르크스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기업을 지배층으로 보고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을 피지배층이라고 보고 있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계급을 상하구조 위치로 나누어 이분법적으로 구분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기업들은 노동자층을 착취했다. 첫 번째로 국가가 대다수의 노동자층으로부터 얻은 세금을 기업에게 무조건적으로 지원을 해주었고, 두 번째로 기업의 자체 구조조정으로 정규직은 정리해고 대고 비정규직이 대거 늘어났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러한 착취는 결과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낳는다고 하였고, 이는 부정당하다고 하였다. 앞선 예처럼, 2008년 이후 급격히 증가한 착취는 사회에 급격한 불평등을 조장했고, 자본주의를 위협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계급간의 갈등,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갈등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스스로 자체모순에 빠질 것을 예견하였고, 그러한 결과로 계급간의 갈등이 생기며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변모한다고 보았다. 더 나아가서는 사회주의에서 국가가 사라지고 공산주의라는 유토피아가 올 것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마르크스는 계급간의 갈등은 사회변화를 주도하는 힘으로 보았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고안한 공산주의, 유토피아는 구체적인 청사진이 제공되어 있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현재 공산주의를 선택했던 북한과 같은 여러 국가들은 공산주의가 아닌 공산주의를 모방하며 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뒤르케임은 위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먼저 뒤르케임은 불평등을 자연적불평등과 사회적불평등으로 보았다. 여기서 자연적 불평등은 개개인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서로 다른 능력으로 대변 될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 간의 능력 차이를 인정하고, 이에 따라 나타는 분업을 중요한 계급적 요소로 보았다. 또한 인간은 분업을 통한 유대감을 형성하게 되는데 뒤르케임은 이를 ‘유기적 연대’라고 말했다. 이러한 유기적 연대의 원척은 능력이 다른 사람들은 서로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이 다른 이에게 이익을 가져다 준다는데에 있다. 즉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하고 기능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뒤르케임은 자연적 불평등을 인정하고 정당하다고 하는 반면에 사회적 불평등은 부정당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은 비정상적 분업으로 나타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개개인의 이기적인 생각들이 정상적인 분업을 방해하고 비정상적인 분업을 가속화 시킨다. 앞서 언급했던, 사례에서도 기업의 구조조정을 통한 비정규직의 증가와 정규직의 축소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분업의 사례라 볼 수 있다. 뒤르케임은 이러한 사회를 바로 잡기위해서는 정상적 분업이 잘 이루어지도록 해야한다고 한다. 뒤르케임은 정상적인 분업은 도덕적인 행동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데,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므로, 이를 통제해줄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시스템은 규칙 또는 법과 같은 것들이 예가 될 수 있다. 또한 이를 유지시켜주는 기관은 국가이다. 이러한 점으로 뒤르케임은 이상적인 국가에서 국가의 역할을 중요시 보았다. 하지만 국가자체가 도덕적이지 않을 수 있고, 이를 견제할 역할을 할 무언가가 없기 때문에, 한계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베버는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하여 약간 다른 생각을 가졌다. 먼저 베버는 계급을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계급으로 구분하였다. 각각의 요소들은 서로 독립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평등은 단순한 경제적 불평등만이 아닌 사회적, 정치적 불평등도 있다고 보았으며, 사회에서 나타나는 여러 불평등은 이러한 불평등이 서로 혼합되어 일어난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는 특히 경제적 불평등은 단순히 시장경제체제를 통해 사회적 현상으로 보고자 했다. 또한 베버는 이상적인 사회는 자본주의 하에서는 보기 힘들다고 하였다. 인간은 역사적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경향을 보였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이런 합리적 선택의 의사 결정 사회 전반적으로 주를 이룬다고 보았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관료제가 주를 이을 것이며, 이러한 지나친 합리성으로 인하여 인간은 법 아래 소외된다고 다소 부정적인 미래를 예측했다.
자본주의의 3번째 위기를 맞고 있는 이 시점에서 과거 대가들의 생각을 살펴보았다. 마르크스, 뒤르케임, 베버 모두 저마다 독특한 관점으로 사회를 바라보았다. 셋 모두 뚜렷한 미래를 설정해주진 못하고 있지만,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제공해주었다는 점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 아직은 우리 사회의 현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러한 관점들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며, 실제로 많은 사회학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맑스, 베버, 뒤르켐의 계급론을 비교하되 다음과 같은 측면들을 두루 살피면서 논의하시오.
사회학 에세이
20100406
생명과학과
고범진
사회를 바라보는 하나의 비교적 정확한 방법은 그 사회의 계급체계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이는 계급체제를 어떻게 분류하는 가에 따라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큰 차이가 만들어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글에서는 대표적인 사회학자인 마르크스, 베버, 뒤르케임의 시각을 각각 비교분석하고 경제적 불평등과 그들이 지향하고자 했던 이상사회를 알아보고자 한다.
1. 계급, 위치 혹은 공동체, 집합행동의 주체
마르크스는 계급을 노동자와 산업자본가로 아주 단순화 했다. 여기서 산업자본가는 생산시설을 소유한 주체로 생산능력보다는 소유권을 가지고 노동자들이 자본가에게 종속될 수 밖에 없도록 만들면서 이를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서 계급은 명확히 위치의 개념이다. 그리고 위치의 역전은 거의 불가능하다. 마르크스는 계급을 사회적 활동의 기저로 보았으며, 현재의 계급체제를 사회적혁신의 준거로 보았다. 집합행동의 주체는 개인이 될 수가 없고, 억압과 착취의 굴레 속에서 집단에 의해 결정된다.
베버는 계급을 경제적 지위와 신분집단이 의해 지위의 두 가지로 나누었다. 신분집단이란 계급 내에서 여러 개로 나뉠 수도 있으며 경제적인 수치와는 전적으로 무관하다. 보통 계급의 위치는 경제적 지위에 의해 결정되지만 시장의 요구에 따라서 달라지며 상승과 하강은 신분집단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다. 하지만 경제적 지위가 높다고 해서 사회적인 명성과 지위를 동시에 얻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신분집단의 존재이다. 따라서 계급은 위치라기 보다는 공동체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또한 개인이 집단전체의 이득을 위해 일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이득과 직결되므로 집합행동은 집단이 결정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뒤르케임은 계급보다는 분업론을 통해 사회를 설명한다. 뒤르케임은 구조주의적 시각으로 개인의 행동들을 구조의 산물로 생각하였다. 사회는 자기생산적이며 개인과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운동양식을 갖는다고 주장한 뒤르케임은 이를 연대라고 하였다. 연대는 기계적 연대와 사회적 연대로 구분되는데, 기계적 연대는 씨족과 같은 원시적인 사회에서 억압적 규범을 통해 동질성으로 유지되는 전 근대적인 연대인 반면, 유기적 연대는 자유롭게 차이를 인정하면서 차이에 의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근대적인 연대라고 말했다. 즉, 계급을 위치가 아닌 공동체로 보았으며, 집합행동의 주체 또한 분업능력과 도덕성을 갖춘 개인으로 보았다.
2. 경제적 불평등과 정당성
마르크스는 경제적 불평등은 생산시설을 노동자가 소유하고 있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경제적 불평등은 절대로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유물론자인 마르크스는 다른 요소들을 배제하고 재화와 생산시설만을 가지고 이를 판단하고 정당성을 논했다.
하지만 베버는 좀 다르다. 베버는 사회 구성원들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가 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사회적, 정치적, 권위적의 세가지 분류의 불평등을 다루었다. 현 체제인 자본주의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발생하고 있고 상층부에는 프로테스탄트들이 많이 분포해있다는 사실을 베버는 그들의 교리와 연관시킨다. 프로테스탄트는 세속적 금욕주의의 부를 소유하되 소유자체를 위한 부의 축적을 금지하는 일반적이지 않은 생각으로 경제활동을 한다. 이 방법은 부를 축적하기에 최적화된 방법으로 이렇지 못한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경제적으로 불평등해 보이는 상황을 만든다. 결국 가치 합리적 행위를 추구했지만 의도치 않은 불평등이 야기된 것으로 본다.
뒤르케임은 경제적인 불평등보다는 사회적 연대 간와 분업을 주로 다루었다. 특히 분업에서의 개인의 도덕의 함양을 사회를 유지시키는 가장 핵심으로 주장하였다. 경제적 불평등보다도 개인들의 도덕적 선택을 우위에 두어 집합적 도덕의 형성을 전제하였다. 결국 경제적 불평등은 일시적이며 인류의 높은 도덕성에 의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3. 이상사회와 장애물
마르크스를 제외한 베버와 뒤르케임은 이상사회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지 않다. 마르크스의 경우 이상사회는 명확하고 간단하다. 노동자에게 계급의 압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회, 생산시설이 노동자에게 주어진 사회, 프롤레타리아트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 자본주의 단계에서 사회주의로 진보가 필요하며 궁극적으로는 공산주의로의 진보가 필요하다고 마르크스는 주장한다. 여기에 장애물이 되는 것은 현재 억압과 착취의 위치를 고수하는 자본가 계급들의 위계질서이며, 이는 철저히 파괴되어야 한다고 마르크스는 주장했다.
이렇게 세 사회학자들의 주장들을 살펴보면서 계급에 분류에 따른 시각 차를 알아보았다. 이들 사상과 이론도 중요하지만 현상 그 자체를 개인 스스로가 명확하게 해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시각을 스스로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20080443 물리학과 김다솔
마르크스의 계급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생산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이 신성한 것,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중요한 것이라 믿었고 마르크스의 계급은 생산수단의 소유에 따라 분류된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 계급은 지배자 계급이 되고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 계급은 피지배 계급이 된다. 생산수단의 보유 유무가 경제적인 차이를 가져다주고 불평등을 안겨주게 된다. 마르크스는 노동의 가치가 줄어들고 사람들이 소외되는 이러한 현상을 비관하며 노동자 계급의 단결을 통하여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지배-피지배 관계를 벗어나 보다 나은 사회를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베버의 계급론은 생산수단에만 의거해 계급을 설명한 마르크스의 것에 비해 훨씬 다원화돼있다. 베버는 경제력, 사회적 지위, 정치적 지위의 세 가지를 기준으로 계급을 분류했다. 따라서 베버가 보는 사회는 마르크스에 비해 다원적이고 복잡하다. 이런 다원적인 사회에서는 마르크스의 예견과 같은 대규모 계급투쟁이나 연대가 일어나기 힘들다. 각 계급은 마르크스의 계급제도나 신분제도처럼 상하가 반드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계급이 경제력이 강하다면 다른 계급은 강한 정치력을 가지고 있는 식으로 즉 위치보다는 공동체에 가까운 개념이다. 또한 베버는 앞으로의 세계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사회는 점점 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흘러가 종국에는 강력한 법으로 무장한 관료제가 사회를 지배할 것이다. 결국 모든 인간이 법이라는 테두리에 꽁꽁 묶여있는 암울한 미래가 베버의 미래상이다.
뒤르켐의 계급론은 사회 전체를 복잡한 유기체로 해석하고 있다. 뒤르켐은 공동체 대부분이 유사한 직종에 종사함으로써 생겨나는 일원화된 유대를 ‘기계적 연대’로 사회가 분업화, 다양화되면서 사람들이 서로에게 상호 의존하게 되는 현상을 ‘유기적 연대’로 불렀다. 이처럼 뒤르켐도 다원화 사회를 꿈꾸었으며 그의 관점에서 계급은 위치보다는 공동체이다. 그가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는 분업이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사회이다. 그는 많은 사회 문제는 분업이 올바르게 기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집단들 간의 유기적 연대가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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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뒤르켕, 베버의 계급론 비교
20090359 최준영
마르크스에 의하면 생산관계가 진전된 분업을 수반하고, 이 분업이 소수 집단에 의해 전유될 수 있는 잉여생산의 축적을 가능케 하고, 이 소수 집단이 생산자 대중에 대해 착취자로서 관계 맺게 될 때 계급이 출현한다. 생산 활동은 새로운 욕구와 능력을 창조하는 원천이라는 점에서 최초의 역사적 행위라고 할 수 있고, 오늘날에도 인간의 삶을 유지시키기 위해 수행되고 있다. 또한 인간은 단순한 개인들로서가 아니라 일정한 형태의 사회의 구성원들로서 생산하므로, 일정한 형태의 생산 관계들에 기반을 두지 않는 사회란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계급의 불가피함을 설명한다. 마르크스는 계급이란 생산관계의 한 측면으로, 인간집단들이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권에 대해 어떤 식으로 관계 맺는가에 따라서 정해진다. 이는 경제적 재화의 배분은 생산과 분리된 독립적인 분야가 아니라 생산양식에 의해 규정되는 분야라고 하는 전제의 한 특정 측면으로서, 따라서 계급이란 단지 소득분배의 불평등에 지나지 않으며, 계급갈등은 소득격차를 극소화하는 수단을 도입함으로써 완화되거나 심지어 제거될 수 있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기본적으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뉘는 양분법적인 계급 관계를 상정한다. 마르크스가 예를 든 19세기 프랑스 농민을 보면, 이들은 거대한 대중을 이루며 구성원들은 같은 조건 아래서 생활하지만 서로 간에 다면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다. 이들은 지역적인 상호관계만 존재하고 그들 사이의 이해관계의 동일성이 그들 사이에 어떤 민족적 유대도, 정치적 조직도 낳지 못하는 한 이들은 계급을 형성하지 못한다고 평한다. 즉 계급은 공동체가 아니고, 단지 공동체적 행동의 토대가 될 수 있을 뿐이라고 역설한다. 즉 다수의 사람들이 그들의 생활기회들 속에서 특수한 인과요소를 공통으로 지닐 때, 그리고 이 요소가 재화의 소유와 소득을 얻을 기회에 대한 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서만 표현되고 있을 때, 마지막으로 이가 상품시장이나 노동시장의 조건들 아래에서 표현되고 있을 때만 계급에 관해 얘기할 수 있고, 이가 곧 ‘계급상황’이라고 말한다. 즉 시장에서의 기회의 종류가 개인의 운명에 대한 공통의 조건을 나타낸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계급상황은 궁극적으로 시장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봤을 때는 경제적 불평등의 원천은 자본의 소유관계로 계급을 나누고 이를 착취관계로 고착시켜 다른 사회적 불평등으로 확산시키는 자본주의 자체라고 보았다. 따라서 이러한 체제 내에서의 경제적 불평등에서 시작되는 계급 관계, 더 나아가 계급 갈등과 투쟁으로 이어지는 관계가 정당하다고 보지 않았고, 자본주의 체제가 아닌 사회주의 체제가 이상적인 사회라고 보았다. 인간 생활 전반에 대한 물질적 재화의 지배 및 그에 따른 소외의 극복은 자본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분업을 폐지함으로써만 성취될 수 있다고 보고, 누구도 한 가지 전업 활동분야를 갖지 않고,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모든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사회가 생산 일반을 규제하고, 그럼으로써 한 사람이 오늘은 이 일을 하고 내일은 저 일을 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즉 인간 노동이 더 이상 생산과정에 의해서 제약당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
이에 이어 마르크스보단 후대의 사상가, 또한 마르크스 비판가이자 수정을 하려 노력했던 뒤르켕의 관점에서 문제들을 보자. 먼저 뒤르켕이 보기에 근대 사회는 개인들 사이의 신념과 행위의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를 전제하는 유기적 연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전제한다. 즉 어느 정도 개개인의 서로 다른 자아 실현에 의거한 계급을 상정한다고 볼 수 있고, 공동체보다는 개개인의 능력에 따른 위치에 의해 계급이 분화된다. 마르크스는 분업은 인간 활동의 소외된 형태 바로 그것이고, 이가 계급갈등으로 고착되어 필연적인 혁명을 이끌게 된다고 주장한다. 뒤르켕의 분업이론은 이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데, 그는 분업의 성장을 계급체계 형성이라는 관점보다는 전문화가 갖는 통합 효과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따라서 뒤르켕은 계급갈등이 사회의 혁명적 재구성을 위한 토대가 된다고 보지 않고, 분업체계 속의 서로 다른 직업집단들을 도덕적으로 조정하는 데 결함들이 있음을 알리는 징후로 파악한다. 그가 보기에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는 전적으로 뒤르켕이 정의하기에 필수적인 도덕적 규제 대신 강제 권력에 의하여 계약관계가 체결되는 강제적 분업의 철폐에만 관심을 두며, 이가 시장의 규제, 즉 생산의 사회화에 의해 성취될 것으로 파악한다. 하지만 뒤르켕은 이전 사회형태들의 도덕적 근간이던 전통적 제도들의 파괴의 결과로서 생겨나는 경제적 관계의 영향력 증대가 바로 근대적 위기의 주요인이라고 보고 있다. 다시 말하면 계급 간 명백하게 드러나는 갈등들은 분업이 재능과 능력에 따라 이루어져야만, 그리고 좋은 직업들을 한 특권계급이 독점하지 않아야만 방지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뒤르켕은 경제적 불평등은 이러한 아노미적 상태가 아닐 경우 정당화된다고 볼 수 있다.
베버의 정의에 따르면, 경제적 행위는 평화적 수단을 통해 원하는 효용에 대한 통제력을 얻고자 하는 행위다. 또한 시장은 경쟁적인 상거래를 통해 이윤을 확보하려는 투기적인 경제적 행위를 수반하는 한에서 직접적인 상호 교환과 구분된다. 계급은 구체적인 형태는 다양할 수 있지만 이러한 시장이 존재할 때만 존재할 수 있으며, 이는 다시 화폐경제의 형성을 그 전제조건으로 한다. 화폐는 가치들을 주관적인 방식이 아니라 양적이고 정해져 있는 방식으로 측정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각 개인들이 특수한 유대관계 및 의무로부터 해방되며, 각 개인들이 교환을 위해 재화와 용역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들에 의해 유동적으로 구성되고, 여기서 계급갈등이 시작된다고 베버는 말한다. 즉 계급상황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유사한 경제적 사정 아래 있으며, 이것이 그들의 생활 수준에 대한 인과적 영향을 미친다. 즉 계급이란 이와 같이 동일한 계급 상황을 공유하는 개인들의 집합체를 가리킨다. 이러한 계급 개념에서 베버가 경제적 불평등을 정의 단계에서 상정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베버가 상정하는 지위집단이라는 용어는 같은 지위상황을 공유하는 다수의 개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경제현상이 이념의 성격을 직접 결정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 계급과는 그 의미가 다르게 된다. 즉 베버에게 있어서 계급은 집합행동의 가장 중요한 주체가 아닌데, 이는 지위집단이 보통 특정한 생활양식과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 방식에 대한 제한을 둠으로써 강제성 높은 집합행동을 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베버는 사회주의가 그것이 수반할 관료제의 결과들 때문에 미래를 암울하게 보았다. 누군가 자아실현이 이루어질 수 있는 질서를 성취하겠다는 전망을 가지고 행동할 경우, 이는 거대한 국가의 통제를 위해 필연적으로 관료제의 발달로 이어지고, 이는 사실상 대중의 정치적 자율성을 더욱 위축시킬 것이라 보았다.
맑스, 베버, 뒤르켐의 계급론을 비교하되 다음과 같은 측면들을 두루 살피면서 논의하시오.
맑스, 베버, 뒤르켐의 계급론을 비교하되 다음과 같은 측면들을 두루 살피면서 논의하시오.
20110038 이창수
계급이란 무엇인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계급의 존재는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경제적 불평등, 문화적 불평등,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보이지 않는 계급의 구분이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우리들은 계급의 존재를 머리로만 알고 있는 것이지 몸소 느끼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과거 사람들은 계급에 대해 생각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에게 계급이란 실질적인 문제였기 때문이다. 계급에 대해 과거의 철학자들이 생각했던 것을 돌아보는 것은 우리들이 실질적으로 느낄 수 없는 계급에 존재를 깨닫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는 계급에 대한 이해를 통해 지금 이 사회에 내재되어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마르크스의 계급론을 들여다보면, 그는 단순히 생산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생산물의 불평등에 따라서 계급이 구분된다고 보았다. 계급은 단순히 누군가는 생산물을 얻고, 누군가는 바치는, 즉 지배-피지배 관계로 구분된다고 보았다. 또한 이 지배-피지배 관계는 생산물을 어떻게 분배하느냐의 문제였다. 잉여 생산물의 등장으로 인해 잉여 생산물의 분배 문제는 인류가 농경시대를 시작할 때부터 이미 시작된 필연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는 한 집단은 지배 집단으로 잉여 생산물을 더 많이 가져간다고 보았다. 지배 집단은 자신들이 더 많은 생산물을 가져가는 것을 주인 - 노예, 영주 - 농노 의 관계 등을 통해 정당화 시켰다. 이러한 지배-피지배 관계는 사회가 변할지라도 항상 생길 수밖에 없다. 사회가 변함에 따라 생산물의 분배는 더욱 복잡해지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서로의 이익에 따른 적대관계에 있는 집단들의 관계를 계급이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지배-피지배 관계를 이해하고, 즉 계급의 존재와 의미를 이해하고 다른 계급과의 계급투쟁을 통해 사회가 발전한다고 보았다.
그는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이 계급을 깨닫고 계급투쟁을 하여 사회가 완전히 발전한, 즉 이상적인 사회에 도달하면 그 사회는 공산주의적 사회에 가까워진다고 설명한다. 계급의 불평등성을 타파하기 위한 가장 좋은 해결책이 공산주의라는 것이다. 생산물의 분배가 완전히 평등해지고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가 가장 완벽한 사회라는 것이다.
뒤르켕은 자신이 살던 사회의 특징은 분업이 잘되어 있는 사회라고 규정하면서 계급이란 분업에 따른 2차 결과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도덕적인 불평등과 부도덕적인 불평등을 구분하며 계급을 설명하려 하였다. 도덕적인 불평등이란, 사회가 도덕적이고 공정할 때 분업에 의해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불평등이다. 부도덕적인 불평등은 당연히 사회가 도덕적이지 않은 문제가 생긴 사회에서 분업에 의해 발생하는 불평등이다. 이런 문제가 있는 사회에서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뒤르켕은 보았다. 완전한 도덕적 규제가 존재하는 사회, 그가 처음에 제시했던 조건 ( 도덕적이고 공정한 사회 )이 만족되는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베버가 생각한 계급에 대해 알아보자. 베버도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아 기본적으로 계급이란 불평등에서 기인하는 문제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마르크스와는 다르게 계급의 발생은 단순히 경제적 불평등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적 불평등에서도 기인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그에게 있어 마르크스의 주장은 자신의 주장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그는 여러 방면에 대한 계급을 생각하였으므로,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계급에 가장 가까운 답을 제시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완벽하게 합리적인 사회이다. 불평등이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임을 모두가 이해하는 사회이다.
지금까지 마르크스, 뒤르켕, 베버의 계급에 대해 알아보았다. 여러 철학자들의 생각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계급에 대한 생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 철학자의 공통적인 생각은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개개인이 계급에 대해 이해하고 깨달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실재하는 계급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는지 개선방안을 생각해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맑스, 뒤르켐과 베버의 계급론 비교
20051232
화학공학과 박상준
맑스는 계급을 사회의 하부구조, 즉 생산 관계에 속한 집단들로 보았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계급에 대해서는 자본가 계급을 생산 관계의 지배 계급, 노동 계급을 피지배 계급으로 보았다. 계급을 직접적으로 정의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논의들은 생산관계를 척추로 삼아 진행이 되므로, 맑스는 자본주의에서의 계급을 생산수단의 소유 유무에 따른 지배 관계로부터 만들어진 경제적으로 다른 위치에 있는 집단으로 여기고 있음을 추측 가능하다. 그리고 이 계급들은 각자 자본을 더 차지하기 위해 서로 투쟁하며 대립하는 집단들로 보았다. 그리고 사회의 변화에 있어서 이런 경제적 차이에 의해 나뉜 계급들이 집합행동의 가장 중요한 주체라고 보았다.
뒤르켐은 계급을 사회의 발전과정에서 파생된 결과물로 보았다.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유기체의 진화와 유사하게 봄으로써, 과거의 단세포생물과 같은 기계적 연대에서 복잡하고 분화된 여러 기능 집단을 한데 묶고 있는 유기적 연대를 이루는 사회에 이르렀다고 본다. 사회를 진화된 복잡한 유기체로 보는 뒤르켐의 사상은 분업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즉 복잡한 유기체 속에서 서로 다른 고유한 역할을 하는 다양한 기관들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함으로써 전체 유기체를 살아있게 만드는 것처럼, 사회는 분업화되어 각자의 기능에 충실한 인간 집단들이 각자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지만 분업화된 집단들을 묶으면 하나의 거대한 유기적인 연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에 존재하는 어떤 종류의 집단이든 사회에서의 일정한 기능을 하기 위해 그렇게 만들어져 왔다는 해석을 낳는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의 변화가 개인의 변화에 선행한다고 보았으며 개인의 개별 행동은 사회적 현상에 대해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고 보았다. 오히려 개인의 선택과 행위는 그가 처한 사회구조적인 위치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계급은 이런 뒤르켐의 견해에 의하면 개인이 처한 사회구조적인 위치에 불과하다. 집단행동에 대해서도 계급이 아니라 분업화된 사회 속에서 같은 직업군의 사람들이 모인 직업집단이 직업집단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베버의 경우 뒤르켐에 비해 계급에 대한 직접적인 탐구를 수행한다. 그리고 경제적 차이라는 일원적인 기준으로 계급을 설정한 마르크스와 달리 베버는 각 개인이 경제적 계급, 사회적 지위, 정치 정당이라는 세 가지 기준에 각각 독립적으로 위치한다고 보았다. 즉 한 개인의 사회에서의 위치를 다원적이고 다층적으로 보아야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기준인 경제적 계급과 사회적 지위, 정치 정당이 반드시 상호 환원되는 것은 아니며 이것은 경제 계급의 차이가 다른 모든 권력관계의 차이를 낳는다고 본 마르크스와의 큰 차이점 중 하나이다. 나아가 개인마다 가지는 사회에서의 위치가 복잡하고 다양함에 따라 마르크스가 예견한 것과 같은 종류의 대규모 계급투쟁과 그로 인한 사회주의 혁명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를 보인다. 가령 같은 계급상황에 있는 사람들끼리 연대를 하더라도 그 내부에서 보이는 사회적, 정치적 차이에 따라 연대가 쉽게 깨어질 것이라고 본 것이다. 경제 계급에 국한하여 설명하자면, 각 개인이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재화와 용역의 종류와 성격에 따라 계급이 다양하게 나뉜다고 보았다. 가령 같은 노동자라고 할지라도 육체노동자와 지식노동자, 즉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는 다른 계급으로 보았으며 또한 소상공인인 프티 부르주아지, 또 주요 자본가 계급 등 크게 네 가지 계급으로 자본주의의 사회적 계급을 분류하였다.
경제적 불평등의 기원에 대한 세 학자의 견해들 또한 서로 조금씩의 차이를 보인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경제적 불평등은 생산 수단을 둘러싼 소유관계에서 발생한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경제적 불평등은 생산수단(토지, 공장 등)을 소유하는 자본가 계급과 생산수단이 없고 노동력만을 제공할 수 있는 노동자 계급 사이에서 생산 수단을 가진 자가 권력관계에서 우위에 서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자본가 계급은 노동자 계급에 대한 권력을 가지며 즉 그것은 지배-피지배 관계를 낳고 이러한 생산 관계 즉 사회의 하부구조가 사회의 상부구조(제도 등)으로 발전하여 이러한 불평등을 더욱 공고히 하고 확대 재생산한다. 결국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이 된다.
생산활동, 원료에 노동을 투여하여 새로운 물건을 생산해내는 행위를 인간의 유적행위로 본 마르크스는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경제적 불평등이 부당하다고 본다. 그 이유는 노동자들이 과거와는 달리 자신의 노동에 대해 시작부터 끝까지 단순히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 이외에 어떠한 선택도 자발적 행위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필요에 의한 스스로의 고안에 의한 생산이 아닌 주어진 매뉴얼에 대한 주어진 할당량에 대한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음으로써 노동자는 생산활동에서 부품으로 전락하고 유적존재의 고유활동인 생산활동으로부터 소외당한다. 이는 곧 인간성의 소외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경제적 불평등은 정당하지 못한 것이며 권력에 의한 피지배자에 대한 지배자의 착위가 일어나므로 또한 정당하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뒤르켐이 보기에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의 유기적인 발달, 특히 개인주의의 발달과 그에 조응한 분업화에 의해 발전된 자본주의 발흥에 의해 파생적으로 발생한 것이며 분업이 정상적으로 일어나는 한, 즉 그 불평등의 크기가 자생적으로 합의된 분업화 과정에서 합의된 정도이며 자연적인 불평등에 부합하는 한 정당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본주의의 급속한 발전을 개인주의의 발전이 따라가지 못했고 유기적 연대가 이루어지기 위한 도덕의 공백이 발생하여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아노미적 분업, 강압적 분업이 발생하였다. 즉 뒤르켐이 보기에 비정상적인 분업이 이루어 진 것이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분업은 자연적인 불평등에 부합하지 않음으로 부당하며 극복되어야 할 것으로 보았다.
베버의 입장에서 불평등의 원천은 경제적 원인 하나로만 볼 수 없다. 경제적 계급, 사회적 지위집단, 정치 정당 등 불평등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는 것이 그의 불평등론의 핵심이다. 경제적 불평등만 놓고 보자면 경제 계급은 시장에 제공 가능한 용역과 재화에 따라 나뉘며 시장상황(earning situation)에 따라 삶의 기회가 달라지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계급은 삶의 기회의 차이에서 파생되며 삶의 기회의 차이는 시장에서의 potential과 시장상황에 따른 소득의 기회의 차이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불평등의 정당성에 대해서 베버는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경제적 불평등은 탐구하고 이해해야할 사회적 현상이다. 정당성은 지배-피지배관계를 다룰 때 의미 있는 개념이며 경제적 불평등은 지배-피지배가 아닌 시장상황에 따라 발생되는 것이므로 정당성과는 무관하게 본다.
학자마다 각자의 사회에 대한 관점에 따라 이상적인 사회상을 다르게 그리거나, 암울한 미래를 암시하기도 하는 등 차이가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언젠가는 붕괴할 체제로 보았다. 과잉생산과 과소비라는 집단적 불합리성으로 인해 자본주의가 자기 모순에 빠지고 그것이 자본가들이 서로 격리되어 정보가 교환되지 않는 상태에서 무한경쟁을 함으로써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시점에 노동자 계급이 집단 투쟁을 통해 생산수단의 공공화를 이뤄내는 사회주의 혁명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것이 마르크스의 이상 사회는 아니다. 그는 집단 생산을 하고 국가가 생산수단을 소유하여 통제하며 사적소유가 철폐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와는 다른 문제, 관료주의의 고비용 저효율성으로 생산성이 저하되어 다음 단계인 공산주의로 발전이 진행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공산주의 사회가 마르크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이다.
마르크스는 유물론적인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어떤 생산방식의 발달로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이행이 이루어질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만들어질 공산주의 사회는 사회주의에서의 정부가 없고, 모든 생산행위에 대한 제약이 사라진 상태라고 한다. 그 사회는 최상의 생산력을 갖고 있으며 인간이 자기 본성으로써의 생산을, 즉 유적존재로써의 고유활동에 충실한 생산을 하는 사회로 설명한다. 그러나 정확하게 어떻게 모두가 자기 본성으로써의 생산을 하게 되는지, 그가 말하는 최상의 생산력이 사회주의 사회에서 정부만 사라진다고 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이 제시되지 않아 그의 역사유물론의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그것을 어렴풋이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반면 뒤르켐은 분업론의 연장선에서 이상적인 국가를 말한다. 도덕적이고 공정한 분업, 즉 정상적 분업이 이루어진 국가가 그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너무나 빠르고 거대한 발전으로 이미 많은 영역에서 비정상적 분업에 의한, 부당한 불평등이 산재하고 그러한 불평등이 사회의 유기적 연대를 저해한다고 본다. 그것의 극복, 즉 정상적 분업으로의 복원을 위해 직업집단, 단순한 집단이 아니라 타 직업집단과의 대외적 갈등을 해결할 대표성을 띄고, 또한 직업집단 내부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할 권한을 가진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그러한 집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것이 개인의 이익을 넘어선 자기 직업의 가치에 대해 눈뜨도록 하고 전문가 윤리가 만들어져 이것이 시민 도덕의 기초가 될 것으로 본 것이다. 그것이 각 집단 내부의 유대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직업집단들로 이루어진 전체 사회에는 국가라는, 이익집단들의 상위 심급의 표상으로써 이익집단들 간의 갈등을 중재하고 유기적인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존재의 필요성을 말한다. 이 국가는 역할과 능력을 떠나 그 자체의 표상(사회적 자아, 의식)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런 국가와 개인 사이에 충분히 존재하는 이차적 집단, 예컨대 직업집단과 같은 것들이 강력한 국가의 경우 그 폭압적 전제를 견제하고 또 허약한 국가의 변덕스런 불안정을 가라앉힐 것이라고 본다.
나름대로 각자가 그리는 이상향이 있었던 맑스나 뒤르켐과는 달리, 베버는 미래에 대한 전망만을, 다소 암울한 전망만을 예견한다. 이 전망은 맑스의 사회주의 사회의 쇠퇴기의 형태와도 닮은 바가 있다. 베버에 의하면 사회의 변화는 의도하지 않은 인간의 개별행위들이 모여 만들어진 현상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핵심 중 하나는 합리성이다. 합리적인 이성에 의해 법과 국가 조직, 음악, 종교 등 모든 분야가 이성적이고 자율적이고 탈주술적 단계로 나아갔다. 근대의 국가는 그래서 합법적 지배를 통해 사회를 지배한다. 그것은 특별한 누군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직간접적으로 합의한 법에 의한 지배이며, 또한 그 수단과 방식은 관료들, 공무원들에 의한 관료제를 통해 현실에서 실행된다. 베버는 여기서 관료제가 발달해가고 갈수록 합리성이 발달하는 미래에 대해 법과 문서라는 우리에 갖힌 인간의 모습을 보고 그 미래의 암울함을 상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