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밝고 맑은 얼굴로 다시 보게 되어서 기뻤습니다. 수련회를 다녀온 친구들뿐만 아니라 가지 못했던 친구들도 얼굴이 밝아보인 것은 서로를 위한 기도가 은총을 두루 나누게 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수련회 동안 조장을 맡은 두 분 노장들도 수고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준한, 준성 두 친구가 보이질 않아서 지난 주 식사 배달하느라 너무 고생을 했었나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지현이의 깜짝 방문은 인연의 끈을 따뜻하게 느끼게 했습니다.
집에 일찍 돌아와서 팀장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호수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장자리가 녹은 호수의 모습을 언뜻 보고서 왜 호수는 가장자리부터 얼고 가장자리부터 녹을까 궁금해했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가장자리로 갈수록 불순물--수초나 흙 등--이 많아서 호수 한 가운데보다 열의 전달이 빠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읽고서 의아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열을 중성적인 온도의 개념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뜨거운 것을 지칭하는 말로만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현상에 대한 설명을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처럼 내가 지닌 이해의 폭에 따라 세상도 그렇게 읽힐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가장자리가 빨리 녹고 어는 현상을 그렇게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기도 하겠지만, 혹시, 자연의 가장자리에는 사람이 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람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더라도 사람이 있는 곳은 언제나 자연의 가장자리가 되니까 그 가장자리는 변화의 속도와 순서에 사람의 생활 이치의 영향을 받게 되겠지요. 그렇다면 자연의 관점에서는 사람도 불순물인 것입니다.
이처럼 이해의 폭의 차이와 관점의 차이가 내가 아는 세상을 창조합니다. 차이가 의미를 만드는 것이지요. 더불어 분란의 소지가 되기도 하구요. 하지만, 이해의 폭은 넓히려고 노력해야 하고 관점의 차이는 포용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 장의 호수 사진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폭이 좁건 넓건 혹은 관점이 다르건 그 어떤 해석도 허용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주간 평안하십시오.
이인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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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저도 목사님 설교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흠,그것이 바울 스타일의 설교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