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대여점이란 게 요즘에도 있던가. 시내에 있는 극장에 가지 않고도 거실 TV에서 영화를 보도록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주던 곳이다. 요즘 ‘광해, 왕의 남자’가 인기라길래 갔는데 찾던 테이프가 없으면 최신작이 있는 진열대부터 찬찬히 볼만한 영화를 고르는 재미도 있던 곳이다.
이때, 테이프 상자에 ‘명보극장 상영 영화’와 같은 문구가 있으면 조금 더 눈길이 끌렸다. 제목도, 배우도 낯선 영화는 돈 1~2천원 내기 꺼리는데 아무래도 시내 유명 극장에 걸렸던 영화라니 조금 달라 보이기 마련이었다. 비디오 대여점은 그렇게 가정집도 극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내 방을 극장으로 만드는 시대가 왔다. 방법은 다양한데, 일단 컴퓨터가 필요하다. 각종 포털사이트와 영화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스트리밍과 영화 파일 내려받기가 먼저 떠오른다. 물론, 유료 서비스다. 요즘은 웹하드에서 내려받을 때도 저작권자와 수익을 나누는 추세다. 종종 어떻게 구했는지 모르지만, 질 좋은 영화 파일을 ‘버스’란 이름으로 대용량 메일로 받는 방법도 있다. 최근엔 토렌트라는 P2P 파일 공유 방식도 인기다.
이렇게 디지털로 영화를 즐길 방법이 생겼지만, 영화는 여전히 오프라인에서 평판과 성적으로 평가받는다. ’1천만 관객 돌파’, ’1천만 관객 눈앞’과 같은 수식어가 그 영화의 위상을 말해주는 세상이다. IPTV뿐 아니라 극장을 벗어나 부가적으로 영화로 판매할 때도 바로 극장 성적이 다운로드나 스트리밍 가격과 인기를 좌우한다.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게 많다고 하지 않던가.
그럼, 상영관 확보하는 데 실패한 영화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만든 영화를 눈 꼭 감고 그냥 뿌릴 수도 없고, 제작비 회수도 문제다. 이 고민을 거듭한 영화 ‘MB의 추억’을 배급하는 스튜디오 느림보가 재미난 시도를 한다. 상영을 신청하는 사람에 한해 영화 파일을 e메일로 대여하기로 한 것이다.
#2. 보고 싶다는 관객은 있는데, 상영하는 극장은 전국 16곳…그래서 시작한 e메일 버스
일단, 얘기는 이렇다. ‘MB의 추억’은 상영관을 많이 확보하지 못했다. 10월29일 기준으로 이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은 경남 진주시민미디어센터, 강릉 독립예술극장 신영, 롯데시네마 청주, 광주 메가박스 전대, 전주 디지털 독립영화관, 대구 동성아트홀, 대전 아트 시네마 전국 16곳이다. 게다가 주말 시간표는 형편없다. 하루 3~4번 상영하는 곳도 있지만, 하루 한 번만 트는 곳도 있다.
사실 블록버스터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 일은 비일비재다. 멀티플렉스에서 밀지 않는 영화는 보고 싶어도 상영하는 극장은 물론 상영횟수도 적고, 빨리 막을 내리기 일쑤다. 그래서 ‘MB의 추억’을 배급하는 스튜디오 느림보는 이 영화를 만든 김재환 감독에게 “극장만 스크린인가, 가정집도 스크린이다”라며 e메일로 영화를 배급하자고 제안했다.
영화 ‘MB의 추억’을 파일로 내려받으려면, 먼저 같이 볼 사람 4명을 더 구해야 한다. 그리고 상영금액은 한 사람당 4천원이다. 영화 다운로드 서비스보다, 상영 라이선스를 판매하는 것에 가깝다고 보면 되겠다. 그 대신, 상영 공간이 극장이나 강당이 아니라, 집, 동아리방도 될 수 있다는 게 다르다.
그동안 이 영화는 ‘공동체상영’이라고 하여, 극장이 아닌 곳에도 상영을 원하면 영화 테이프나 DVD를 보내줬다. 크고 작은 단체 위주였고, 20~30명 정도를 기준으로 상영을 허락하고 대금을 치렀다. 지금 극장에 걸린 영화를 이렇게 배급하는 것도 모험이리라.
영화 배급사는 이것도 더 많은 사람이 보기엔 불편하다고 고민해, 조금 더 쉽게 ‘MB의 추억’을 보게 할 방법을 고민했다. 해외에 있는 관객도 공략하고, 상영관이 없는 지역 관객도 쉽게 영화를 볼 방법 말이다. 그래서 시작한 게 ‘도전 1천개 스크린’ 프로젝트다.
#3. VOD 판매나 무료 배급은 선택하지 않은 까닭은
고영재 스튜디오 느림보 대표는 “배급사로서 월권이었다”라며 “관객이 관심을 보이고 좋은 영화라고 판단하고 유료로 봐준다면, 그게 김재환 감독과 제작사에 힘을 주고 또 다른 영화를 낳게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김재환 감독은 ‘트루맛쇼’를 제작했고, 영화 제작사도 그동안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온 곳이에요. 이분들에게도 더 좋은 영화를 한 번 더 제작할 기회를 관객이 주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고 대표가 관객이 김 감독과 제작사에 기회를 주면 좋겠다고 말한 건, 차기 영화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자금과 이번 영화를 만드는 데 든 제작비용 충당을 뜻한 것이리라.
물론, 영화 ‘MB의 추억’은 여느 영화가 선택하는 부가판권도 판매할 계획이다. 각종 영화 사이트와 VOD 서비스, IPTV 등도 고려 대상이다. 그런데도 e메일 다운로드 판매를 선택한 건 무슨 이유일까.
“수익 극대화도 있지만,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관객뿐 아니라 기존 극장에도요. 사실 웹하드나 VOD 사이트에서 영화 파일을 내려받게 하면 누가, 어디에서, 왜, 누구와 보는지와 같은 관객 정보를 저흰 모릅니다. 관객과 소통하지 못하는 거지요. 우리 영화는 함께 볼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MB의 추억’으로 지금 극장 환경을 되돌아보고 싶었어요. 저희가 극장을 넓히지 않으려고 해서 지금처럼 상영관이 적은 건 아니거든요.”
‘관객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그곳이 바로 극장’이란, 생각도 있었을 터다. 고 대표도 “이건 지금의 현실에 대해 같이 고민하자는 운동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영화 파일을 불법으로 공유할 때 자주 쓰던 e메일로 영화를 판매하는 것도 혹시 그 운동의 일환일까. 이 부분만은 우리의 짐작으로 남겨두자.
#4. PC와 연결된 모든 화면이 곧 극장
‘도전 1천개 스크린’으로 ‘MB의 추억’을 보려면 절차가 조금 복잡하다. 신청 페이지에서 상영 희망 일시를 적고, 장소와 희망 인원을 밝힌 뒤, 상영인원에 따른 금액을 계좌이체하고 나서야 파일을 내려받을 수 있다. 상영 날짜를 적는 건, 그 시기부터 3일 정도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틀 땐 윈도우PC만 가능하고 운영체제는 윈도우7 이하여야 한다. 또, 인터넷에 접속한 상태에서 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로만 재생 가능하다.
e메일로 발송되는 영화파일은 디지털저작권관리(DRM)가 설정돼 있다. 복제를 막고, 상영기간을 관리하기 위해서다. DRM을 씌워도 파일로 배포하는 이상, 배급사와 제작사는 불법 공유를 막긴 어려울 것이다. 관람 인원으로 최소 인원 5명만 적고, 실제로는 수십, 수백명이 모여 보는 걸 제지하기도 사실상 무리다. e메일로 파일을 받은 신청자가 이 영화를 TV에 연결해 틀지, 빔프로젝터로 틀지, 관람인원 5명으로 적고선 혼자 PC로만 볼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방법이 무엇이고, 관람객을 얼마나 확보했는지 몰라도 PC로 연결된 모든 게 스크린이 된다.
고 대표는 “우리는 영화 상영을 위한 라이선스를 드리는 것으로, 5명이 볼지, 10명이 볼지 모르지만, 더 많이 보면 양심껏 입금해달라고 하는 것이다”라며 “관객을 믿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MB의 추억’ 상영 신청은 11월11일(일)까지 받고, 상영은 11월1일(목)부터 14일(수)에 진행된다. 상영 첫날인 11월1일 오전, 벌써 96개 스크린을 모았다. 앞으로 10여일 동안 1천개 스크린을 확보하고, 2차 프로젝트를 진행하길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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