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에 만연한 "명품" 소비 현상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 보는가 아니면 한국의 소비문화에 변화가 있으리라 보는가? 그렇
게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2) 사회불평등(경제적 불평등, 교육불평등, 젠더불평등, 지역불평등 등등)은 어떻게 개인들의 문화적 실천을 통해 재생산되는가.
사례를 들어 행위가 구조를 재생산하는 과정을 논의하되 개인들의 의도(motivation), 이해(interest), 감정
(emotion) 그리고 개인들 간의 상징적 상호작용(symbolic interaction)에 초점을 두어 분석하시오.
3) 왜 피지배자들이 지배문화를 적극적으로 따르는가. 반노조적인 노동자들, 남성우월주의를 수용하는 여성들, 교육적 위계를 옹호하
는 저학력자들을 어떻게 이해(verstehen)할 수 있을까?
2) 사회불평등(경제적 불평등, 교육불평등, 젠더불평등, 지역불평등 등등)은 어떻게 개인들의 문화적 실천을 통해 재생산되는가. 사례를 들어 행위가 구조를 재생산하는 과정을 논의하되 개인들의 의도(motivation), 이해(interest), 감정(emotion) 그리고 개인들 간의 상징적 상호작용(symbolic interaction)에 초점을 두어 분석하시오.
우리나라에 특징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악 중 하나로 지역감정이 있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대립시키는 우리나라의 지역감정은 군사독재정권 시기, 경상도를 중심으로 한 급속한 산업화와 전라도에 대한 민중 탄압 등이 이어지며 대중들에게 각인되어 지금까지 재생산되어 오고 있다. 이런 지역감정은 우리사회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인 지역불평등을 지속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인들의 지역감정이 구조적으로 한데 모였을 때 이것이 지역패권주의로 발현되어 이미 구축되어 있는 지역불평등 체제를 풀어놓을 방법을 요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선거 때 마다 나타나는 동서 지역 양분 현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역감정은 사실 경상도와 전라도의 대립이라기 보다는 ‘경상도민들의 전라도 혐오증’으로 보는 시선이 더욱 적절하다. 전라도민들이 경상도에 갖는 지역감정은 자발적이라기 보다는 경상도민의 부적절한 언행에 대한 반동으로써의 단결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경상도민들이 전라도민에 대해 갖는 지역감정은 군사독재정권이 만든 상부구조로 인한 것이라 해도 현 시대에선 분명히 자발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따라서 지역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지역패권주의, 그리고 그 기반을 들여다보기 위해선 경상도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전라도민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시대가 바뀌면서 경상도민들의 전라도민 혐오증이 많이 옅어졌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이는 개인들의 내면 속 색채가 옅어졌다기 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실천적 행위가 감소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지금도 전라도권 스포츠팀과 경상도권 스포츠팀이 맞붙는 날, 중년층들이 모여 술을 마시는 장소에 가보면 많은 중년층들이 전라도에 위치한 팀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각지에서 모여 해당 팀에 소속된 전라도권 스포츠팀 선수들에게 가능한 모든 비속어를 동원하여 거친 말들을 내뱉는 것을 볼 수 있다. 많은 경상도민들이 어딘지 모르게 전라도민은 비겁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또한, 아직도 많은 경상도 부모들은 전라도 출신을 사위 혹은 며느리로 받아들이는 것을 매우 꺼려한다.
그 어떤 경상도민도 전라도민이 어떤 실재적 문제가 있는지 명쾌하게 말하진 못하지만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문제점을 꺼내 들며 전라도민은 상종할 수 없는 대상이라 규정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심심찮게 그런 부모를 둔 자신들이 그런 프레임에 갇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정 지역민의 성격을 규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한 실증적 연구도 진행된 바가 없다. 하지만 이미 선행된 지역감정으로 인해 경상도와 전라도 간의 소통이 차단되고, 전라도민에 대한 가설이 지속적으로 지역을 떠돌아 다니면서 많은 이들이 이를 전제로 한 사고과정을 갖게 되고, 또 자신이 접한 소수의 행동과 선택적 기억에 의존해 그런 가설을 논리적이라 인식하게 된다.
개인의 이러한 전라도 혐오증은 자신의 이권 보호와 구별짓기를 통한 단결과 우월감의 획득에서 비롯된다고 발현, 유지된다고 볼 수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듯이 가족이라고 하여도 타인의 성공을 쉽게 인정할 수 없는 국민 정서 상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자신의 세금이 전라도에 투입되는 것은 경상도민으로써 참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이런 의식은 최근 경상도의 경제상황이 침체되면서 더욱 강화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반공정서 등으로 이미 형성된 적대의식이 지역발전, 자신의 생계와 맞물리면서 지속되는 것이다. 여기서 반공정서는 전라도민들을 ‘빨갱이’로 규정하면서 국가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자신들과 국가를 좀 먹는 전라도민을 구별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사용된다.
경상도민들은 한 데 모인 자리에서 이런 전라도 혐오증을 공공연히 드러내면서 서로의 일체감을 확인하고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 스스로의 의식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자신들의 의식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계기를 만들어 낸다. 앞서 언급했듯 이를 바탕으로 지역패권주의가 형성되고, 따라서 과거의 과오인 지역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는 먼 미래의 숙제로 남겨지게 된다.
왜 피지배자들이 지배문화를 적극적으로 따르는가? 반노조적인 노동자들, 남성우월주의를 수용하는 여성들, 교육적 위계를 옹호하는 저학력자들을 어떻게 이해(verstehen)할 수 있을까?
막스의 이론에 따르면 역사는 지배계급에 대한 피지배계급의 투쟁의 반복이라고 하였다. 즉 지배계급에 대항하는 활동들로 역사가 진행되어왔다는 것이다. 실제 봉건제의 몰락, 왕정의 폐지, 여성의 정치참여 등과 같은 사회 정치적 역사의 발전은 그것을 얻으려고자 노력한 피지배계급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전체 역사로 볼 때 아주 특별한 경우다. 약 이 만년 전부터 역사를 기록하며 인류가 활동했지만 대부분의 시기는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지배하던 시기였다. 위의 투쟁의 역사는 많지 않다. 다시 말하면 대부분의 시기를 피지배계급은 지배계급에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수용하며 살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왜 피지배자들이 지배계급이 만들어놓은 법칙을 따르는가? 이는 기본적인 자연의 법칙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개체는 더 잘 살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다. 더 잘 산다는 의미는 기본적인 먹고 사는 것에 있다. 사회적인 관점으로 볼 때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에 투쟁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행위다. 즉 투쟁하는 것 보다 수용하는 것이 개체적 입장으로 볼 때 더 잘 살수 있기 때문에 개체는 지배계급이 만들어놓은 법칙에 수용하고 대부분의 역사는 이러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예를 들어 권위가 강한 기업에서 어떻게 하면 잘리지 않고 직장생활을 더 오래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피지배계급은 기업에 반하는 노조적인 입장보다 반 노조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더 안정한 생활을 하는데 유리하다. 물론 피지배계급 입장에서는 강한 노조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상황이지만 이는 위험한 행위이며 이러한 행위를 하는 사람보다 기업의 법칙에 순응하는 사람이 더 잘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쟁하기보다는 순응을 선택하게 된다.
반대로 지배계급의 입장을 생각해보자. 지배계급은 최대한 자신이 가진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관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관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피지배계층이 자신에 대해 반발하고 투쟁하는 것을 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피지배계층이 자신이 만들어 놓은 문화와 법칙에 수용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지배계급이 만들어놓은 문화를 따름으로써 그들이 이익을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즉 피지배계급에 위치한 사람이 지배문화를 따름으로써 이득을 얻을 때 피지배계급은 자발적으로 지배문화를 따르고자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명품소비현상을 보자. 분명 명품은 상류층의 전유물이다. 앞서 이야기 했던 지배계급의 문화다. 이러한 지배계급의 문화에 대해 많은 피지배자들은 반발심에 앞서 가지기를 원한다. 이 이유는 단순하다. 명품을 가짐으로써 자신이 상류층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흔히 “명품을 가지고 다니면 주변의 시선이 달라진다” 는 것이다. 이것은 즉 지배계급의 문화를 따름으로써 피지배계급이 자신에게 이익이 생긴다고 느끼게 된다. 지배계급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사회적 인식을 심음으로써 지배문화를 적극적으로 따르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지배계급-피지배계급 계급체계에 대한 투쟁의 결여를 불러온다.
앞서 이야기로 돌아가 막스의 이론을 사회학적으로 보면 지배계급에 대한 피지배계급의 투쟁이지만 이를 원인적으로 분석해보면 피지배계급의 투쟁은 피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서 일어난 것이다. 즉 결국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게 되고 피지배계급의 투쟁 또한 마찬가지다.
투쟁과 굉장히 반대되는 지배문화에 대한 순응도 결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러한 패턴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배문화에 대해 순응하는 것은 실제 피지배계급에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마치 순응하는 사람이 이익을 받는 것처럼 사회적 분위기를 만든 지배계급에 의해 일어난다. 즉 실제는 이러한 순응이 피지배계급의 이익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의 결여로 이어지고 결국 이러한 과정은 계급체계의 공고화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현대에 이르러서는 왜 피지배자들이 지배문화를 더 적극적으로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아니 실제로 더 적극적으로 따를까? 흔히 고대나 중세에는 피지배계급이 지배문화를 우러러보고 순응하기는 했지만 현대에서처럼 적극적으로 따르는 것 같지는 않다. 이는 사회학적으로 볼 때 현대에 계급사회가 더 열린 계급사회이기 때문이다. 즉 열린 계급사회란 말은 계급간의 이동이 충분히 가능하며 실제 이러한 이동들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이러한 열린 계급사회에서는 피지배자들이 지배문화를 따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닫힌 계급사회에서 보다 더 많다. 피지배자들이 지배문화를 따름으로써 지배계급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 결과 사회관계에서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있다.(여기에서 좋은 인상이란 마치 지배계급으로 보이는 인상을 의미한다.) 또한 지배계급의 문화를 따르는 것만으로 자신이 지배계급이라는 만족의식을 느낄 수도 있다.
Question: 한국에 만연한 "명품" 소비 현상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 보는가 아니면 한국의 소
비문화에 변화가 있으리라 보는가? 그렇게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요즈음 인터넷 기사를 읽다 보면 연예인들의 생활에 대한 기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이 중에는 연예인들의 패션에 대한 기사 역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유명 연예인들이 명품샵에서 수많은 쇼핑백들을 걸치고 나오는 모습이 찍힌 파파라치 사진이나, 연예인들이 입은 옷, 혹은 액세서리들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지대한 관심 때문에 소위 말하는 ‘완판녀’ 라는 새로운 신조어도 생겼다. 이러한 트렌드를 지켜보면 한국의 명품 소비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최근 고가의 유명 브랜드들을 선호하구 구매하는 추세는 기존 30~40대의 고소득층에서 20대 직장여성을 필두로 대학생, 심지어는 고등학생까지 보편화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명품 소비에 대한 열기는 ‘L세대(Luxury Generation)’ 이라 불리는 명품족을 등장시키게 되었고, 한국에서는 주로 ‘명품을 선호하는 경제기반이 취약한 젊은 층의 사람들’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이러한 명품에 대한 소유욕과 소비 열기를 지켜볼 때, 한국 시장에서의 명품 소비 열기는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지속될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의 20대, 특히 대학생의 소비자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유년기를 보내면서 비교적 통제되지 않은 소비 생활을 영위해 온 세대로, 기성세대와는 상당히 다른 가치관과 감성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오늘날의 대학생들은 상당히 높은 자유재량 소비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일부 대학생들은 해외 배낭여행이나 인터넷 쇼핑몰, 백화점 등 다양한 방법을 이용하여 고가의 수입 명품을 지속적으로 구매하는 소비 주체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명품을 일단 카드로 사놓고 아르바이트를 해 금액을 채우기도 한다. 중고 명품은 쓰더라도 가짜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는 한 20대 여성의 길거리 인터뷰가 나간 후 인터넷 댓글에는 ‘비뚤어진 소비행태의 대표적 사례다. 연예인의 사회적 부나 명예를 모방하는 형식으로 대리만족을 얻으려는 심리의 한 단면일 뿐이다’는 부정적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명품에 대한 욕구는 전혀 줄지를 않고 있다. 작년 여름 우리나라 공항에서 기록된 사치품 반입은 사상 최대를 기록하였고, 세계 최초로 인천공항 면세점에는 루이비통이 들어섰다. 국내 최대의 명품 브랜드 빅2 라고 할 수 있는 루이비통코리아와 구찌코리아의 2009년 매출액은 각각 3721억 원과 2820억 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38%, 40%씩 성장하였다. 영업이익 또한 전년도 대비 35%, 79%씩 급성장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명품소비가 증가하고 있는 현상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매우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70년대 ‘한강의 기적’ 이래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이례 없는 발전을 이루었고, 현재 GDP 순위 13위에 이르는 기염을 토해내었다. 이러한 비약적 발전으로 인해 사람들은 이전에 없던 물질적 풍요를 누리기 시작했고, 사회적으로 부유층의 비율이 점차 증가해왔다. 소득의 증가는 곧 소비의 증가를 불러오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는 여성의 인권 상승과 젊은 여성들의 경제력 상승이 또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세계를 불문하고 사치품 혹은 액세서리 등의 소비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절대적으로 많은 비율의 소비량을 차지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에 더하여,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확대되고 경제활동 역시 증가하면서 여성들에 의한 소비가 자연스럽게 증가하였다. 게다가, 현대사회에서는 여성들의 결혼 연령이 점차 늦어지고, 미혼 여성들의 비율이 많아짐에 따라 경제력을 갖춘 미혼 여성들의 소비가 점차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인식에 대한 변화 역시 명품을 소비하는 현상에 대한 하나의 설명이 될 수 있다. 과거에는 명품이 그것을 소유하는 사람들에 대한 계층(즉, 귀족과 같은)과 지위를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면, 계급이라는 형태가 사라진 오늘날에 와서는 개인의 성공을 나타내어주는 사회적으로 암묵된 사인의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명품은 현대에서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더욱 더 많은 명품을 소유하려 하는 것이다.
앞서 제시된 이유를 바탕으로 볼 때, 한국 시장에서의 명품 소비량은 점차 늘어날 것이라는 의견에는 여지가 없다. 한국 경제는 몇 번의 경제위기를 넘어서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고, 명품 브랜드 역시 박리다매가 아닌 보다 적은 제품을 팔더라도 매우 많은 이익을 남기는 이른바 ‘명품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명품 마케팅의 한 종류인 현대카드의 ‘더 블랙’카드는 연회비 100만원, 최대 발급 장수 9999장이라는 독특한 컨셉트를 바탕으로 태어났다. 이러한 카드를 지닐 수 있는 사람은 현대카드사의 기준에 의해 선별되었고, 이들에게 다른 사람들과는 차별화되는 매우 독특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 풍조 속에서 일반 대중들의 소비 행태는 점차 ‘가치 소비’의 형태로 바뀌어가고 있다. 소비자들은 내가 어떠한 제품을 소유하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으로 그 제품을 넘어선 어떤 무언가를 얻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그 제품을 구매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보다 품격 있는 생활을 영위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고 있고, 결국 이러한 욕구가 ‘가치 소비’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소비형태를 만들어낸 원인과 소비 경향을 통합하여 볼 때, 한국 사회에서의 명품 소비 현상은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다. 소비자들은 점점 더 많은 소득을 벌어들이고 있고, 이러한 ‘부(富)’는 더욱 많은 소비를 이끌어낼 것이다. 이러한 경향 속에서 더 많은 사람들은 같은 소비를 할 때, 소비의 결과를 통해 내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어떤 무언가를 얻고 싶어하고, 그러한 소비의 가장 큰 형태로 명품을 소비할 것이다. 이에 더하여, 명품 브랜드 역시 보다 많은 고객을 유치하고 자신들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여러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의 명품 라인을 런칭하여 일반 소비자들의 구매를 유도하는 동시에 최상위 VVIP들에 대한 특별하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여 그들의 소비를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면서 더욱 큰 파급효과를 불러오고 있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의 명품 소비 현상은 더욱 더 심화되어만 갈 것이다.
주제: 한국에 만연한 "명품" 소비 현상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 보는가 아니면 한국의 소비문화에 변화가 있으리라 보는가? 그렇게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최근 한국 사회는 불평등이 심화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인들이 최근에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서민’이라는 단어이다. ‘서민’의 사전적 의미는 ‘아무 벼슬이나 신분적 특권을 갖지 못한 사람’으로 정치인들이 일반 시민을 자신과 동등한 계층으로 보는 것이 아닌 이미 자신들보다 하위 계층으로 생각하고 있고 일반 시민들도 자신들을 서민으로 표현하며 서민임을 이미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민 계층은 더욱더 상위 계층을 부러워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지만 현실적으로 상위 계층이 소비하는 명품들을 소비하기에 서민 계층의 경제력이 부족한 현상이 발생한다. 따라서 명품 소비를 따라 하려고 하는 서민 계층의 명품 소비는 서민 계층의 경제력 부족으로 인해 점점 줄어들 것으로 생각된다. 반대로 상위 계층은 자신이 더 커진 경제력을 과시하기 위해 명품 소비를 점점 더 늘릴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사회 전체적으로 명품 소비는 더욱 증가하겠지만 명품 소비를 하는 계층이 명확히 갈릴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에 만연한 "명품" 소비 현상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 보는가 아니면 한국의 소비문화에 변화가 있으리라 보는가? 그렇게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2009년 루이뷔통의 한국 내 연매출액이 5900억을 달성했다. 이 뿐만아니라 이미 한국의 명품 시장은 세계 전체시장의 2%가 넘는 5조원을 돌파하였고 더 놀라운 것은 최근 3년간 국내 명품시장의 CAGR(연복합성장률)이 22.4%에 해당하는, 지속적인 성장세에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평소에 못 해주더라도, 돈 모아서 명품백 하나 정도는 사줘야한다.”라는 연애규칙이 이러한 시장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매스컴에서 명품소비의 허영성에 대해서 보도한다고하지만 그 효과는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한국 국민들은 명품에 열광하고 있으며 이 열기는 앞으로도 지속 될 것인가?
우선, 이렇게 국내에 불고 있는 명품 광풍은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계급의 불투명성과 각 사회 계층간의 경계의 모호함에 기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근대에 들어 자본주의화가 되면서 부를 축적할 수록 사회에서 어느정도 ‘인정받는’ 지위로 올라갈 수 있게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자본의 축적량은 일생활에서 가시화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를 명시시킬 필요를 느꼈고 그것이 명품으로 집중된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집권층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이러한 ‘계급의 불투명성’을 역 이용하여 무리해서라도(계층간의 경계 모호함으로 경제적 부가 적더라도 명품 소비가 가능) 명품을 구입하게 되면서 명품 광풍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명품 소비패턴은 초기의 그것과 많이 달라졌다. 시장도입기에 루이뷔통, 샤넬, 디올과 같이 전통적이고 명품으로 잘 알려진 브랜드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면 요즘 소비패턴은 “명품”이라 불리우는 브랜드의 범위가 단순히 브랜드 수 뿐만 아니라 가격측면으로도 넓어졌기 때문이다. 즉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400만원하는 샤넬백부터가 명품으로 인정되었다면, 요즘은 3~40만원대에 구입가능한 코치 또한 Entry-level 명품(또는 준명품)으로 취급되며 디젤과 같은 캐주얼 브랜드 또한 관점에 따라서 명품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명품의 다양화는 맹목적인 소비에 제동을 걸게 되는데, 명품의 범위가 넓어질 수록 다양성에 대한 수용도는 높아지기 때문이다. 즉, 기존에 ‘여자라면 샤넬백은 하나쯤 있어야한다!”라는 식으로 소비전에 주체적인 생각의 기회가 없이 사회적으로 소비를 압박했다면 요즘들어서는 ‘샤넬백도 좋지만 우리 나이때에는 니나리찌나 MCM이 더 귀엽지. 샤넬은 내 분위기하고는 안맞아’라는 소비에 소비자 자신을 고려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할 수 있다.
이러한 패턴의 변화를 고려할 때, 한국에 퍼져있는 명품에 대한 열기는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것이 명품의 시장이 수축될 것이다라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내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경제적 지위를 나타낼 수 있는 상품을 소비할 것이고 초기의 명품시장을 주도했던 브랜드들은 ‘Must have item’정도로 하나쯤은 소비할 것이지만 그것은 꾸준하고 일상적인 상품으로 인식될 뿐 맹목적인 소비의 패턴은 줄어드는, 현재 일본이 걷고 있는 방향과 비슷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만연한 "명품" 소비 현상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 보는가 아니면 한국의 소비문화에 변화가 있으리라 보는가? 그렇게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몇 년 전부터 ‘된장녀’라는 단어가 화두가 되기 시작했다. 처음 단어가 생성되기 사회성을 갖추기 시작한 시점보다는 많이 줄어 사용빈도가 줄었지만, 현재 ‘된장녀’라는 단어는 원래 사전에 존재했던 단어처럼 널리 일상에 통용된다. 된장녀는 자신의 경제적 능력 이상의 소비를 지향하는 종류의 여성들을 의미하며, ‘된장’이란 단어를 통해 해당 여성들의 행태를 비하한다. 현재는 의미가 확장되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통념보다 과도하게 남성에게 의지하려는 여성들로 지칭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초기의 정의에서 본인의 능력을 초월하는 소비를 지향하는 것이 우리사회에서 부정적으로 받아들여 진다는 것과,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도 해당 수준의 소비가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늘어왔다는 것이다. 명품 혹은 가시적인 사치에 대한 욕구는 복합적인 이유로부터 생겨난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복합적 이유로, 명품 소비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나, 지속적으로 변화되며 이루어질 것이다.
명품 소비나 가시적인 사치에 대한 욕구에 대한 원인으로 가장 많이 통용되는 원인 중 하나는 이웃효과이다. 카를 막스는 “만약 작은 집 옆에 궁전같이 큰 집이 솟아오르면 사는데 불편함이 없는 그 작은 집은 곧 오두막으로 전락하고 만다.”라고 했다. 이웃효과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열등감이고 나와 다른 사람의 차이가 가시적이라는 가정이 있어야 한다. 나만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주변에 비교할 대상이나 나의 삶과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견줄 다른 기준이 없다. 따라서 이런 세상에서는 자신 본연의 삶과 가치 외의 내적 투쟁은 적을 것이다. 하지만 항상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견줄 대상이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이웃, 공인, 동료 등 항상 눈에 보이는 사람이 나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대부분의 인간은 이에 대해 자연적으로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게 되고,자신이 더 낮은 위치에 있다는 것이 관찰로 인해 느껴지면 열등감이 생기게 된다. 이 열등감은 가슴 속의 공백을 느끼게 하는데, 라캉은 인간은 이 공백은 채우기 위해 소유의 재생산을 한다고 한다. 이런 이웃효과는 가시성이 커질수록 강해지는데, 한국은 인구밀집도가 높아 타인과 나의 차이가 더 가시적이며 마주치는 횟수도 높아 각인이 더 쉽게 된다. 따라서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이웃효과가 더 빨리 그리고 더 깊게 퍼지게 된다. 인구밀집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이웃효과에 의한 영향력은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한 물건이 명품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면, 그 자체만으로 해당 재화는 물건 본연의 가치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명품을 만든 명장의 이름이 명품의 질과 가치를 보장하며, 그 가격은 소유자의 소비수준을 대변한다. 소비자들은 명품을 사용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혹은 원하는 본인의 사회적 지위가 명품의 소유와 타인에 대한 가시성을 통해 투영되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노력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소비수준을 실제 본인의 수준보다 고평가 되도록 꾸미려 노력할 때, 문제가 될 수 있다. 물론 성공적인 과시적 소비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보는 본인의 가치를 상승 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소비행태 역시 이웃효과와 같은 이유를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본인의 경제적 수준에 맞지 않는 소비를 한다는 것은 결국 열등감 때문이고,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을 소유의 재생산을 통해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본인의 본질적 가치는 외형을 꾸민다고 해서 상승하는 것이 아니다. 외형에 지나치게 집착을 하다 보면, 자기 자신을 잃고 물질과 사회구조의 노예로 공허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인간의 본능에 대한 것이므로, 존재적 삶에 대한 고찰을 어릴 때부터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않는 한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명품의 소비는 순응(Conformity)와 구별짓기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사실 순응과 구별짓기는 단어 그 자체만을 본다면 동시에 어떤 한 행동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 모순되어 보이기도 한다. 순응은 이미 존재하는 흐름에 복종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구별짓기는 자신이 다른 집단과 차별화 되려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두 동기는 한 행동을 동시에 자극할 수 있다. 이웃효과나 미디어를 통해 가시적인 요소를 통해 영향을 받고, 소비를 하는 것은 한 사람이 자신이 관찰은 사회의 기준에 부합하려고 하는 노력과 같다. 이는 곳 이 사람이 사회에 복종하려고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바로 순응이다. 구별짓기는 바로 이 행위를 하는 이유에서 나온다. 이 사람이 과시적 소비를 하는 것은 자신이 기존에 속하던 집단이 새로 관찰한 집단보다 열등하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느끼기 때문이고, 기존의 열등한 집단에서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보이려는 욕망을 주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역시 인간의 본능에 대한 문제이므로, 인류가 영속하는 한 순응과 구별짓기는 명품 소비를 지속적으로 조장할 것이다.
미디어의 영향도 크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막시스트인 하버마스는 “생활세계의 식민화는 체계의 유지를 담당하는 미디어가 생활세계에 침투하여 민주적 규범 수립의 절차를 무시하고 이를 돈과 권력의 교환관계에서 발생하는 논리로 대체한다”라고 했다. 이를 쉽게 말하면 이미 막대한 권력과 재화를 가진 기득권층이 자신들이 일구어낸 사회구조를 지속시키기 위해 돈과 권력을 이용해 미디어를 조작하고 사회를 식민화 시킨다는 것이다. 사실 앞서 설명한 명품의 상징이 조장해내는 상류층에 대한 동경은 인간의 본성 때문 만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다. 특히 한국사회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저녁 10-11시에 하는 드라마에 몰두하고 주말엔 예능프로그램을 본다. 재벌의 삶에 관련된 드라마는 사람들이 상류층의 삶과 소비 행태를 동경하게 하고, 연예인들이 한 화려한 의상, 장신구나 헤어스타일은 사람들을 물질에 현혹되게 한다. 이는 자본의 논리로 사회의 상호관계가 형성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일이며, 명품 소비가 지속되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명품 소비가 지속될 것이라는 것을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사회구조 상 한국 사회에서 더 강하게 작용하는 이웃효과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게 하고, 인간의 여러 본능은 항상 소비를 자극하게 디자인되었다. 또한 기득권층의 자신의 위치를 지키려는 노력과 이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중은 명품 소비를 계속 조장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명품 소비의 형태는 시간이 가면서 달라질 것이다. 사람들은 명품을 사면서 자신들을 구별짓기하는데, 만일 사람들이 모두 아는 명품만을 구입한다면, 구별짓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매매의 대상이 되는 명품의 종류는 그 폭이 시간이 가며 점점 다양해 질 것이다. 이는 수요가 여러 재화를 퍼지게 유도할 것이고, 유행에 따라 명품의 가격과 가치는 그 변동이 매우 심해질 것이다.
왜 피지배자들이 지배문화를 적극적으로 따르는가?
수많은 시민 단체들이 결성되고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요즘 그러한 인권 운동들이 결코 퇴보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확실히 그 당시의 센세이셔널한 충격과 더불어 뜨거운 열기는 사라졌다. 나아가, 오히려 지배문화를 적극 수용하는 ‘반항아’들이 그 내부에서 발생, 꾸준히 성장했다. 노조 결성을 통해 노사 관계 개선 및 노동자 처우 개선을 주장하던 노동자들 중에서 한편으론 반노조적인 분위기가 성장했고, 너무 심한 페미니즘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여권을 주장하던 여성들 중 일부는 아직도 남아 선호사상을 선호하는 등 남성우월주의를 적극 수용한다.
이러한 집단들은 지배 집단에 수용적으로 살지 않는 삶도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는 점에서 그러한 삶을 생각조차 못했던 19세기 말 이전의 피지배 집단 사람들보다 지배문화에 훨씬 더 수용적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 사회의 어떤 특징이 이러한 피지배 계급 내부의 반항아를 양산하게 만든 것 일까.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먼저 ‘반노조적인 노동자’의 예로 전교조를 비난하는 선생님들이 있다. 많은 선생님들이 전교조의 기본 목적이야 어쨌든 간에 전체 선생님들을 대표하는 사람들로서 그들의 행동이나 처사에 동의하지 않으며, 따라서 오히려 전체의 권익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그들로 인해 오히려 자신들이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지배계층에 반하기 위해 구성된 정치적 집단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다음으로 ‘남성우월주의적 여성’의 예로 외국의 길거리에서도 한눈에 구분되는 ‘천상 여자’인 한국의 젊은 여성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한 외국인이 쓴 어떤 신문기사에서는 우리나라 여대생들의 대부분은 수업시간에나 밥을 먹으러 갈 때나 미국이었다면 파티에서나 입을 만한 옷들을 차려 입고 다닌다고 지적했다. 한편, 미국으로 단기 유학을 떠났던 지난 학기에 같이 간 한국 언니는 학생들이 남녀 구분할 것 없이 청바지에 백팩, 캔버스화를 신고 다녀서, 한국에서처럼 구두나 명품 숄더 백과 같은 불편하지만 필수적인 패션 코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매우 좋아했다. 한국에서는 그냥 청바지만 걸쳐 입으면 괜히 주눅들지만 또 ‘여성스럽게’ 차려 입은 날이면 괜히 기분이 좋은데, 타인, 즉 ‘남성’의 잣대로 자신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유교라는 남성주의적 사상에 기반하여 여성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가 존재하는데, 이것은 매우 오랜 시간에 걸쳐 구축되어왔기 때문에 그 자체의 불합리성을 떠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여성스러운 여대생들의 미래인 아줌마들은 한국 사교육 열풍 등의 주역으로서 세계 다른 나라의 아줌마들에 비해 매우 거칠고 남성스럽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교육적 위계를 옹호하는 저학력자의 경우를 살펴보자. 제대로 된 교육을 한번도 받지 못한 사람일수록, 그런 자신에게 사회 참여의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를 탓하기보다는 무식한 자신을 탓한다. ‘못 배운 사람’으로서 느끼는 자아 존중 감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우리사회는 학벌 수준에 따라 사회적 목소리의 크기가 결정된다. 김소진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보여주듯 대학생들의 시위에 ‘빌붙어’ 어쩌다 기회를 잡은 ‘밥풀때기’들의 처절한 반항은 결국 대학생들을 포함해 사회전체로부터 그저 무시될 뿐이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자. 어느 시대에서도 피지배집단의 계급 상승 욕구는 존재해왔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 현대 사람들은 예전처럼 기득층에 저항하기보다 오히려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편을 택한다. 왜냐하면 지배 집단은 그들에 대한 도전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보일 정도로 더욱 절대적이고 권위적인 입지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는 텔레비전과 같은 대중매체는 ‘행복’의 획일적 기준으로 지배 문화만을 제시한다. 특히 시청률이 생명인 티비 프로그램들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야 하는 만큼 사람들의 인식에 자리잡고 있는 남성우월적, 가부장적인 전통적 권위에 순응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 지배 문화가 모방하기 쉽도록 상품화가 잘 이루어 짐으로서 이러한 추종을 더욱 부추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도전’ 대신 ‘안정’이라는 가치를 강조한다. 피지배집단은 지배 문화에 더욱 충성하지만 지배층과 결코 가까워지진 않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지금의 ‘싸구려 행복’에 만족하는데, 왜냐하면 ‘어차피 안 될 게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대 사회에서 피지배 집단의 일상적 행복과 자존 감의 근원은 어떤 면에서 ‘키치적’ 속성을 가진다. 반항보다는 수용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선택’을 통해 오히려 계급상승이라는 ‘현실 도피 책’을 갈구하는, 그리고 그것이 결코 계급상승으로 이어질 수 없음을 은연 중 알고 있는, 모순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남는 것은 결국은 혼란스러움뿐이다.
Q. 한국에 만연한 "명품" 소비 현상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 보는가 아니면 한국의 소비문화에 변화가 있으리라 보는가? 그렇게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 지속 될 것이다. 다만 명품 소비 현상이 일부 변모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남성, 여성 가릴 것 없이 월급이 오르고, 수중에 자금의 여유가 생기고, 생각지 못한 자금이 생긴다면 그들이 가장 먼저 사려고 하는 제품의 종류는 다를지라도, 그들이 사려고 하는 제품들은 거진 다 그 분야에서의 ‘이름 값’을 하는 제품일 것이다(다만 이 사람들은 의.식.주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들은 갖추고 있는 상황이어야 한다). 더욱 자세히 예를 들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로또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있다고 하자. 복권이 당첨되기 전에도, 그는 평범한 집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소득 수준에 맞는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고, 그가 가진 자금에 걸맞는 의, 식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즉, 그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아무런 지장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복권이 당첨된 후에, 그는 가장 먼저 무엇을 할 것인가? 한 설문에 의하면, 복권 당첨자들이 당첨된 후, 가장 먼저 구매한 것이 ‘자동차’ 인 경우가 19%에 달한다고 하였다. 또 새 집을 사거나, 현재 집을 renovation 하는데 돈을 썼다고 하는 사람이 54%라고 하였다. 그들 모두 집이 없지 않았으며, 그들 모두 자동차가 없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소비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들은 현재보다 더 나은, 더 좋아 보이는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고, 돈의 여유가 생기면 그것들을 소유하고자 하였다. 행여 지금 소유하고 있는 것과 새로 구매하고자 하는 것의 기능이 같을 지라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럴싸하게 비추어 지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이는 구두, 가방 등의 악세사리와 와인의 경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더 좋아 보이는 것, 더 나아 보이는 것, 명품은 이에 해당된다. 즉, 명품을 추구하고자 하는 본성은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으며, 이는 소득이 많아질수록 그 경향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겠다.
다른 한 가지 경우를 더 살펴보자. 예술작품 경매에 진품 ‘모나리자’와 가품 ‘모나리자’ 및 이름 모를 화가의 작품 하나가 나왔다고 하자. 입찰자들이 많은 물건을 무엇일까.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진품 ‘모나리자’에 사람들은 열광할 것이며, 가격이 수십배, 수백배가 높다 하더라도 구매하고자 할 것이다. 나머지 두 작품에 대한 관심은 진품 ‘모나리자’와 비교되지 못할 것이다. 명품은 진품 ‘모나리자’에 해당될 것이며 가품 ‘모나리자’는 일명 ‘짝퉁’에 해당될 것이고, 이름 모를 화가의 작품은 ‘일반 제품’에 해당될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한국에서의 명품 소비현상은 비록 한국만의 특징적인 소비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며, 범 세계적이고, 심지어 범 시간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명품 소비현상은 한 민족의 특성 때문에 생긴 현상이 아닌 인간 본성에 의해 생긴 현상이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명품 소비 현상은 한 때의 소비 현상이 아니게 되며, 앞으로도 지속 될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앞서 잠시 언급하였듯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명품 소비현상’이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는 있을 것이다. IMF 직후, 부유층 아래에는 바로 빈곤층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산층의 붕괴가 심하였다. 이 때에, 명품의 소유는 부유층의 전유물이었고, 그 외의 계층은 의.식.주 해결에 급급하였기에 명품의 구매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명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욕구가 없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의 경제 회복 후, 명품 소비 현상이 부유층만의 전유물이 아닌, 중산층, 중하위계층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현재, 명품 소비 현상은 빈곤층이 아닌 전 계층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예전에는 부유계층처럼 보이기 위한 명품 소비가 주를 이루었다면, 현재는 빈곤층으로 보이지 않기 위한 명품 소비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즉, 명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현상 자체에는 변함이 없으나, 그 촉매제는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답하고자, 수 많은 ‘짝퉁’ 이 쏟아져 나왔고, 일반 서민들도 부담 없이 ‘짝퉁’을 구매하여, 빈곤층으로부터 ‘구별’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 역시 조금씩 변화될 기미를 보인다. 짝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더불어 빈곤층으로부터의 ‘구별’에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구별’을 받고자 하는 욕망이 덧붙여져서, 흔히 볼 수 있는 짝퉁을 구매하는 것이 아닌, 그리 알려져 있지 않은 브랜드의 물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소비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얼핏 보면 ‘명품’ 소비 현상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소비 계층에 따라서 그리 알려져 있지 않은 브랜드의 물품 구매는, 저가 브랜드의 물품 일 수도 있고, 고가 브랜드의 물품일 수도 있다. 즉 이것도 명품 소비현상의 한 줄기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명품 소비 현상의 촉매제 및 세부 모습은 바뀔 수 있으나, 그 원동력 및 토대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1) 한국에 만연한 "명품" 소비 현상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 보는가 아니면 한국의 소비문화에 변화가 있으리라 보는가? 그렇게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우리사회에서 만연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 바로 “명품” 소비 현상이다. 된장녀, 명품족 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명품에 대한 열광은 실로 대단하다. 그러나 이 현상은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공정한 경쟁을 통하거나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고 재화나 용역 그리고 서비스를 얻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지만, 명품 소비 현상과 관련된 사회 문제들을 보면, 시장 자유 원칙에 부합하리만큼 그 경쟁의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변질되어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과다한 경쟁이 결과적으로 어느 특정한 사람이나 기업에게 그 이익이 모두 돌아가게 만들어 무수한 낙오자나 패배자를 양산하고, 이것이 전체적인 사회 구조적인 면에서 볼 때 소득 불균형을 초래 하여 부익부 빈익빈과 같은 현상으로 까지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더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하는 것은, 이런 현상을 바탕으로 한쪽에서 부를 소유한 자들의 무분별한 소비가 뒤따른다는 것이며, 이러한 과잉적인 소비행태가 마침내는 일반 소비자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주어 이것이 마치 유행처럼 사회 전반으로 흘러 결코 옳지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어느 외국 신문 보도에 따르면 구찌, 페라가모, 루이비통과 같은 명품시장의 규모는 시장의 불경기라는 상황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꾸준히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고, 이는 다른 시장으로까지 그 영역을 확대하고있는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보수주의에 입각한 일부 전문가들이나 시장 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현상들에 대하여 경제학자 스미스가 말했듯 보이지 않는 손, 다시 말해 공정한 경쟁시장을 통한 가격기구의 작용이므로 결코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고, 따라서 그런 걱정은 지나친 기우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말을 그대로 아무런 비판 없이 수용하기에는 현재의 과다한 경쟁과 승자 독식에 의한 지나친 사치열병은 그 정도를 한참 벗어난 것 같아 보인다. 지금은 이미 그것이 안고 있는 사회병폐적인 문제점을 간과하고 넘겨버리기 보다, 이에 대해 근본적으로 분석하고, 잘못된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대책을 세워야 할 시점이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특히 명품 소비 현상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흔하게 떠올릴 수 있는 이유로는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소비문화가 성장되기 전에 돈을 가진 사람이 많아져 이들이 돈을 쓸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던가, 자기만족, 신분상승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 라는 것 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명품 자체의 매력과 가치만을 증명할 수 있을 뿐,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별하게 가지는 유별난 명품 사랑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우리 사회가 집단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일본 역시 명품에 대한 집착이 심각한 나라이기 때문에 두 나라의 공통점을 통해서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공통점은 바로 집단성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두 나라 모두 민족주의가 강해서 사람들이 서로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이렇게 집단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명품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화로까지 보게 된다. 즉, 누군가가 명품 핸드백을 사면, 자기도 따라서 사야만 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또한, 매체의 영향 역시 강하게 나타난다. TV나 인터넷 등에서 흔하게 보이는 것이 명품이다 보니까, 자신도 명품을 가지고 있어야만 사회 구성원으로 올바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사회에서 명품은 개인의 기호에 따라 선택하는 기호품이 아니라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사회의 신분증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명품으로 자신을 나타낼 수 밖에 없다 보니 명품 소비가 자기만족이 아니라 자기과시를 위한 수단이 되어버리게 되었다. 사람들은 브랜드의 가치나 패션에 대한 관심보다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수단으로써 명품을 사게 된다. 이렇게 자기 과시를 위하여 명품 소비를 하게 되다 보니 정당한 수단이 아닌 방법으로 얻으려는 사람들도 많아지게 된다. 여기에서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업체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는 이미테이션 문제나 명품을 사기 위해 갚지 못할 카드 빚을 지게 되는 현상이 바로 이런 문제에 속한다. 때문에 명품 소비 현상으로 인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미래에 대한 예측은 여기서 출발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관점에서 명품 소비 문화의 미래에 대해서 예측해 보면, 나의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그 가장 큰 원인은 매스미디어의 성장에 있다. 지금 우리사회에 존재하는 매스미디어는 크게 TV, 인터넷, 라디오, 신문으로 들 수 있다. 그 중에서 라디오와 신문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가고 TV와 인터넷의 영향력은 날로 커져가고 있는데, 그 두 매체가 명품 소비 문화에 끼치는 영향이 순방향이기 때문이다. 즉, TV와 인터넷이 성장하면 할수록 명품 소비 문화 역시 심화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먼저 TV에 관련된 명품 소비 문화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TV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가 다 셀러브리티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들의 역할은 공중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그런 역할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명품 이외의 물건으로 자신을 치장할 수 있을까? 그들이 명품을 사 입고 TV에 나오는 이유는, 명품 자체의 미적 가치보다도, 사회적 가치를 이용하기 위해서이다. 명품을 입고 나옴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고 하는 것이 연예인이고, 그 연예인들이 만드는 TV 프로그램들을 전파를 통해 집집마다 보내게 되면서 사회 모든 사람들이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연예인들이 앞장서서 명품을 소비하는 것을 본 대다수의 사람들 역시 그들을 따라가기 위해서 명품을 소비하게 된다. 연예인들은 패션에 있어서는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아이콘이기 때문에 더욱 그 영향력은 크다. 때문에 TV가 미디어로서 더욱 성장해 나가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명품 소비 문화의 미래에 대해 내릴 수 있는 예측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터넷 역시 명품 소비 문화에 대해서 순방향의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이 영향이 극대화 되는 것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분야이다. 넓게 보아 블로그까지 포함하고 있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사람들과 사람들을 연결해 서로가 서로의 생활을 간접체험 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럼 여기서 보통 누가 누구에게 관심이 있을지를 생각해보면 인터넷의 발달이 명품 소비 문화에 어떻게 영향을 주게 되는지를 보다 잘 알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서 가까워지려 하는 주요 대상은 바로 셀러브리티 들이다. 사람들은 발달한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해서 보다 셀러브리티 들의 삶에 가까워 질 수 있다. 보다 확실하게 말하면, 그들이 무엇을 사는 지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TV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의 발달 역시 명품 소비 문화에 대해서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미래를 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내가 제시하는 대책은 바로 누진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무분별하고 과시적인 소비를 줄이고 여가, 안전, 환경 등의 비과시적인 소비를 증가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이 정책은 많은 국가들에서 시행되어 왔던 사치세 등의 특별법과 비슷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른 정책이다. 사치세 등은 개인의 기본적인 권리인 소비를 강제적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여러 문제점이 나타났다. 또한, 사치의 기준 역시 명확하지 않아서 제대로 효과를 얻을 수가 없었다. 이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개인의 인센티브를 크게 저하시키지 않으면서도 개인적인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대책을 세웠다. 어떤 특정 품목에 대해 과세를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예외 없이 전체소득 중에서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세금이나 저축과 같은 투자부분에 대해서는 면세를 해주고 소비액의 증가에 따라 그 한계세율을 증가하도록 하는 것이 방책의 골자이다. 결과적으로 점차적으로 개인들은 과시적 소비를 줄이게 되고 비과시적 소비활동을 촉진하게 되어, 저축률은 높아지고 생산성은 향상되며, 결국에는 경제성장은 물론 효과적인 복지서비스까지를 가능케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시행을 위해서는 보다 자세한 조정을 통해 우리나라에 적합한 정책을 세워야 하겠지만 이 정책을 통해서 명품 소비 문화를 상당 부분 제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명품 소비 문화와 같은 극단적인 소비 형태는 반드시 제거되어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은 돈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이에 비례하여 행복이 증가할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어느 수준 이상이 되면 행복의 수치는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오히려 감소하게 된다. 경제성장의 지표로 흔히 사용되는 GDP와 행복의 상관관계 역시 이와 비슷하게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에 고작 열 번도 쓰지 않을 물건을 두고,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상류층을 따라 하기 위해서 터무니없는 거액의 돈을 주고 사는 오늘날의 현실은 문제가 심각하다. 이러한 개인들의 소비행태는 우리들에게 아무런 이익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면에서 보면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더불어 이러한 사치품에 대한 열풍으로 인한 오늘의 사회 현상을 알고 있으면서도 대책을 강구하기 보다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는 정책 입안자들이나, 대공황 등의 경기 불황의 사례만을 들어 소비를 줄이면 경제 침체가 반드시 오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일부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각성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사치를 위해 쓰이고 있는 엄청난 자원을 바로잡아 더 나은 사회로의 발전을 위해 쓰게 된다면 사회의 모두가 조금 더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다.
Assignment 3 : 한국에 만연한 "명품" 소비 현상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 보는가 아니면 한국의 소비문화에 변화가 있으리라 보는가? 그렇게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서민들의 체감 물가 상승과는 별개로 백화점 시장은 더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현대 백화점은 이번 분기에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하였고, 롯데 백화점은 해외 명품 부문에서 47% 매출 신장을 기록하였다. ‘비싸면 잘 팔린다.’ 한국에서의 명품 마케팅 공식이다. 해외 명품 브랜드 제품이 한국에 들어오면 가격이 크게는 3배까지 부풀려져 판매된다. 그래야 잘 팔린다고 한다. 싼 게 비지떡이라며 무조건 비싸면 좋다고 믿는 한국 사람들. 비싼 떡은 왜 비싼지 이유나 알고 사 먹는 것일까. 한국에서 모든 것의 가치 기준은 돈이다. 그것을 대체할 만한 것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한국의 명품 소비 현상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명품을 소비할 경제력이 있는 계층이 명품을 구매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은 사람들 특히, 아직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사회 초년생이나 대학생들의 명품 소비 현상은 일련의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부모의 경제력을 담보로 명품을 소비하는 이들은 사회적인 위화감을 조장할 수 있으며, 본인과 부모의 경제력 모두 갖지 않은 이가 가계 부담을 감수하면서 명품을 소비하는 것은 경제 구조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런데 경제력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이들이 이토록 명품 소비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발달함에 따라서 사람들은 자기를 보여주는 일에 익숙해졌다. 자신을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현재의 행복, 성공을 수시로 보여주어야 하고 확인시켜주어야 한다.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하므로 물질적이어야 하며 물질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소비가 조장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과시욕이 명품 소비 현상의 근본적 원인인 것은 자명한 사실인데 그렇다면 한국에서 유난히 과시욕이 들끓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는 눈’을 중요시한다. 평판, 소문, 이미지와 같은 것들에 목숨을 건다. 국토가 좁고 인구 밀도가 높아 자연스레 이런 문화가 형성되었을 것이라 유추한다. 이웃을 일컬어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아는 사이’라고 말할 정도니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은밀히 지켜보기도 한다. 엄친아, 즉 엄마 친구 아들이란 단어도 ‘옆집 누구누구는 이번에 성적이 몇 점이 올랐다던데 너는 어떻게 된 게 이 모양이냐’고 아이들을 꾸짖을 때 유래된 말이다. 자기 자신의 목표를 좇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 속에 기준 지어진 그 위치를 향해 달려가도록 길들여진 것이 우리의 문화이다. 이러한 문화적인 맥락이 전환되지 않는 한 명품 소비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