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헌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총장의 미국 성공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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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16, 2011, 5:20:09 AM9/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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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총장의 미국 성공 스토리 ①

지난 8월 15일 늦은 오후,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이 자리한 맨해튼 51번가에는 기대에 부푼 표정의 사람들이 뮤직홀 출입구마
다 긴 행렬을 이루며 늘어서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한국인, 일본인의 모습도 눈에 띄었지만, 대부분이 품위 있
는 정장차림으로 한껏 멋을 낸 미국인들이었다.
뮤직홀 외관, 행사를 알리는 네온사인에는 ‘Brain Art Festival’과 ‘Ilchi Lee’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빛나
고 있었다. Ilchi Lee는 이승헌 국제뇌교육종합원대학교 총장의 영문 필명이다.
그날 저녁 6시, 이승헌 총장이 직접 기획하고 연출한 브레인아트페스티벌이라는 독특한 이벤트가 세계 최대의 실내극장 라디오시티 뮤
직홀의 웅장한 무대에 올랐다. 이번 페스티벌은 미국 전역에서 4천 2백 명, 한국과 일본에서 8백 명, 총 5천여 명이 관객이
참석한 대규모 이벤트였다.
미국 여배우 출신 기업인인 웬디 홀의 사회로 진행된 이 행사는 국제뇌교육협회와 한국뇌과학연구원이 공동 주최했으며, 이승헌 총장
외에도 세계적인 드럼 연주자 로빈 디마지오, 일본의 성악가수 노마 나오코, 풀 사이먼 밴드 등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예술인들
이 대거 참여했다.
이날 행사의 백미는 이승헌 총장의 강연 및 공연.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대부로 불리는 토미 툰의 소개로 무대에 오른 이승헌
총장은 브레인아트 렉쳐쇼라는 독특한 스타일의 강연으로 라디오 시티 뮤직홀을 가득 메운 5천명의 관중을 매료시켰다.
그는 강연 중간 중간, 인디언 피리, 오카리나, 북, 인디언 타악기인 타포를 연주하는가 하면, 전통무예와 기를 타고 추는 춤인
단무를 선보이는 등, 예술 장르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며 라디오 시티 뮤직홀을 뜨겁게 달궜다.
브레인 아트는 이총장이 창안한 새로운 개념으로, 이 개념에 녹아 있는 그의 아이디어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뇌를 알면 인생은 예
술이 된다.”이다. 1년 전부터 브레인 아트 페스티벌을 구상해 온 이승헌 총장은 이 날 무대에서 “어린시절 ADHD(집중력 장
애)로 고생했던 내가 뇌를 알게 되면서 삶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듯이, 누구나 뇌를 알고 잘 활용
하면 자신의 인생을 예술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총장의 1시간 반에 걸친 강연의 절정은 그와 관객이 혼연일체가 된 뇌파진동 체험시간이었다. 뇌파진동은 이승헌 총장이 개발한 3
백여 가지가 넘는 뇌교육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효과가 있는 수련법이다. 그의 저서 [뇌파진동]은 한국어, 영
어, 일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으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서 읽혀지고 있다.
이번 브레인 아트 페스티벌은 이승헌 총장에게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총장은 홍익정신과 뇌교육, 브레인아트를 알리기 위해서 뉴
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세계 최고가 아니면 오를 수 없다는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그가 지난 30년 동
안, 단학에서 뇌호흡으로, 다시 학문으로 정립한 뇌교육을, 이제 한 차원 더 승화된 ‘예술’의 형태로 세계인에게 알린 것이다.
무엇보다도 세계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뇌교육의 철학적 바탕인 한국의 ‘홍익정신’을 알렸다는 것은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서 큰 기쁨과 보람이 아닐 수 없었다.
이승헌 총장과 뉴욕시와의 첫 인연은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가 15년 전, 미국 개척의 큰 꿈을 품고 뉴욕 JFK 공항
에 내렸을 때 그를 반긴 건 다름 아닌 소매치기들이었다. 이총장은 5천불의 정착금과 옷이 든 가방을 눈 깜짝할 사이에 도난당하
고 잠시 아연실색했으나, 곧바로 다른 “선택”을 했다.
그는 자신이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 아니라, 뉴욕에 5천불을 기부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10년 후에는 오늘 기부한 것의
1000배를 이곳 미국에서 얻으리라고 결심했다. 그는 결국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 성공의 한 상징이 라디오 시티 뮤직홀에서 열
린 브레인 아트 페스티벌이다.
이승헌 총장의 미국 성공기는 “선택하면 이루어진다.”는 그의 뇌운영 원리를 자신의 삶을 통해 스스로 증명해낸 이야기이기도 하
다. 앞으로 16회에 걸쳐 이총장의 감동과 도전의 미국 개척 성공기로 독자들을 찾아뵙겠다.

이승헌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총장의 미국 성공 스토리 ②

미국에서 영글어가는 홍익의 꿈 단요가건강센터, 미국의 건강문화기업으로 우뚝 서다 1995년 이승헌총장은 당시 단월드의 전신인 단
학선원의 경영 일체를 제자들에게 넘기고 거의 혼자나 다름없는 몸으로 미국으로 떠나왔다. 그에게는 미국에서 이루어야 할 꿈이 있었
다. 아니, 미국에서 이루어야 할 꿈이라기보다, 애초부터 하나의 큰 꿈이 있었는데, 그 꿈의 실현을 위한 새로운 시작이 미국에
서 이루어져야 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의 꿈은 ‘온 인류가 건강과 행복과 평화를 누리며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이화
세계를 역사책 속의 죽은 언어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에서 펄펄 살아 뛰는 삶의 철학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가 진지하게 이런 꿈을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에 따라 반응이 천차만별이다. 마치 미인대회 참가자들이 한결같이 “저의 소망은 인
류 평화예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의례적인 홍보용 멘트려니 생각하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거
참, 꿈 한번 거창하십니다.’ 하며 황당하다는 듯이 웃어넘기는 사람도 있다. 아주 드문 수의 사람들이 그와 똑같은 진지함으로 그
의 말에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웃을지언정, 그런 세상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이 세상에 누가 있으랴. 정작 이상한 것은, 그렇게 모두가 바라면서도, 그
것을 개인의 꿈으로 품는 사람이 드물고, 나아가 실행해 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는 사실이다. 이승헌 총장은 많은
이들이 마음 속으로만 바라는 그런 세상을 전세계인과 함께 만들어 보겠다는 홍익의 꿈을 안고 미국에 왔다.
당시 미국에는 몇 해 전에 개설한 단센터가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필라델피아의 한 교포 사업가와의 인연으로 1991년에
개설된 센터였다. 한국 방문중에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그 교포사업가를 친구가 다짜고짜로 끌고 간 곳이 단학선원이었다. 단학선
원에서 딱 한 시간 수련을 하고, 이총장의 저서를 있는 대로 사서는 다음날 필라델피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그는, 이총장의 철학
에 반해 이총장과 그의 제자 한 명을 필라델피아로 초청했다.
그 교포사업가의 후원으로 강연회에 이어 센터까지 개설한 이총장은 함께 간 사범에게 미국 최초의 단센터를 맡기고 다시 한국으로 돌
아왔다. 그 후 필라델피아에서 LA로, 뉴저지 한인타운으로 자리를 옮긴 센터는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힘겹게 운영되
고 있었다.
이총장이 직접 미국개척의 길을 나섰던1995년 여름, 당시 한국에는 이미 50여 개의 단학선원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때까지
이루어놓은 기반에 만족하며, 한국에서 안정되고 편안하게 살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새로운 도전의 길
을 선택했다. 돌아보면 그의 인생은 길이 없는 길을 만들어온 여정이었다. 1980년 이승헌 총장은 안양의 충현탑 공원에서 중풍환
자 한 사람에게 무료로 건강법을 가르치면서 단학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으며, 5년 만인 1985년, 서울 신사동에 첫 단학선원
을 열었다.
그 후 1년 만에 12개의 센터가 전국 주요도시에 개설되었으며,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과 선경(SK)의 고 최종현 회장이 이총
장에게 개인지도를 받은 것을 계기로, 기업교육과 공무원 교육, 군교육에 단학수련이 도입되기에 이르렀다. 혼신의 힘을 쏟아 부었
던 15년의 세월이 그에게 ‘성공’의 월계관을 막 씌워주려 하던 즈음, 그는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또 다시 길 없는 길을 열겠
다고 태평양을 건넜다.
그가 첫 발을 내디딘 미국 땅, JFK 공항에서 정착금 5천불과 옷가지가 들어 있는 가방을 통째로 소매치기 당한 일은, 어쩌면
언제나 무에서 새로운 창조를 일구어냈던 그의 인생을 상징하는지도 모른다.
이총장은 회원의 집에 기숙하기도 하고, 어린 제자와 센터 바닥에서 잠을 자기도 하면서 초기 미국개척기의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고민끝에 한국 교민사회만을 상대해서는 단센터가 성공하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리고, 단학과 뇌교육을 미국 현지인 사회에 뿌리
내리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로부터 다시 15년이 지난 지금, 미주 단요가 건강센터는 1991년에 처음 필라델피아에 함께 왔던 제자인 전승배 대표이사가
120여 개의 센터를 운영하며, 기업체, 학교, 관공서 등에 건강 및 웰빙 프로그램을 교육하는 건강문화기업으로 우뚝 서게 되었
다.
오늘도 미국 전역의 단요가 건강센터에서는 수천명의 미국인들이 서로에게 “반갑습니다.” 하고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며, 이총장의
“홍익의 꿈”을 함께 나누고 있다.

이승헌 총장님! 이승헌 총장님!!! 이승헌 총장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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