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OLPC 아시아 본부를 한국에 설립한다는 기사와 함께 ‘100 달러짜리 노트북’에 관심이 모아졌었다. 본래 MIT의 Media Lab에서 시작된 OLPC 재단은 One Laptop Per Child라는 구호아래 적은 비용의 노트북 컴퓨터를 가난하여 혜택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나눠주고, 그 것을 통해 교육시키는 운동이다. 특히나 단지 저가형 노트북이 아닌, 그들이 살고있는 환경에 맞추어진, 태양 아래에서도 잘 보이며 전력 소모가 작고 전력이 다 떨어져도 손으로 충전할 수 있는 시스템의 컴퓨터이기 때문에 더더욱 실질적인 효과가 높다고 볼 수 있다. 2백만이 넘는 XO(OLPC용 랩탑)가 31개국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수치는 아시아 지역 등에 대한 확장과 함께 더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네그로폰테 교수의 네그로폰테 교수는 2008년 12월 TED 인터뷰에서 XO 컴퓨터를 통해 제 3세계 국가 어린아이들이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유해 컨텐츠가 차단된 인터넷과 연결되고 그로부터 책을 읽거나 여러 학습을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컴퓨터 기부 프로그램과는 다른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며, 이는 20년 뒤 제3세계 사람들도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는 내면적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고 교수는 생각한다. 또한 실제로 XO 컴퓨터를 받은 어린이들은 빠른 속도로 읽기능력과 해석능력이 올라갔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능력의 측정은 이미 선진국이 만들어 놓은 잣대 하에서만 유효하다. 즉, 현재 서구중심적인 가치관이 점차 ‘교육’이라는 이름하에 현재의 사고방식을 좀 더 넓은 세계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로 재생산되는 것이다. 즉 이것 또한 선의로서 행해지는 미국의 제국주의와 맥락을 같이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프로그램 컨텐츠의 한계점을 제외하고 그들의 재정적 원천으로부터 생겨나는 한계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OLPC 재단은 비영리 목적이기 때문에 XO 컴퓨터의 개발비와 제작비 및 컨텐츠의 제작비를 기부금으로밖에 충당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기부금은 각 나라의 정부와 글로벌 대기업으로부터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이유 중 하나는 OLPC 초창기에는 미국내에서 2배 가격의 XO 컴퓨터를 사면 1대의 XO가 아이들에게 기부되는 형태의 일반인 참여를 유도했지만 그리 높지 않은 성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정적 원천은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는데, 정치적인 이슈와 독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데 G20 의장국으로 한국이 선정되자 한국에서 아시아 본부 설립을 제안하는 등의 사실은 이러한 정치적 목적을 OLPC가 역이용한 사례로 볼 수있다. 하지만 이렇게 OLPC 프로그램이 어느 한 국가, 또는 기업의 홍보 사례로 언급될 수록 그 목적의 순수성은 잃어간다고 생각한다.
‘제 3세계’, ‘빈민국’이라는 이름에서 풍겨지는 불쌍하고 도와줘야할 것 같은 이미지 때문에 현재 사회에서 국가적 측면에서나 개인적 측면에서 그들을 ‘자립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나름의 문화가 있으며 지금까지 일궈온 역사가 있다. 아직까지 그에대한 깊은 이해가 있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현시점의 기준과 생각으로 남을 도와준다고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들의 경쟁력을 오히려 빼앗을 것이다.
1) [건강격차] 리처드 윌킨슨처럼 잠시 뒤르케임주의자가 되어 생각해보자. 지나친 불평등이 사회적 통합을 저해하고 아노미를 만연시키며 집단 간 갈등과 폭력을 조장하여 범죄, 자살, 묻지마 폭력, 만성피로, 우울증 등등을 증가시키고 사회전체적 수준에서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저하시킨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가정할 때, 우리 사회의 포괄적 의미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어떠한 사회정책에 우선적 초점을 두어야 할까?
“어느 때건 몸은 시대를 담는 그릇이며 시대의 병을 앓는 공간이기도 하다. 문명사회에서 현대인의 몸은 더 이상 혹독한 자연이나 결핍을 앓지 않는다. 우리는 풍요와 불평등을 앓는 몸이다.” 인제대 의과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강신익 교수의 말이다. 이 한 마디의 말은 곧 우리 사회에 만연한 건강 불평등에 대한 촌철살인 격의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20여 년 동안 한국인의 국민소득은 약 6배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세계적으로도 재화와 풍요로움이 비슷한 추세를 보여왔다. 게다가 사회적으로는 ‘웰빙문화’가 모든 이들에게 널리 퍼졌고, 민주화 역시 상당한 발전을 보여왔다. 또한,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넘어서면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인식도 널리 퍼져가고 있는 추세이다. 하지만 건강소득의 경우는 정 반대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경제적인 부의 증가가 곧 사회적인 행복의 증가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경제적인 불평등은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필연적인 것이다. 하지만, 사회∙문화적인 불평등이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필연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개발’ 이라는 목표 아래에 복지정책이 전혀 그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겉치레 식으로만 집행되어 왔다. 국가적 차원의 복지가 부재했던 한국에 IMF라는 초유의 경제위기가 들이닥치면서 사회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고, 현재에 와서는 친 자본중심적이고 대기업에 ‘올인’ 하는 수출중심 정책에 중소기업의 고용사정은 더욱 악화되어만 가고 있고, 그로 인하여 고용창출은 전혀 그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이 더욱 지속된다면, 한국 역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같은 경제적∙사회적 후퇴를 답습할지 모른다. 이러한 파국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복지국가로서의 길을 다시 한 번 재조명해야만 한다.
한국 사회에서의 포괄적 의미인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건강 정책과 보건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 된다. 물론 이 두 가지 요소 역시 건강의 증진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한 정책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사회적 건강을 결정하는 근본적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정책들의 효과는 근본적인 치료가 아닌 이미 그러한 상태에 놓인 사람들을 건강한 상태로 회복시키는 역할을 하는 데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는 보다 근본적 정책에 대해 고심하여야만 하고, 그 정책은 권력과 자본에 대한 분배에 관한 것이어야만 한다. 한국 사회가 가장 시급하게 떠안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여성 등에 관한 불평등이 바로 그것이다.
노동자에 대한 문제는 스웨덴의 ‘연대임금제 정책’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스웨덴의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의 15%, 임금은 약 75% 정도를 받는다. 이러한 스웨덴의 노동복지는 노사의 중앙 교섭을 통해 동일업종 내 저임금 기업의 임금 상승을 촉진하고, 고임금 기업의 임금 상승을 억제해 노동자 간 임금 격차를 줄임으로써 불평등을 해소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교섭을 통해 결정된 임금 상승률을 지키지 않을 경우 정부적 차원에서 기업에 제재를 가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에 와서는 이러한 임금제를 남성과 여성 사이에 적용시켜 남녀간 임금격차를 줄이는 ‘양성평등 임금제’로서의 진화를 꾀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사회 전체적 규모에서 자본가 측의 많은 반발을 불러올 것이고, 우리 사회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할 것이다. 한국의 실정에 맞게 개편하여 실시한다고 하여도 어떤 과도기 상태가 나타날지는 쉽게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현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국 사회가 맞이하게 될 불평등의 결과는 더욱 심각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또 한가지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정책으로 시장경제의 ‘승자’들이 ‘패자’들을 보상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제도를 설립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극단적인 대기업 의존도가 심할수록 보편적 복지를 강화시켜야만 한다. 가장 먼저 국가의 재정건전성을 확실히 강화시키고, 이렇게 강화된 재정건전성을 바탕으로 고소득층에게 상대적으로 강한 세금을 부과하고,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그에 맞는 보다 약한 세금을 부과해야만 한다. 세금을 통한 재원의 확보를 확실시 해야만 복지정책을 통해 이러한 재원의 재분배가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의 생산성 제고를 위해 법인세율과 같은 세금은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하고, 일하는 사람과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세금 공제에서 확실한 구분을 둠으로써 복지제도의 혜택으로만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제한해야만 한다. 이 때 보다 많은 세금이 부과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재정건전성과 복지제도를 통한 세금의 환원이 확실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국민에게 인식시키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기존까지 불법과 탈세의 온상으로 비추어지는 대기업들에게 확실한 체벌을 가하고, 보다 나은 보편적 복지정책을 선별하여 경제적 불평등을 감소시키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국가 차원에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2) [정보격차] 니그로폰테의 OLPC 프로젝트를 자유롭게 평가해보시오.
“’가장 소중한 자원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국가 원수들은 아이들이라고 대답하지 않습니다. 만약 당신이 ‘가장 소중한 자원은 아이들이 아니냐’ 라고 얘기한다면, 그제서야 당신의 말에 동의할 것입니다.” OLPC 프로젝트의 설립자이며 현재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가 TED 강연에서 했던 말이다. OLPC 프로젝트는 정치적 성향을 절대적으로 배제하고, 오로지 교육적인 목적을 위해 개발도상국, 제 3세계의 아이들에게 한 명의 아이당 하나의 노트북을 지급하자는 취지에서 설립된 비영리 단체이다. 아이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난 국가가 가난에 허덕이고 있기 때문에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제공되는 노트북은 현재까지 200만 대가 넘게 제공되었다. 실질적으로 공익을 위해 시행되고 있는 전 세계적인 프로젝트 중에서 미래, 후대를 위해서 가장 효과적이고 절실한 프로젝트라고 판단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도구를 사용하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학습하려 한다. 실제로 인간의 진화가 이러한 본능에 의해서 이루어져왔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OLPC 프로젝트는 이러한 인간의 본능에서 착안하여 시작되었다. 단돈 100달러의 노트북 외에 교육용 컨텐츠 등은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지만, 이 프로젝트의 놀라운 효과는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미 성인이 되어버린 어른들에게는 불가능하지만, 아이들의 경우 자가학습에 대해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PC의 사용법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고, 그 PC에 사용된 언어에 대한 교육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몇 달이 지난 뒤 아이들은 어느새 어느 정도의 조작이 가능하고, 야후에 들어가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간단하게나마 찾는 정도까지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게다가 또 하나의 놀라운 점은 아이들이 어른들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관념에 의하면, 교육은 위에서 아래로, 어른에게서 아이들에게로 끊임없이 대물림 되어왔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시행한 개발도상국 및 제 3세계에서는 이와 정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자가학습을 통해 어느 정도의 교육을 성취한 어린이들이 그들의 부모와 어른들에게 이 PC에 대한 사용법을 알려주게 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소수의 한정된 사람들만이 지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또 하나의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일반인도 이 PC를 구입함으로 인해 또 하나의 PC를 제 3세계 어린이들에게 기부할 수 있다. 비슷한 모토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발 브랜드가 된 ‘TOMS’와 같은 맥락이다. 내가 구입한 PC의 가격에는 다른 또 하나의 PC의 단가가 포함되어 있어 자동으로 다른 하나의 PC를 기부하게 되는 것이다. PC의 가격은 일반 보급형 PC에 비해 매우 낮기 때문에 교육용으로서 구입하기에는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통해 이 OLPC 프로젝트는 더욱 더 일반인들의 공감을 얻게 되었다.
반면에, 이러한 프로젝트를 아니꼽게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의도를 폄하하려는 것이다. 한 예로, 인텔은 2008년에 이 프로젝트에서 탈퇴하였다. 탈퇴의 명분은 그럴 듯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자면, 전 지구적으로 이미 PC의 판매 대상이 되는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하지만, 제 3세계와 개발도상국은 미개척 된 시장이다. 이 국가에 보급된 PC의 비율은 매우 열악하기 때문에 이러한 시장을 먼저 선점한다면 시장 점유율에서 엄청난 발전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서 인텔은 이 프로젝트를 탈퇴하고, 그들만의 제품을 통해 이 국가들에게 자신들의 브랜드를 무의식 중에 노출시키고 있다. 물론, 시장논리에 입각한다면 인텔의 경우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순수한 교육적 목표를 가지고 진행되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다른 불순한 여지가 개입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가난을 탈출하는 가장 궁극적인 방법은 가난의 원인에 대한 대책일 것이다. 그들 나라의 정부가 시행하는 여러 정책들이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교육’이다. 사회의 전반적인 지식 수준과 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생산성이 큰 활동을 해 나갈수록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은 점차 가시화 될 것이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제 3세계와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유니세프와 여러 종교단체 등 거대 규모의 봉사활동과 금전적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지원이 이루어져도 그들은 여전히 가난하다. 보다 근본적인 지원이 부족한 것이다. 이 OLPC 프로젝트와 같이 그들이 가난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근본적으로 ‘교육’에 대한 지원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지원을 통해 가난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가난을 인식하고 그것을 탈출하려 노력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 모두가 자신들의 이익 추구를 지양하고 인도적 차원에서의 지원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One Laptop Per Child(OLPC)는 미국의 비영리단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2006년 세계 경제 다보스 포럼에서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UNDP)이 OLPC와 함께 정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저개발 국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100 달러 저가 노트북 생산을 돕겠다고 발표하면서 큰 관심을 모았다.[1] OLPC 회장인 니그로폰테는 첫째, 어린이는 우리가 가지는 가장 소중한 자산이며, 둘째, 가난, 평화, 환경에 대한 해법은 교육에 있고, 셋째, 인터넷이라는 환경이 제공할 수 있는 자발적 학습의 중요성이라는 원칙을 내세웠다. 실제로 개발도상국 아이들에게 컴퓨터가 주어졌을 때 영어를 배우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를 피아노처럼 다루는 모습과, 전깃불도 없는 깜깜한 저녁 스카이프를 통해 온 가족이 환한 컴퓨터 불빛 아래 친지들과 대화하는 모습, 그리고 학생들에게 컴퓨터가 주어지자 방과 후 선생님들한테 학업 관련 질문 메일이 쇄도하여 어느 시간부터는 인터넷을 차단할 수 밖에 없었던 사례 등을 언급하며 이와 같은 어린이들의 인터넷을 통한 자발적 학습 열정과 가능성을 강조했다. OLPC의 보급형 노트북인 XO 시리즈는 인터넷이 가능한 단순한 노트북의 기능을 넘어 전자 책과 미니 텔레비전으로 활용가능 하도록 설계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100 노트북의 현실적인 가능성 여부를 의심했지만, 그는 정보격차 해소를 통한 전세계적 어린이 교육프로젝트로서의 OLPC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진행 과정 상 비용이나 시기 등과 관련하여 얼만큼의 불일치가 발생하더라도 계속 진행시켜나갈 것임을 주장했다.[2]
그로부터 4년이 흐른 2011년, OLPC 프로젝트는 현재 어떤 상황인가? 불행히도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처음의 열정처럼 일이 순조롭게 풀리지는 못한 것 같다. 무엇보다도 XO 랩탑의 가격은 작년 기준 여전히 $200을 웃돌고 있다. 또 경쟁 업체인 Intel의 Classmate PC에 밀리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OLPC의 XO보다 지역 생산 방식의 Intel 제품이 해당 지역의 교육 환경을 포함한 전반적인 발전에 있어 현실적으로 훨씬 이득적이라고 믿고 있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와 넷북의 인기로 OLPC 관련 예산안이 예년에 비해 절반도 채 안 되는 수준으로 삭감되었다. 프로젝트의 활성화를 위하여 2007년 소비자가 XO 랩탑을 2배의 가격으로 구입하면 자동으로 저개발 국가 어린이에게 한 대가 기부되는 ‘Give 1, Get 1’ 방식이 도입되었지만, 이듬 해부터는 전년에 비해 3%에도 못 미치는($2.5 million) 실적을 보였다.
사실 니그로폰테가 프로젝트 초기에 주장한 것처럼 OLPC가 갖는 인도주의적 의도만큼은 그 누구도 절대 비판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일찍이 2005년 UN 세계 정상회의에서부터 OLPC의 주된 타겟층이 되는 아프리카 국가들에 의해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제기되었었다. 그들은 현재 아프리카 여성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깨끗한 물과 학교이지, 새로운 경작 법을 배울 수 있는 인터넷 가능한 랩탑이 아니라며 우선순위 설정이 잘못되었다는 주장을 펼쳤다. 국가 수입이 매우 적은 대부분의 아프리카 나라들의 경우 이러한 ‘고 비용 저 효율’ 프로젝트는 오히려 어린이 건강 보건과 같은 중요한 부문의 예산을 삭감시키게 만들 수도 있다. 또한 ‘위에서부터 아래’의 보급 형식과 미국 중심적인 생산 체제의 OLPC를 가리켜 제국주의적이라 일컫는 비판도 있다. 한편 개발도상국 아이들의 교육 수준을 올리기 위해서는 오히려 도서관이나 학교 건축이 훨씬 저렴하면서도 효과적인 정책이라는 주장, 혹은 중고 컴퓨터를 재활용하여 구축한 컴퓨터 랩의 설치를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에게 그냥 랩탑을 주고는, 선생님들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법 연수와 같은 현실화 방안 없이 ‘사라져 버리는’(walking-away) 근본적인 실행 전략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하면서, OLPC 관계자들의 ‘구성주의적 교육’과 ‘디지털 유토피아니즘’을 비판했다.
세계 모든 어린이들이 노트북 한 대를 갖도록 저가 노트북을 생산 판매하겠다는 생각은, 컴퓨터의 생산 방식이나 비용, 저개발 국가의 교육 관련 예산 크기, 혹은 디지털 대 아날로그적 교육 효과 비교에 관해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처음에 무모하지만 멋있는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깨끗한 물도 양껏 못 마시는 상황에서 컴퓨터 보급을 통해 정보 격차를 해소하자는 것은 시기 상조의 정책이라는 비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가 아무리 저가로 판매된다고 해도 가난한 나라의 예산에서는 부담이 될지도 모르며 오히려 의식주와 같은 삶의 기본적인 부분에 대한 지원이 침범당 할 수도 있다. 또 인터넷이 능동적인 학습 태도에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그만큼이나 동시에 게임 중독과 같은 역효과를 보일 수도 있다. 인터넷 검색 기능을 통한 지식의 확장은 방대하지만 동시에 매우 얄팍하며, 많은 정보들 중에 정말로 필요하고 진실된 정보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기 일쑤다. 그리고 인터넷 보급을 원한다면 중고 PC를 모아 컴퓨터 랩을 설치하는 것도 설득력 있다고 생각되는데, 굳이 전세계의 어린이들이 똑 같은 노트북을 한대씩 가지도록 만드는 것은 오히려 ‘보여주기’용 정책 같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Drive-by 전략이라고 생각되는데, 의도가 제아무리 좋던 간에 이것이야말로 OLPC의 발목을 붙잡는 무책임한 실천 방식인 것 같다. 아무리 어린이들의 자발적 학습태도를 믿는다고 해도 단순히 컴퓨터를 가지게 된다고 해서 정보 격차가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이와 같은 컴퓨터의 보급이 매우 혁신적인 변화로 받아들여지는 나라의 경우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컴퓨터 기술 교육과 더불어 마을 전체적인 컴퓨터 교육도 함께 진행되는 등 좀더 적극적인 현실화 전략이 필요하며, 그것이 동반되지 않는 이상 그 효용성이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기 어려워 그저 국가 예산 낭비에 그칠 수 밖에 없다.
세계화 시대에서 정보 불평등이라는 중요한 문제 해결을 위해 각 나라들로부터 다양한 방법들이 제시되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매해 여름 해외 인터넷 청년 봉사단을 모집하여 국가간 정보격차 해소를 통한 디지털 한류 확산을 꾀하고 있다. OLPC 사례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은 열정과 좋은 의도라는 이름 뒤에 감추어진 서투른 접근을 넘어서 수혜자의 관점에서 현실성 있는 해결책인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사전에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런 변화 추세 속에서 고전적인 가족 개념은 붕괴되고, 따라서 더 이상 ‘가족적 복지’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따라서 ‘건강한 가족’을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도움이 필요하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는 제도의 한 예로서 호주제 폐지나, 이혼 전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는 숙려 제도 등은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정책들이다. 비록 자발적으로 형성된 집단인 가족에게 계약을 통해 발생한 국가 차원의 관리 책이 얼만큼의 효과를 보일지는 미지수지만, 적어도 캠페인이나 공익광고를 통해 다른 이해 집단과는 달리 함께 고민을 나누고 치유할 수 있는 ‘따뜻한’ 소통이 가능한 집단으로서의 가족의 기능을 강조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일만큼이나 가정 생활을 중요하게 인식하는 사회전반적 시각도 필요하다. 돈을 버는 것이 훌륭한 부모로서 역할의 전부가 아니고, 공부만 열심히 하는 것이 훌륭한 자식으로서의 역할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의사가 되고, 좋은 과학자가 되고, 좋은 정치인으로 성장하라고 말하기 전에 건강한 가정을 꾸릴 줄 아는 좋은 부모가 되는 것 역시 나머지 것들에 못지 않는 훌륭한 꿈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가장 어려운 꿈일지도 모르겠다.
1) 리처드 윌킨슨처럼 잠시 뒤르케임주의자가 되어 생각해보자. 지나친 불평등이 사회적 통합을 저해하고 아노미를 만연시키며 집단 간 갈등과 폭력을 조장하여 범죄, 자살, 묻지마폭력, 성피로, 우울증 등등을 증가시키고 사회전체적 수준에서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저하시킨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가정할 때, 우리 사회의 포괄적 의미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선 포괄적 의미의 건강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행복도와 기대수명으로 단순화한다. 둘 중 기대수명의 경우, 발표자료에도 나와있듯이 일정 수준의 소득정도를 초과하게 되면 소득과는 큰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는다. 즉, 일정 수준 이상일 경우, 경제적 발전과는 무관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태생적 한계와 더불어 의학기술의 한계로 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각 국가별 불평등 지수가 기대수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든데, 그 이유는 선진국의 국가별 기대수명 차이가 크지 않고, 그 외에도 식습관, 유전적 요소 등 우선적으로 고려될 수 있는 것이 더 많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의 상황에서 특정한 방법을 통해 기대수명을 증가시키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고 본다. 물론 앞으로도 기대수명의 증가가 이어지겠지만 그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의학기술의 발전과 식습관의 개선을 통해 주로 이뤄질 것이다. 따라서 포괄적 의미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은 바로 행복도다. 일련의 보고에서 드러났듯이 행복은 국가의 경제발전 정도와 연관성이 없다. 한 국가 내에서 조차 최저생계수준을 벗어났을 경우 소득 수준과 행복도는 비례하지 않는다. 다만, 사회적 불평등이 바로 이 행복도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사회전체적 수준의 건강을 해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행복도의 증진, 즉 사회적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바로 사회적 불평등을 감소시킬 뚜렷한 대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는 방안은 바로 기본소득이다.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는 사회구조가 반드시 마련되어야만 하는데 소득 불평등이 가장 큰 문제로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정 수준의 생계를 보장시켜줄 장치인 기본소득의 실현은 소득 불평등 문제를 극적으로 해결해줄 것이다. 기본소득이 실현되면 노동의 성격이 급진적으로 변화하게 되며, 따라서 소득 불평등을 감소시키기 위한 불필요하면서 사실상 강압적인 노동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기본소득을 통해 인민들은 외적 요인에 자신을 내맡기기 보다는 자기의식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물론 기본소득 도입으로 이 모든 것들이 해결되진 않겠지만, 이 사회의 주요모순을 일정 부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주변부 모순에 보다 관심을 기울이고 해결 노력을 고민할 수 있는 전기를 맞이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2) 니그로폰테의 OLPC 프로젝트를 자유롭게 평가해보시오.
니그로폰테의 OLPC 프로젝트는 현시점에서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현재 아프리카는 생명이 겪어야 할 매우 기초적인 어려움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부족한 식량으로 다수의 인민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고 오염된 수자원으로 인해 극심한 물부족을 겪고 있다. 콜레라, AIDS 등 전염병 등이 전대륙을 지배하다시피 창궐하고 있고 이런 환경 속에서 가히 모든 종족에 대한 모든 종족의 투쟁이라 불릴 만한, 끝없는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OLPC 프로젝트는 분명히 우선순위가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아프리카에 노트북을 보급할 것이 아니라 더 넓은 곳, 더 깊은 곳, 더 많은 곳에서 개간을, 수질정화를, 의료체계 구축을 진행해 나가야 한다. 이것을 해나가기에도 비용이 부족하고 일손이 모자라다.
OLPC 프로젝트는 고비용 프로젝트다. 그들의 프로젝트가 아프리카 전역에 영향을 주기란 어렵다. 그들의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가장 큰 수혜자는 아프리카가 아니라 바로 노트북 부품 생산업자가 될 것이다. 지금은 OLPC 프로젝트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을 더욱 저렴한 식량 생산, 더욱 저렴한 정화 기구, 더욱 저렴한 백신 생산에 투자해야 한다. 특정한 아프리카 아동이 교육 받은 권리를 보장해주기 이전에 모든 아프리카 인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OLPC 프로젝트는 MIT 미디어랩 명예회장인 니콜라스 니그로폰테(Nicholas Negroponte)를 중심으로 하여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로, One Laptop per Child의 약자에서 이름을 따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어린이들에게 한 개의 노트북을 공급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주 대상은 컴퓨터에 접하기가 힘든 후진국 어린이 이며, 주된 방법은 100달러 미만의 노트북을 후진국 어린이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적은 선진국 어린이와 후진국 어린이들간에 생기는 정보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왜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정보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지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자명하게 드러난다. 먼저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분하는 기준이 가난이라는 것에서 출발하면, 두 나라간의 차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후진국이 가난을 극복하는 것이다. 따라서, 후진국에서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여러 정책들을 시행해야 하는데, 그 중 가장 근본적이며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교육이다. 우리나라 역시 해방과 6.25 전쟁 이후 피폐해지고 극도로 가난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이 바로 교육이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1차적이고 단순한 노동에서 벗어나 보다 생산성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후진국의 상황에서는 이는 불가능하다. 대부분이 문맹이고, 이 상황을 스스로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밖에 없는 그러한 상황에 후진국 사람들이 놓여있다. 이러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니그로폰테를 중심으로 한 일련의 사람들과 단체가 OLPC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후진국의 아이들 특히 학교에 랩탑을 지급함으로써, 아이들에게 보다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교육에 있어서의 불평등을 해소하여 정보 격차를 줄일 수 있고, 점진적으로 모든 부분에서의 격차를 줄여나갈 수 있다.
한편, 이 프로젝트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들 또한 많았다. 가장 먼저 제시된 문제점은 극도로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조차 어렵다는 것이다. 너무나 가난한 아이들은 가정에서 일을 하느라 학교에 갈 수 조차 없기 때문에 랩탑을 제공해봐야 아무 쓸모 없다는 것이다. 또한, 지급된 랩탑으로 교육시킬 컨텐츠도 없다는 것이 제시된 다른 문제였다. 이 주장을 뒷받침 하는 근거는, 시장에 나와있는 교육용 소프트웨어들이 모두 유료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 속에서도 OLPC 프로젝트는 진행되었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문명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지역에 제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공된 지 한 달이 지나자 아이들이 인터넷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아이들은 영어를 가르쳐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구성되어 있는 각종 포털 사이트들을 이용해서 원하는 자료를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간단한 수준의 영어도 학습한 상태였다. 이는 기적 같은 결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OLPC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에 있어 밑받침을 하던 믿음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학습욕구에 대한 본능과, 아이들이 갖고 있는 자가교육의 힘을 믿고 있었다. 그들은 아이들은 동기만 부여되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사실 그들은 랩탑을 제공하기 전에 몇 가지의 실험을 통해서 아이들의 자가학습 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인간의 본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없다면, 이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통해서 실행된 것이었다. 즉, OLPC는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 있는 여부와 관계없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환경과 동기만 제공해 준다면, 스스로 공부하여 깨칠 수 있도록 나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착안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OLPC 프로젝트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많은 아이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으며 나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더 많은 아이들이 이 프로젝트를 통해 교육의 기회를 얻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거두고 있는 성공만으로도 눈부시지만, 이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효과는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사회 진출을 하게 될 때에 보다 극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무리 가난한 상태라 하더라도 교육만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그 나라는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그 교육이 결실을 맺어 나라와 사회가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의 평등을 위해 노력하고 성공을 거두고 있는 OLPC 프로젝트는 세계적 평등을 위해 매우 의미 있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뒤르케임 주의에 따르면 지나친 불평등은 사회적 통합을 저해하고 아노미를 만연시키며, 집단간의 갈등과 폭력을 조장하여 범죄, 자살, 묻지마 폭력, 만성피로, 우울증 등을 증가시킨다. 이를 통해서 사회 전체적인 수준에서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저하되게 된다. 이는 과거에 수행되었던 몇 가지 연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박성훈 외 3명에 의해서 진행되었던 “한국의 사회변동과 범죄 추세, 1966-2007” 이라는 연구에 따르면, 재산범죄는 경제의 규모가 커지고, 실업률 및 소득 불평등이 증가할수록 증가한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또한, 2009년 10월 11일 원혜영 민주당 의원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비정규직비율과 소득불평등지수, 자살률의 상관관계를 통계적으로 분석해보면 자살률과 비정규직비율의 상관계수가 0.909로 매우 상관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불평등으로 인해 사회 전체적으로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저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포괄적인 건강 수준을 증가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 다각도로 접근해 보도록 하겠다.
건강 불평등의 양상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 중 가장 먼저 들 것은 지역별로 나타나는 건강 정도의 차이이다. 한국건강형평성학회에서 조사한 “성연령 표준화 사망률”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시,군,구별 사망률 통계에서 서울의 서초, 강남, 송파 등의 부유층이 모여 사는 지역의 사망률은 다른 곳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서울 서초구는 2000년부터 2004년동안 인구 10만명당 1772명이 사망했지만, 경남 합천구는 서초구의 두 배가 넘는 3547명이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 밖에 다른 지역들의 자료를 모두 비교해보면, 서울일수록, 서울에서도 부유한 계층이 주로 사는 지역일수록 사망률이 낮게 나타나며, 지방이며 농촌에 가까울수록 사망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통계에 대해서 농촌에 노년층이 더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자연사 확률이 높아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통계 자체가 가중치를 통해 지역 평균 나이가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을 없앤 자료기 때문에, 전적으로 사망률이 지역별 특성 차이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역별 사망률의 격차는 학력과 소득 등 사회경제적 지위의 차이와 이로부터 기인한 건강행태의 차이로 인해서 발생한다. 보다 부유한 계층 사람들일수록 생활환경이 안전하고, 의료기관 또한 이용하기 편하기 때문에 사망률이 낮게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의료보험제도가 세계적으로 잘 되어있는 나라라곤 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재산 차이에 의한 사망률이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는 것은 충격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낙후된 지역에의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시장경제의 원리로 지배되는 상황에서는 해결되기가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이를 해결하려 노력해야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또 다른 건강 불평등이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비정규직 문제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의 상징이라고 할 정도로 각종 사회 문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게 되는데, 건강 불평등 문제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게 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해가 갈수록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이들의 고용안정이나 복지, 노동과정 속에서 안전과 건강상태에 대한 배려나 대책은 매우 미흡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이 일하는 곳은 소위 3D 업종이라고 불리는 힘들고 위험하며 더러워서 사람들이 꺼리는 직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여서 언제라도 해고하고 다른 노동자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보호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 게다가 이들은 정신적으로도 심각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다.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함께 같은 작업을 하면서도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고 겨울이 되어 일자리가 줄어들게 되면 쫓겨나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이는 그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와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가져다 주게 된다. 이들의 정신적 고통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차라리 신체적 고통을 택해 해고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노동 강도를 높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과정 속에서 다치게 되어 요양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해고당해 작업복귀를 하지 못하게 된다. 이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과도한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로 인한 신체적 고통 외에도 안정되지 못한 고용상태로 인해 정신적인 고통 또한 받게 되는 것이다.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고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깊은 병폐이다. 지금까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내고 여러 정책들이 시행되어 왔지만 뚜렷한 발전 양상이 드러나고 있지 않다. 때문에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동시에 비정규직 노동자 들의 건강에 대해서도 따로 대책을 마련해서 특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앞에서 본 것과 같이 우리 사회내의 건강 불평등은 상당히 심화된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뚜렷한 대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지금까지 취약계층에 대해 의료비 지원과 공공의료 강화 등의 정책을 시행하여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런 대책들이 건강 불평등 해소에 초점을 맞추고 이뤄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까지의 대책들을 보면 선언적인 수준에 불과해 계층간의 건강 수준의 차이를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와 실질적인 대안이 없다. 때문에 앞으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점에 대해 정부측에서 지각하고 올바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 중 가장 먼저 수행되어야 할 것은, 우리 사회의 건강 불평등에 대해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다. 영국의 블랙리포트 사례의 예처럼 정부 차원에서 건강 형평성에 대해 조사 및 연구를 하고 종합적인 보고서를 내놓는 것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정책목표를 세워야 한다. 이 때, 반드시 목표로 하는 수치가 드러나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정책은 명확한 수치가 드러나 있지 않은 추상적인 것에 불과해 정부의 의지부족이 극명히 드러나 있었다. 때문에 계량적인 수치를 나타내어 사회적으로 건강 형평성의 중요함을 부각시키고 정부의 노력을 보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계획 수립과 수행에 있어, 다각도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건강 불평등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고 심화된다. 소득 불평등, 교육 격차, 사회 안전망, 건강 보험의 사각 등의 여러 원인이 건강 불평등을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에 대해 대책을 세워야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복지부 뿐만 아니라 노동부, 교육부,경제부 등 여러 부처가 힘을 합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 리처드 윌킨슨처럼 잠시 뒤르케임주의자가 되어 생각해보자. 지나친 불평등이 사회적 통합을 저해하고 아노미를 만연시키며 집단 간 갈등과 폭력을 조장하여 범죄, 자살, 묻지마폭력, 만성피로, 우울증 등등을 증가시키고 사회전체적 수준에서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저하시킨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가정할 때, 우리 사회의 포괄적 의미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현재 우리 사회는 엄청난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늘었음은 물론, 많은 병에 대한 해결책이 존재하여 웬만한 병으로는 목숨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신체적인 건강에 관한 문제이다. 신체적인 건강은 이제 한계가 보일 정도로 많이 증진되어, 더 이상 증진되기가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신적 건강은 어떠한가? 요즘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이다. 의학 기술이 많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는 반대로 정신적인 건강은 점점 약화되는 현상을 보이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이 뒤르케임 주의자들의 말처럼 지나친 불평등이 원인이라고 한다면, 신체적, 정신적 건강 모두의 증진을 위해서는 불평등을 없애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이것은 비단 높은 계급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유명한 연예인들의 자살, 심지어는 대기업 오너나 그 가족들의 자살을 살펴보면 단지 자신의 재산 등 물질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의 눈이나 개인적인 사정 등이 자살의 원인이 된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통해서 이러한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현대 우리 사회는 매우 개인적인 사회로 변모해 가고 있다. 현대 사회는 피상적인 인간관계가 난무하여, 자신의 마음을 둘 곳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결국 정신적인 건강의 약화를 초래하고, 다양한 정신 질환을 초래하게 된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 사회인 현대 사회는 피상적인 인간관계 만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경쟁을 없애기 위해서는 계급간의 차이를 없애야 하는데 그는 결국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 것과 같다.
먼저 경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회 내의 계급 차를 없애야 한다. 계급이 있더라도 그 계급 간의 차별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그 계급 간의 차별이 사회 구성원의 정신적 건강을 악화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직장 내에서의 차별, 가족 내에서의 위치와 그 역할에 대한 스트레스 등이 정신건강을 해치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사회에서 이러한 것들을 없애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래서 나는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것보다도 그 불평등 내에서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해소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정신과 신체적 건강을 모두 증진시킬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정신적 건강은 신체적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신체적 건강은 건강 보험을 통해서 보장받고 있지만, 정신적 건강은 전혀 보장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 정신병원과 상담센터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매우 적은 편이다. 특히 정신병원의 경우 주위의 시선이 좋지 않기 때문에 쉽사리 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정부에서 건강 검진 등을 할 때, 정신 건강 검진 역시 수행하도록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개인의 정신 건강을 측정한 후 그것에 맞추어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치료를 해준다면, 정신적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다.
정신적 건강 침해의 근본적인 원인을 없애려면, 앞서 말했듯 사회의 차별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외국인 노동자, 여성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의 차별은 그들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그것이 정신적 건강의 약화 및 자살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를 해소하는 데는 정부의 역할이 크겠지만, 개인들의 의식 역시 커다란 부분을 차지 할 것이다. 그들이 자신보다 낮은 직위에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 차별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차별을 하고 그들은 차별을 겪게 된다. 그러한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는 것은 직접적인 교육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만으로는 의식을 바꾸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정부가 그들을 돌보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차별이 존재하는 것은 그들이 사회적으로 약자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약자를 보호해 주기 위한 정책을 만들면, 그들의 삶은 좀더 나아질 것이고 이것은 그들의 정신적 건강의 향상에 기여할 것이다.
사회적인 보장제도 역시 하나의 해결방안이 될 것 같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돈과 관련된 문제 때문에 자살을 한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들이 다시 사회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 보장 제도 등을 통해서 자살을 막고, 사람들의 정신 건강을 증진 시킬 수 있을 것이다.
2) 니그로폰테의 OLPC 프로젝트를 자유롭게 평가해보시오
OLPC 프로젝트는 ‘어린이들에게 노트북을’이라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이들은 개발 도상국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노트북을 지급하며, 그 노트북은 OLPC라고 불린다. 이 OLPC는 개발 도상국의 환경을 생각하여, 자가 발전 형태를 취하는 등 그들에게 맞춘 PC를 만들어서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는 개발 도상국의 열악한 환경 개선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들은 PC나 인터넷 같은 문물을 접하기가 힘들고, 그들 스스로 그것을 원한다고 해도 자금이나 기술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는 정보의 불평등을 야기하게 된다. 이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선진국의 원조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고, 그를 위해서는 이러한 프로젝트가 많이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OLPC같은 것들이 주어진다고 해도, 그들에게 주어진 문물은 선진국의 문물에 비하면 아직 아기 걸음마 수준의 문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러한 노력들이 선진국과 개발 도상국의 정보 격차를 얼마나 해결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물론 이러한 노력들이 전혀 소용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정보 격차의 해소를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OLPC는 어린이들에게 제공되는 PC이기 때문에 어린이들의 능력을 발휘하는데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이러한 노력들이 늘어난다면, 개발도상국의 어린이들은 다양한 문물을 접할 기회가 늘어나게 될 것이고 이는 결국 그들의 능력의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해서 개발 도상국의 기술 향상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이 단기간에 좋은 결과를 나을 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선진국의 문물은 계속 발전하기 때문에 앞서 말했듯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1) [건강격차] 리처드 윌킨슨처럼 잠시 뒤르케임주의자가 되어 생각해보자. 지나친 불평등이 사회적 통합을 저해하고 아노미를 만연시키며 집단 간 갈등과 폭력을 조장하여 범죄, 자살, 묻지마폭력, 만성피로, 우울증 등등을 증가시키고 사회전체적 수준에서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저하시킨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가정할 때, 우리 사회의 포괄적 의미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어떠한 사회정책에 우선적 초점을 두어야 할까?
최근 신문을 펼쳐보면 누가 자살했다, 누가 묻지마 범죄를 저질렀다와 같이 상당히 안 좋은 소식을 전하는 기사들이 대다수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사회전체적 수준서의 정신적 건강이 상당히 저하되어 있다는 것이다. 뒤르케임 주의자의 입장에서는 어떠한 불평등이 이토록 사회의 건강이 나빠지도록 원인을 제공하였는지를 탐구 할 것이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성별에 따른 불평등과 인맥에 따른 불평등, 그리고 사회적 지위에 따른 불평등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성별에 따른 불평등을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특히나 남녀간의 성차별이 심한 나라이다. 예를 들어서 신입사원을 뽑을 때, 여성이 관리직으로 뽑히는 일은 거의 없다. 외국의 경우 남녀 무관하게 가장 적합한 능력을 가진 사원을 적합한 직위에 배치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남성을 여성에 비해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평소의 차림새도 여성은 반드시 깔끔하고 도도해야한다는 압박을 주는 반면, 남성들은 자유롭게 하고 다녀도 크게 참견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성별에 따른 불평등으로 인해서 상대적으로 열적인 여성들은 직장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평소에도 여성은 어떠해야한다라는 구박에 시달려 극심한 우울증을 겪는 경우가 많다.
다음으로, 인맥에 대한 불평등이다. 소위 인맥이란 학벌, 연고지 등에 의해서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건전한 형성 과정이며,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맥의 차이는 우리나라에서는 굉장히 크다. 예를 들어서 서울대 동문과 지방에 있는 유명하지 않은 A대학 동문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 동문에 속한 특정 구성원이 A대학 동문에 속한 그보다 뛰어난 구성원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는다. 즉, 어느 개인이 속한 동문, 연고지 등이 개인의 능력보다 더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맥에 의한 불평등으로 인해서 개인의 능력을 발휘를 못하게 되고, 그러한 개인은 인맥의 벽에 부딪혀 발버둥을 치다가 마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지위에 따른 불평등이다. 이는 인맥에 대한 불평등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좀 더 넓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연예인으로 스카웃이 되었다고 하자. 우리나라는 연예인이나 가수 등등이 공인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넓게 형성되어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공인’으로 통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자신을 차별화 하면서, ‘공인’이 되지 못한 시민들은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심리적인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인’이 된 사람들은 자신들이 노력하는 것에 비해서 덜 노력하면서도 돈은 더 많이 번다는 생각을 갖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최근 어떤 TV 프로그램의 촬영 도중 시민들이 다가와서 주변에서 구경을 하자, 마치 시민들은 오면 안되는 곳이라는 듯이 욕설을 난무하며 쫓아내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앞에서 언급한 세 가지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사회정책으로써는 국민의 인식을 바꾸는 대대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우선 남녀평등의 경우에도 우리나라에 오래전부터 뿌리 깊게 내려앉아있는 여성 차별의 인식을 바꿔야하고, 인맥에 대한 불평등도 자신과 공통점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그들의 능력을 인정하는 태도를 가져야한다. 마지막으로 언급한 사회적 지위에 대한 불평등도 각자 자신이 노력해서 이룬 사회적 지위라는 것에 대한 서로의 인정이 필요하고, 비록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졌더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사회전체적 수준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소득의 차이 해소, 빈곤층의 구제와 같은 정책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서로에 대한 존중 및 자신의 위치에 대해 겸손함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인식 계몽 정책이 우선적으로 초점이 맞춰줘야한다고 생각한다.
1) 리처드 윌킨슨처럼 잠시 뒤르케임주의자가 되어 생각해보자. 지나친 불평등이 사회적 통합을 저해하고 아노미를 만연시키며 집단 간 갈등과 폭력을 조장하여 범죄, 자살, 묻지마폭력, 만성피로, 우울증 등등을 증가시키고 사회전체적 수준에서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저하시킨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가정할 때, 우리 사회의 포괄적 의미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현재 우리 나라에서 특별한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죽거나 일본의 후쿠시마나 중국의 쓰촨성에서 일어났던 대지진, 미국, 특히 중부 주에서 주로 발생하는 토네이도와 같은 자연 재해로 대규모의 사람이 죽는 경우도 드물다. 또한 기름진 육류가 음식의 주를 이루는 서구 세계와 달리 보다 건강한, 소위 웰빙에 가까운 식습관을 유지하고 있어 평균 수명 또한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서 부족하지 않고 오히려 앞서가는 수준이다. 하지만 현재 10대와 30대 사망 원인 1위, 20대 사망 원인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망원인이 과연 무엇일까? 바로 자살이다. 우리 사회에서 자살 소식은 그다지 어렵게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자살은 비단 하위 계층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물론 지나친 생활고에 대한 비관 자살을 하는 하위 계층에 대한 기사도 있지만 소위 경제적으로 상위에 있는 상위 계층들의 자살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곳이 한국 사회이다. 도대체 왜 이런 상황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렇게 자살로 인한 사망이 만연하다는 것은 한국 사람들이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않다기 보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높은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만들 것인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만들 것인지를 고민해보아야 한다.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자살을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낄 때, 자살 충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10대, 20대, 30대에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살고 있는 10대, 20대, 30대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을 행복하지 않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경쟁이다.
한국 사회는 경쟁이라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각 방송사들의 예능 프로그램들도 경쟁 구도를 통해 순위를 정해 누군가를 탈락 시키거나 1등한 사람을 뽑는 경연, 오디션 등의 포맷을 가진 프로그램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이러한 현상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연예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10대부터 경쟁이란 세계에 끼어들고 있다. 지금은 초등학교에서부터 시험이라는 한 가지 테스트 방법을 통해서 점수가 결정되고 점수에 의해 등수가 결정되고 그 등수에 따라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제한 생기는 것을 경험에 왔다. 그 과정을 장장 초등하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걸치는 청소년기의 긴 시간 동안 계속해서 경험하고 최종 관문인 수능시험을 통해서 대학이란 새로운 경쟁 시스템에 합류한다. 그나마 대학에서는 이러한 순위 경쟁에서 고등하교 수능 시험에서의 경쟁이나 그 이후 20대 중후반부터 30대까지 경험하게 되는 취업 경쟁 보다는 덜한 것 같다.(개인적으로 이것이 20대에서 자살이 사망 원인이 1위가 아닌 2위인 것에 일조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다시 취업이라는 경쟁체제에 돌입하고 취업을 하고 나서는 다시 회사 내에서 승진을 위한 경쟁체제에 돌입한다. 한마디로 한국 사회에서의 10~30대들은 계속된 경쟁체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경쟁이란 것은 분명히 좋은 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좋지 못한 점 역시 가지고 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이러한 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가수들은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가수들이다. 이러한 가수들에게 경쟁이라는 포맷을 도입함으로써 그들이 지금껏 보여주었던 것 이상을 뽑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에 반하는 부작용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번에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가수들의 건강에 대한 기사들이 가끔 올라온다. 주로 이러한 경연에서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건강 악화의 주원인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경쟁이란 것은 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데 필요한 효율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그 경쟁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준다.
더군다나 한국 사회에서의 경쟁은 서로에게 배타적인 경쟁에 치우쳐져 있다. 지난번 교육과정 개편으로 인해 내신이 중요해졌을 때의 일이다. 한 학생이 같은 반 학생의 시험 공부를 방해하기 위해 그 학생의 책을 찢어버린다던가 하는 해코지를 했던 일이 있었다. 이렇게 현재 한국의 경쟁은 경쟁상대를 누르고 이긴 승자가 경쟁에서 승리한 혜택을 모조리 가져가는 구조가 되어 있다. 이러한 배타적인 경쟁체제 하에서는 경쟁에서 패한 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해를 입게 된다. 만약 능력이 10인 사람과 9인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배타적인 경쟁체제에서는 10인 사람만이 살아남고 9인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곳조차 박탈당하게 된다. 또한 서로 배타적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정보 교환이 없어 서로가 발전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아 그 발전 속도 또한 늦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 경쟁체제게 서로 협력하면서 경쟁하는 체제라면 그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능력을 발휘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회 전체적으로 발전하는 속도 또한 빨라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물론 불평등이란 것도 이러한 심리적인 건강에 영향을 주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더 큰 문제가 이러한 서로에 대한 배타적인 경쟁 체제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경쟁이 불필요한 것은 결코 아니다. 경쟁이 없는 구조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나태해지는 결과를 나을 수 있다. 하지만 서로에게 배타적인 경쟁은 사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해가 될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쟁구조를 배타적인 경쟁구조에서 협력적인 경쟁구조로 바꾸는 것이 한국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심리적인 건강을 증진 시키는데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지나친 이상론에 불과한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현재 한국 사회는 누군가를 눌러야 자신이 살아남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2) 니그로폰테의 OLPC 프로젝트를 자유롭게 평가해보시오.
OLPC는 One Laptop Per Child의 약자로 MIT 미디어 연구소의 교수진이 세운 비영리단체로 개발도상국에 살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100의 저가형 노트북을 개발하여 그들을 세계와의 정보 불평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OLPC는 ‘1. 어린이 소유여야 한다. 2. 어린이가 쓰기 쉬워야 한다. 3. 충분히 보급되어야 한다. 4.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5. 자유롭고 공개된 소스여야 한다.’ 라는 5개의 핵심원칙을 가지고 2005년 스위스 다보스 세계 경제 포럼에서 발표되었고, 현재 AMD, 브라이트스타 공사, 이베이, 구글, 마벨, 뉴스 코퍼레이션, SES S.A., 노텔 네트워크, 레드햇 등의 회사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OLPC는 일종의 적정기술이 적용된 하나의 예이다. 현재 기술의 발달은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계속해서 업그레이드 되어가는 스마트폰들을 보면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프리카와 같은 곳에서 그런 기술들은 전혀 쓸모가 없다. 그들을 위한 기술이 적정기술이다. 적정기술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여러 물건들의 업그레이드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물건의 성능이 최고가 아니라고 할 지라도 보다 경제적으로 저렴한 방법으로 특정 대상에게 필요한 기능만 갖는 물건을 생산하는 기술이다. 이러한 적정기술의 대표적 사례로는 라이프 스트로우(Life Straw)가 있다. 현재 정수기들은 굳이 없어도 되지만 보다 좋은 물을 마시기 위한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정수기에서 얼음이 나온다거나, 정수된 물에 여러 비타민 같은 영양소가 포함된다거나 하는 기술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라이프 스트로우는 다르다. 라이프 스트로우는 휴대할 수 있는 일종의 개인용 정수기로 땅에 고여있는 더러운 물이라고 할지라도 현존하는 세균의 99%까지 걸러 마실 수 있는 물로 정수를 해주는 빨대처럼 생긴 정수기이다. 현재 아프리카에서는 깨끗한 물을 먹지 못해 해마다 6천명의 사람이 죽어가는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정기술의 적용 예라고 할 수 있다.
OLPC에서 개발도상국의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노트북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현재 컴퓨터 기술은 점점 더 발전하여 개인용 PC들은 점점 더 하이 스펙(High Spec)만을 추구하고 있다. 성능이 점점 더 높아지면 가격도 그만큼 올라가게 되고 PC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전력량 등도 그만큼 많이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OLPC에서 제공하는 노트북은 다르다. 지난번 학교에서 한 HIT 포럼에서 OLPC 한국 대표 이재철 씨의 말에 따르면 OLPC에서 제공하는 노트북은 태양열로 충전한 배터리로 사용이 가능할 정도로 전력 사용량을 크게 소비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인터넷에 연결된 메인 서버에 무선으로 접속할 수 있을 정도의 성능을 갖춘 노트북이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실제 이런 개발도상국에 살고 있는 학생들과 우리 나라 학생들만 비교해봐도 둘 사이에는 엄청난 정보 불평등이 존재한다. 그 차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써 OLPC는 적정기술이 아주 잘 적용된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프로젝트가 계속해서 순수성을 지켜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저가형 노트북을 개발한다고 하더라도 이 노트북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데는 엄청난 자본이 소모된다. 따라서 이러한 자본의 지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프로젝트는 AMD, 브라이트스타 공사, 이베이, 구글, 마벨, 뉴스 코퍼레이션, SES S.A., 노텔 네트워크, 레드햇 등 많은 회사에서 후원하고 있는 프로젝트이다. 이 회사들이 이 프로젝트를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들이 벌어들인 수익의 사회의 환원을 전세계로 확장하는 방법으로써 후원하는 것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받아 들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과거 제국주의 열강들이 자신들의 식민지를 자신들의 상품을 팔아먹을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선심을 쓰듯이 그 지역에 투자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OLPC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업이 OLPC 프로젝트를 통해 정보에 접하는 것이 익숙해진 이 학생들을 미래의 고객으로 생각하여 미리 투자하는 생각으로 이 프로젝트를 지원한다면 머지 않아 서로 이익다툼이 생기는 듯 여러 부작용이 생길 것이다. 따라서 이를 막는 것이 OLPC 프로젝트가 이 프로젝트가 필요 없어지는 그 날까지 유지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1) 리처드 윌킨슨처럼 잠시 뒤르케임주의자가 되어 생각해보자. 지나친 불평등이 사회적 통합을 저해하고 아노미를 만연시키며 집단 간 갈등과 폭력을 조장하여 범죄, 자살, 묻지마폭력, 만성피로, 우울증 등등을 증가시키고 사회전체적 수준에서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저하시킨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가정할 때, 우리 사회의 포괄적 의미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인간 사회에서 어떤 사회 구조든 간에 불평등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선사시대 때는 육체적 우월함과 무리의 수에 의해 불평등에 조장되었고, 중세에는 토지나 장원의 소유에 의해, 현재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자본의 소유로 불평등이 조장된다. 마지막 남은 착취구조인 자본가-노동가 간의 생산관계에서의 착취가 사라지고 모든 사회구성요소들이 노동자들에 의해 소유된다고 하는 공산주의 체제에서 조차 해당 시스템을 이끌어나갈 정치적 지도자와 노동자들 간의 불평등이 있다. 불평등은 인간이 군집을 지어 살면서, 이끄는 자가 생기고 이끌리는 자가 생기며 저절로 형성되는 불가항력적 현상이다. 하지만 불가항력적이라고 해서 극소화시킬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뒤르케임주의자 입장에서 큰 불평등은 사회적 통합적 저해하고 아노미를 만연시키며 집단 간 갈등과 각종 범죄,정신 질환 등을 증가시키고, 사회 수준을 저하시킨다. 이를 인정한다고 가정할 때, 여기 사회 불평등을 극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볼 이유가 있다. 불평등의 극소화는 결국 우리 사회의 포괄적 의미의 건강을 증진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필요한 것은 어떻게 불평등을 극소화 시킬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논의이다.
불평등을 줄이는데 가장 자주 언급되는 정책은 직접적 재분배이다. 직접적 재분배란 세금을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에게 나누는 것을 말한다. 예시로는 차상위계층에 대한 최저소득 지원 보조금, 식료품 지원 등이 여기에 속한다. 재분배정책은 그 효과가 빨리 나타나며, 가시적이라 호응이 크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사이클을 구축하거나 문제의 근원 자체를 해결한다기 보단 잠시의 효용만을 생성해내고 사라진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직접적 재분배 정책은 수혜자들에게 단기적이라도 일상을 살아가는데 여유를 주어 다른 지속가능한 정책들과 병행하면 큰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불평등을 줄이는 데 있어 장기적인 효과가 적다고 해서 직접적 재분배 정책을 줄이는 것 보단, 다른 지속가능 정책을 시행하면서 같이 시행하면 그 효과가 뚜렷이 드러날 것이다.
교육에 대한 투자는 대표적인 지속가능한 정책 중 하나이다. 교육은 학생들이 사회에서 좀 더 생산적인 존재로 키우거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성찰하고 발전할 수 있게 한다. 이로 인해 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경제주체로 거듭나게 된다. 교육은 한 인간의 성장에 대한 것만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기회의 평등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이미 개인에게 주어진 부존자원이 많은 상황에서는 다르겠지만, 교육은 개개인의 능력을 개개인에게 주어진 부존자원과는 독립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이미 개개인에게 주어진 부존자원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면 불평등을 아주 크게 줄일 수는 없겠지만, 교육은 부존자원이 없는 개인에게도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어떻게든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유도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 사회에서는 또 부존자원에 의한 교육의 질의 차가 생기기 때문에 문제가 되기도 하겠지만,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공립교육도 지역과 부에 상관없이 사립교육과 같은 수준이 될 수 있도록 한다면, 불평등은 크게 근소화 될 수 있을 것이다.
직업교육 역시 마찬가지의 맥락이다. 위의 단락에서 언급된 교육이 학생들이 어려서부터 받는 초등교육부터 대학교육까지를 지칭한다면, 이번의 교육은 성인까지도 포괄적으로 포함하는 직업교육이다. 기술이 없는 사람의 경우 교육을 받지 않는다면 육체를 통한 단순노동이나 저부가가치 노동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직업교육은 그러한 개인이 하나의 전문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는 인력으로 거듭나 사회의 생산성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될 것이고, 그 개인은 이전에 하던 저부가가치 노동에서 고부가가치 노동으로 역할을 전환하게 되면서 더 많은 봉급과 대우를 받게 되어 불평등 요소가 줄게 될 것이다.
불평등을 줄이는 것은 사회를 전반적으로 안정케 하여 인간 모두가 어우러지고 화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사회통합을 유도해 사회가 유기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생산해 내게 하는데 일조를 할 수 있다. 이렇게 불평등의 극소화는 매우 중요한데, 이 글에서는 불평등을 줄이는데 세가지 안이 제안되었다. 하나는 직접적 분배, 다른 두 가지는 지속가능한 방안에 대한 예시였다.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 내는 데는 다른 두 가지 방법인 지속가능한 방안이 더 적합할 것이다. 효과가 가시화 되는데 시간은 오래 걸리나, 나쁜 결과를 생성하던 원인을 찾아내고 그 원인을 상쇄하고 나아가 좋은 결과를 생산하는 소스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많은 지속가능한 방안들이 제안되고, 현실화 되어 직접적 분배정책과 병행된다면, 불평등이 해소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2) 니그로폰테의 OLPC 프로젝트를 자유롭게 평가해보시오.
MIT 미디어랩의 설립자인 니그로폰테는 2005년 1월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OLPC(One Laptop per Child)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OLPC라는 비영리 단체를 세우고 비영리 단체로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의 아이들에게 저렴한 컴퓨터를 보급하는 것이 바로 프로젝트의 개요이다. 이를 위해 개발한 모델명 XO-1은 저사양이긴 하지만, 100달러의 생산단가를 가진다. 고장 났을 경우를 대비해 고치기 쉽게 디자인 되었으며, 전력이 없는 곳에서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인력 발전기가 달려있다. 또한 위성으로 인터넷을 공급하기 때문에 어디서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니그로폰테의 OLPC 프로젝트는 문명이나 지식과 단절되었던 빈민국의 아이들을 정보의 세계와 이어지는 역할을 해왔으며 지금도 진행 중이다.
위의 글에서도 밝혔듯, 교육에 대한 투자는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좋은 방안이다. 이런 면에서 니그로폰테의 OLPC 프로젝트는 아주 긍정적이다. 많은 국제단체들이 수행하는 직접적 지원들과 다르게 아이들이 자라서 무언가 생산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게 지속가능성에 대한 투자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오랜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OLPC는 장기적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빛을 발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해당 교육과 관련 정책의 수혜를 입은 아이들이 자라 사회에 진출한 후 실제 효과를 보이는데 오랜 시간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육이 순기능을 할 수 있는 건 교육을 받은 자들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추어졌을 때의 얘기다. 여기서 말하는 인프라라는 것은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배경이나 부존자원에 상관없이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구조이다. 대부분의 빈민국은 기업들이 제대로 자생할 수 있는 경제적 구조는 물론 능력 있는 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국가기관 조차도 불안정하다. OLPC의 혜택을 받는 아이들 중에는 어느 분야로든 간에 성공하는 케이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희망과 다르게, 기존의 삶과 같은 삶을 살다 늙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는 OLPC 프로젝트가 효과가 없을 것이니 그만두라는 주장이 아니다. OLPC 프로젝트는 지금과 같이 계속 지원되어야 한다. 다만 각 빈민국들의sovereign의 간간히 침해하며 인프라 구축해 힘을 쓰는 노력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