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김수영)의 해석 중 공감가는 해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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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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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3, 2018, 1:36:20 AM3/23/18
to 국어토론방(2018)

(김수영)’에 관한 다른 시선 

1)    시련과 억압에 항거하는 민중의 모습을 나타낸 시이다.

이 작품의 표면적 문맥은 굳이 해설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단순하다. 땅 위에 숱하게 돋아나 있는 풀이 비를 몰아 오는 바람에 나부껴 눕고 울다가 마침내는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웃는다는 것이 대체적인 내용이다. 물론 이처럼 단순한 내용만으로 요약할 수 없는 미묘한 느낌과 반복되는 말을 통한 리듬의 흐름이 의미를 따지기 이전에 어떤 은밀한 공감을 일으키는 점은 따로 유의해야 할 것이다그렇지만 이 시는 분명히 풀과 바람 그 자체만을 노래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풀과 바람은 어떤 상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
 
풀은 세상에 있는 생물 중에서 가장 흔한 것이다. 그것은 어디에나 있다. 풀은 또한 모든 목숨 가진 것들 중에서 가장 질긴 생명력을 지닌 것이다. 그것은 일부러 가꾸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자라나고, 없애려고 하여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와 같은 속성으로 해서 풀은 `세상에 무수히 많이 있으면서 어떤 시련에도 견디어 내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존재'라는 의미로 쉽게 이해된다. 이 작품에서의 풀 역시 그러하다.
 
작품의 문맥에 의하면 바람은 이러한 풀의 생명을 억누르는 어떤 힘에 해당한다. 그 억누름은 쉽게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람이 불 때마다 풀은 눕고 또 운다(, 바람에 흔들리어 소리를 낸다). 그러나 바람은 풀의 생명력을 끝내 완전히 억누르거나 없애지 못한다. 풀은 바람이 지나가면 곧 일어나고, 어떻게 보면 바람이 부는 순간에도 스스로의 삶을 지키고자 싸우면서 일어나려 한다
 
이렇게 볼 때 이 작품의 근본적 의미는 대략 드러난다. 풀과 바람의 싸움은 곧 이 세상에 무수히 있는 굳센 생명들과 그것을 일시적으로 억누르고 괴롭히는 힘과의 싸움이다. 이 싸움을 노래하면서 시인은 하잘것 없는 듯이 보이는 생명의 끈질긴 힘이야말로 모든 외부적 억압을 이겨내는 것임을 지극히 평범한 말씨와 어조로, 그러나 조금도 흔들림 없이 말한다.이와 같은 일반적 의미는 좀더 구체적으로 해석한다면, 오랜 역사를 통하여 억세고 질긴  삶을 지켜 온 민중과 그들을 일시적으로 억압하는 사회 세력과의 관계를 암시하는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들판의 수많은 풀처럼 이 세상에 언제나 무수히 있어 왔던 서민들, 풀이 끊임없는 시련을 견디며 삶을 지키고 번성하였듯이 그렇게 살아 왔던 민중들 ― 이러한 상징적 연결은 극히 자연스럽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어떤 사람들은 민중을 `민초(民草)'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와 같은 해석을 거쳐서 본다면 이 작품은 역사 안에서 끊임없는 시련을 받으며 살아 온 민중이 결국은 그들을 누르는 일시적 강제의 힘을 이겨내는 생명력의 원천임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해설: 김흥규]

 

 
 

 

 

 

 

 

 

 

 

 

 

 

 

 

 

 

 

 

 

 

 

 

 

 

 


2)    절망에 이른 존재가 단비를 통해 소생하는 역동적인 생명력의 시이다.

 

김수영의 명작으로 알려져 있는 ‘풀’이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을 의미한다는 것도 허구라고 주장했다. 
“왜 풀이 바람보다 빨리 일어나요? 이게 무슨 말인지 해명이 안 됩니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라는 대목이 있는데, 동풍은 춘풍인데 독재를 상징한다는 게 말이 안 되죠. 북풍이라면 몰라도.

 또 시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문단과 저널리즘의 평가 등 시류에 지나치게 편승한다는 비판도 제기했다. 오교수는 현대시사에서 서정주나 박목월보다 훨씬 높게 평가돼온 김수영의 ‘풀’에 대해 저급한 알레고리, 막연하고 불분명한 내적 감정, 비논리, 옹색한 상상력, 무감동 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오교수는 “기회주의로 해석될 여지마저 있는 ‘바람보다 빨리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을 독재권력에 항거하는 민중의식의 상징으로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절망에 이른 존재가 사랑의 단비를 통해 소생하는 인생론적 시로 봐야 한다”고 밝혀 기존의 관습적 평가를 뒤집었다. [오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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