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안에서의 부활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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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ls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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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8, 2012, 10:09:08 AM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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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날새오늘의영성 부활절특별메세지

 

따라서 참된 기독교는 십자가를 통과하여 반듯이 부활의 영광에 이를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부활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하며 죽음 없이는 부활이 없듯이 십자가 죽음 없이는 부활의 영광 또한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이해하고 그 사랑을 느끼기도 하나 부활하신 주님은 알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부할하신 주님을 삶에서 만나며 체험하지 못한 것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산 신앙이라 할 수 없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육신의 한계 안에 제한된 하나님이 아니시며 부활의 생명이요 영으로 존재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의 영인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구원사역의 목적을 위하여 인간의 육신의 한계 안에 스스로 제한 된 하나님이시고 부활의 영인 성령은 육체의 제한을 벗어버린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며 영이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것은 삼위일체의 신비로서 이러한 삼위의 신비 속에서 인류구원의 하나님의 대구속의 드라마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생명을 십자가를 통하여 그 생명을 방출함으로서 그 분을 구주로 받아들이는 이들 안으로 들어가 거듭난 믿는 이들의 생명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마치 한 알의 좋은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 밀알 속에 있는 생명의 씨를 방출함으로서 그와 같은 성분의 양질의 수 많은 밀알들을 산출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부활생명을 위한 전제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부활생명을 얻기 위해 반듯이 십자가로 가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하여 십자가로 가셨고 우리는 주님의 부할생명을 받기 위하여 십자가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하늘의 의가 하감하고 땅의 진리가 솟아나 포옹하며 입맞춤하는 곳으로서 부활의 영광을 위한 예비처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용서와 화해의 장소이며 용서와 화해를 위한 삶은 바로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는 제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며 형제를 용서하고 화목을 위하여 노력하고 일하라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용서와 화해인 것입니다. 또한 예수는 너희는 다 하나 되어 내 안에 거하라 명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 되기 위하여는 우리자신을 부인하며 용서와 화해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신을 부인하며 죽을 때 가능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으로 사는 것을 의미하며 부활생명으로 주님 안에 살기 위해 우리는 먼저 다 하나 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우리의 각양각색의 모양과 기질과 육신의 부모로부터 물러 받은 것들로 인해 제 각각인 우리들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우리의 타고난 생명으로는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과 온전한 하나를 이룰 수 없습니다. 한 부모를 둔 형제도 서로 다르며 하나 될 수 없고 심지어 일란성 쌍둥이 마저 모습은 같으나 성격과 기질은 다를 수 있으며 부부도 마찬가지며 백사람이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수억의 인구 중에 어느 누구도 똑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 또한 창조의 신비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너희는 다 하나 되어 내 안에 거하라 명하십니다. 그것은 획일적 외적인 통일이 아니라 내적인 한 인격 한 마음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생명과 인격으로 하나 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인격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반듯이 우리의 육신의 생명은 십자가에 못박히고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육신의 자아가 죽지 않으면 결코 하나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너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신 것입니다.

 

우리자신이 죽지 아니하면 부할도 없습니다. 부할은 죽음 뒤에 있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부분은 아직도 십자가에 죽지 않고 살아서 고통 중에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완전히 죽을 때 우리는 십자가에서 내려지게 되고 육신의 고통에서 자유하게 되며 안식 안에서 장사하게 되어 부할을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생명이 완전히 죽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영이 안식할 때 하나님의 일으켜 세우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죽지 않았고 반쯤은 살아 있다면 우리의 살아 있는 육신을 통하여 사탄이 틈타서 수시로 사탄의 도구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믿음의 혼동 속에서 고통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쓰시기 전에 우리가 십자가에 온전히 죽어 장사되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리하여 우리자신을 부인하고 온전히 죽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새 생명으로 그 분과 동행케 하시는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는 부활의 능력으로 덧입으며 주님과 함께하며 동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인 부활 생명으로 인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며 그리스도를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인격은 그 사람이 소유한 생명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부활의 생명으로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그의 생각과 말과 행위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묻어나고 그의 존재함은 어둡고 부패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바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생명인 이 부활생명인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생명은 바로 이 부활생명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나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참된 믿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부활이 빠진 기독교는 참된 기독교가 아닙니다. 유대교와 이슬람도 하나님을 믿으나 예수그리스도와 부활을 믿지 아니함으로 그들에게 생명이 없으며 기독교라 하지 않습니다. 기독교가 다른 수많은 종교와 차별되게 하는 유일하고 독보적인 가치가 바로 이 부활생명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부활의 생명과 소망의 믿음은 핍박과 환란 중에도 세상을 이기는 힘이며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교회에 다니나 이 부활의 생명에 있지 아니하고 소망의 믿음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따라서 우리들이 부활생명 안에 있지 아니하면 우리의 믿음은 요동치는 세상의 물결위에 바로 설 수도 없습니다. 세상의 풍파와 물결속에 그 믿음도 함께 요동치며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표류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날 때 그리하여 부활의 생명이 우리를 붙들어 줄 때 우리는 요동치는 파도를 잠잠케 하시는 그 분의 생명 안에서 그 분의 평정과 안식을 누리며 우리의 깨어지고 그릇된 삶의 현장도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예배에 참석은 하나 타성에 젖어 습관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부활생명 안에 있지 않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매년 돌아오는 부활절을 그저 되풀이 되는 일상적인 무덤덤한 믿음 속에서 의미없이 보내며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절을 기쁨으로 맞기위해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보내면서도 당신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고 육신의 생명을 아끼며 당신자신을 사랑하여 당신은 십자가에 오르지 않았고 예수님만 홀로 십자가에 또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당신에게 그 분의 생명인 부활생명을 주어 우리를 새롭게 하시기 위해 당신의 육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매년 초청하였으나 여태껏 당신은 십자가에서 매번 도망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초청으로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아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 만이 그리스도가 부활할 때 그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킴을 받으며 부활생명으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킴을 받은 자의 부활절이 무슨 의미이며 어떤 것인지 상상이 되시나요?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은혜와 축복의 충만함이며 그야말로 하늘의 축제를 맛보는 환희인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삶이요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우리의 가슴은 더 이상 냉냉한 채로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불같이 뜨거워지고 열정으로 타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뜨겁게 찬양하며 열심히 섬기며 헌신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게 되고 말씀이 생명이 되어 살아서 역동적이 되며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생명의 말씀을 그리워하며 생수로 힘을 얻고 말씀에 순종하며 성령을 따라 헌신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에 낙담하여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가슴이 불같이 뜨거워져서 가던 길을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그들은 삶의 좌표를 알았고 확정했습니다.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만날 때 우리의 삶의 좌표는 확실해지고 더 이상 요동치며 표류하지 않으며 확정됩니다. 두려움에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와 도망했던 제자들이 용감하게 복음을 전하며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은 부활의 주님을 만났기 떄문입니다. 또한 사울이 바울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다메섹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났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만날 때 우리의 삶은 주님의 계획과 목적안으로 실제적으로 들어가고 주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완전히 변화되고 전환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부활절에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며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체험함으로 주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살아계신 주님을 체험하며 산 소망의 믿음으로 생명의 믿음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충만히 누리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일하고 헌신하며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며 동행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날새  

 

 

                         하날새오늘의영성 함께하는 모임   GOD Dream 하날새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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