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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팔복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지니는 본질적 성품에 관한 것을 묘사한 것이라면 예수님의 소금과 빛의 비유는 제자들이 세상에 미칠 그들의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고 있다.
경쟁적이고 치열하며 거친 세상에서 가난하고 온유하며 애통하고 긍휼을 베풀며 화평을 이루려 애쓰는 자들이 어떻게 밀려드는 악과 어둠의 물결에 압도되지 않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 유일한 열정과 무기라고는 의에 대한 욕구와 마음의 청결함뿐인 그들이 무엇을 이룰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세상의 소수집단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고 뭔가를 이루기에는 너무 연약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으셨으며 그 반대였다. 세상은 교회를 박해할 것을 아셨고 하지만 제자들은 그런 세상을 섬기며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예수님은 갈릴리 그 소수의 시골뜨기인 제자들에게 그들이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으로서 영향력을 미쳐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영향력이 어떤 것인지 말씀하시는데 두 가지 비유를 드셨다. 그것은 어느 가정이나 사용하는 가정필수품인 소금과 등불이었다. 어느 가정이나 소금과 빛은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고 그것보다 유용한 것은 없다.
빛이 없으면 우리는 어둠에 갇히게 되고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소금은 양념이면서 동시에 음식을 썩지 않게 하고 장기 보존하기위한 방부제이다.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지 않으면 맛이 없고 고기를 썩지 않게 보존하기 위해서는 소금에 젖여야 한다.
이 비유의 기본진리는 교회와 세상이 서로 다른 별개의 공동체라는 것이다. 두 공동체가 서로 관련되어 있지만 그들의 관련성은 그들이 별개라는 사실에 있다. 오늘날처럼 교회와 세상의 구분을 흐리게 하고 모든 인류를 무차별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부르는 것이 유행인 시대에는 이것을 분명히 주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은 자기 내적인 빛이 없는 어두운 곳이다. 그래서 빛을 비추려면 외적인 빛의 원천이 필요하다. 세상은 언제나 그 빛을 밝히는 계몽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러나 세상이 자랑하는 많은 빛은 실은 어둠으로서 인간의 육신적인 사고의 산출물들이며 그것의 한계를 지닌다.
따라서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타락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세상은 자신이 썩는 것을 막을 수 없으며 외부에서 집어 넣는 소금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교회는 이중적인 역할을 감당하며 세상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존하는 것으로 사회적 부패를 저지하기 위한 혹은 적어도 방해하기 위한 소금으로서 그리고 어둠을 일소하기 위한 빛으로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단언 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소금은 그 짠맛을 유지해야 하고 빛은 반듯이 비취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소금은 그 짠 맛을 유지해야 하고 빛은 반듯이 비취도록 해야 한다. 소금이 그 짠 맛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빛은 감추어져 있으면 소용이 없다.
하나님은 제자들을 죄악이 물든 사회 속에서 가장 강력한 억제수단인 그 분 자신에게 구속받고 중생하고 의로운 백성이 되도록 부르셨다. 제자공동체인 교회가 자신의 본분에 충실할 때 세상은 썩은 생선이나 고기처럼 부패하는 반면 교회는 그 세상의 부패를 저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을 계속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금이 자신의 짠 맛을 계속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 가지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동화되어 세상의 더러움에 오염되면 그들은 영향력을 잃어버린다.
복음의 영광은 교회가 세상과 절대적으로 다를 때 변함없이 세상의 주의를 끌게 되며 세상은 교회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리게 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비그리스도인들과 구별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 쓸모가 없다. 우리는 짠맛을 잃은 소금처럼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밞힐 뿐이다. 짠맛을 잃은 소금은 퇴비로도 적합하지 않다.
어떤 비그리스도인들은 그럴듯하게 기독교문화로 치장하는 반면 믿는다고 고백하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비그리스도인들과 구분하기 어렵다 그리스도인의 비그리스도적인 그러한 행동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부인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와 세상사람들이 빛과 어둠처럼 다르고 소금과 부패와 변질처럼 다르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산상수훈의 기본적인 주제이다. 산상수훈은 그리스도인들은 다르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다르게 되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를 말살하려 하거나 최소화하려 하며 세상과 동화하려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에게나 우리 자신에게나 심지어 세상에 대하여서도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오는 교회역사 속에서 아마도 가장 큰 비극은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기독교적인 문화를 개발하는 대신 끊임없이 당대의 세속문화와 권력에 순응하려 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새롭게 된 제자로서, 공동체로서 어떠한 경우에도 교회의 본질을 타협하지 말아야 하고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며 주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열정을 지닐 때 세상을 향하여 그리스도인의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기쁨이 될 것이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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