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 여러분, 좀 쉬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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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6, 2012, 6:21:56 PM5/6/12
to kimalgosa@.., sunmi.lee0, jjy320@hot..

 

필라델피아에 있는 딸과 매일 통화를 하면서

저는 늘 듣는 쪽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화가 나서 전화를 하더니

한 30분은 분풀이를 하고, 어떤 때는 기분이 좋은 일이 있었는지

한 30분은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어떤 때는 별일 없이 무료했던지

주제도 없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그냥 30분을 보냅니다. 

하지만, 그렇게 딸과 통화하는 기분, 특히, 도서관 서가 사이에서

소리 죽여가며 통화하는 기분은 나름대로 괜찮았습니다.

가끔 학생들이 힐끗 쳐다보고 지나가는데 

딸과 이렇게 매일 전화한다는 것을 알면 어이 없다는 듯 웃을 수도 있겠지만,

딸은 어떻게 알았는지 항상 제가 지루해 할 때면 전화를 해서

새로 공부할 기운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딸의 전화가 없는 날은 제가 전화를 걸기도 합니다. 

그러다 가끔 딸의 수업 중에 전화를 해서 퇴박을 당하고 서둘러 머쓱하게 전화를 끊는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요. 

 

여러분과 한 팀으로 지내왔던 시간들도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기분이 좋든, 나쁘든, 서럽든, 힘들든, 뭔가에 중독된 듯 기분이 고양되어있든,

모여서 얼굴을 보고 같이 밥 먹고 수다를 떨고 서로의 엉뚱함 때문에 웃고

힘든 일을 같이 나누어 지지는 못해도 도움을 요청하면 늘 준비된 마음으로 다가가고 ...

일년 동안 우리는 그렇게 통화하며 가족으로 지냈습니다.

아버지와 딸의 관계와 같았다고 말하고 싶지만 감히 그러지 못하는 것은

제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이 늘 따라다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족으로서 함께 보냈던 그 시간들은 나름대로 괜찮았습니다.

돌아다 보면,

늘 흔쾌하게 도움을 주고, 남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눈물을 흘릴 때 곁에서 휴지를 건네주고, 자신의 삶도 별 주저 없이 서로 나누고,

그렇게 우리는 타자의 존재감을 우리의 삶 속에 잉태하는 연습을 하면서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괜찮았던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의 감동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딸과의 통화가 사실은 알게모르게 딸에게 관계의 따뜻함과 소중함을 가르치는 시간이었던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러다 딸과 통화를 끝낼 때가 되면 항상, 저는 "우리 딸,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딸은 딱 두 단어로 대답합니다. 그러면 저는 새로운 기운을 얻고 딸도 새로운 기분으로

자기의 일을 할 것이라 생각하며 저의 책상으로 돌아옵니다. 

문득, 지난 주에 그 동안 마음을 많이 나눠주었던 학생들이 네 명이나 저의 곁을 떠난 기억이 나는 군요.

그들은 한국으로, 또, 미국의 다른 지방으로 새로운 삶을 기대하며 떠났습니다.

그 동안 그들과 나눈 관계는 딸과의 통화와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헤어지는 순간 "사랑한다"고 말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그 말을 못했고 어떤 경우는 목구멍으로 그 말이 그냥 넘어오는 것을

억지로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다 문맥에 맞지도 않은 엉뚱한 말을 하게 되고야 말았습니다.

그래서 마음 속으로만 그 말을 되뇌면서 며칠을 보냈는데,

오늘 교회에서 또 다른 종류의 이별이

기다리고 있었는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정기적으로 만날 일이 없어져버린 것입니다.  

그 섭섭함은 그때부터 지금 메일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 이르도록 함께 나누어도 모자랄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섭섭함은 짧고 진하게 나누는 것이 좋다는 지혜가 그 순간에 우리를 붙들었지요.

그렇게 그 순간을 지혜롭게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해준 두 친구, 그리고 참석해준 모든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헤어지는 순간에 딸에게 그랬듯이 "사랑한다"는 말을 했어야 했는데

그 "사랑한다"는 말을 오늘은 제가 먼저 들었습니다. 카드 안에 작은 글자로 빼곡히 적힌 모든 글자들이 그렇게 읽혔습니다.

잔잔한 감동이 아직 저의 가슴 속 밑바닥을 울리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딸이 늘 하던 말을 빌어 저의 대답을 드립니다.

나두~.

(철순, 진아, 두기, 종훈, 선미, 아연, 혜리, 준한, 준성, 지은, 지영, 모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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