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언약의 사역
사역은 하나님의 언약들인 옛 언약과 새 언약에 근거하여 이루어 집니다. 사역은 하나님께서 그 분의 백성과 맺은 언약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없다면 우리는 어떠한 사역도 가질 수 없으며 우리가 무엇을 하든 사역이라 간주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역은 하나님의 언약을 수행키 위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봉사이며 섬김입니다. 우리에게는 신약의 새 언약에 근거하여 유일하게 하나인 새 언약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선호나 갈망을 위해 하는 것은 다 하나님의 사역이 아니라 다만 사람의 일일뿐인 것입니다.
바울은 고후3장5절에서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 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6절에서 또 저가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라고 말하고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전4장은 하나님의 비밀들의 청지기에 대하여 말합니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와 같은 하나님의 비밀들을 믿는이들에게 분배하는 청지기로 주님께 임명 받았습니다. 바울은 그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영적인 것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가르친 말로 말한다고 했습니다.(고전2:3)
고린도의 믿는 이들은 영적인 말이 아니라 헬라의 철학과 지혜의 말로 그리스도에 대해 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그리스도가 아닌 철학으로 다른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영적인 것들로 영적인 것들을 말했습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가르치신 말을 인간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우리는 더 이상 다른 이들에게 영적인 것들을 전달하고 공급할 수 없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이기 때문에 그 분이 내 안에 내 영과 연합하여 계시므로 그 분이 아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또한 그 분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우리의 영으로부터 우리의 혼인 생각을 적시어 우리의 생각을 그 분의 생각과 하나 되게 만드십니다.
우리가 항상 기도하며 그 분 앞에 나아가고 그 분 얼굴을 바라보며 찬미와 찬양의 생활을 하며 깊은 사랑의 교제 속에 있을 때 그 분과 나는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가 되는 것은 진실로 사랑할 때입니다. 진실한 사랑만이 온전한 하나를 이룹니다. 진실한 사랑에는 다른 조건이나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일 때 그분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이 됩니다. 이것이 단지 하나의 교리나 가르침이 되어서는 안 되고 우리의 신앙생활의 체험이 되어야하고 우리의 생활과 삶의 모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역은 우리가 체험한 그리스도를 공급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를 체험한 것이 없다면 다른 이들에게 공급할 것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단지 지식적인 교리나 성경지식을 성경교사로서 가르칠 수는 있으나 다른 이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하며 생명을 전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체험이 없는 의문의 지식으로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역자는 반듯이 그리스도의 체험이 풍부해야 합니다. 그가 은혜와 고난의 체험이 풍성할수록 그리스도를 보다 깊이 알 수 있고 그리스도의 생명을 풍성히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은혜의 체험만 좋고 고난은 피하고 싶다거나, 은혜의 체험만 있다면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하는 사역자로서는 합당치 않습니다. 은혜의 체험을 교사로서 가르칠 수는 있으나 사역자로서는 합당치 않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다면 참다운 사역자가 되기 힘듭니다. 고난을 통하여 주님의 마음과 하나 되고 주님의 슬픔, 안타까움, 애통이 내 감정과 하나 되고 주님의 느낌, 생각이 나의 느낌,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 고통으로 신음하고 몸부림칠 때 주님이 나와 함께 하고 고통을 넘어 십자가에서 내가 온전히 죽을 때 그 분이 내안에 들어와 내 영과 하나 되어 살기 때문입니다.
주와 하나 되는 것은 우리가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을 때 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주와 우리가 하나로 연합되는 통로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체험이 없다면 사역자가 아니거나 아직 사역할 때가 아닌 것입니다. 고난이 없는 사역자는 사역자라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사역자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하고 또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역은 고난과 소모시키는 압력과 십자가의 죽이는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풍성을 체험함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전1:3-10절에서 우리의 모든 환란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모든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 라고 말하고 아시아에서 당한 환란을 말하기를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않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는 어떻게 십자가로 죽이는 것이 역사하며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우리안으로 역사해 들어오시고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의 표현이 되는지에 대한 본과 보기를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주님은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을 만들며 하나님의 새 언약을 위한 사역을 산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환란을 체험함으로 산출되고 형성된 사역은 십자가의 역사를 통해 오게 됩니다. 십자가의 길에 의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공급할 그리스도의 풍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역은 십자가의 체험과 함께 기름부음과 인침과 보증이신 기름 부으시는 영을 체험함으로 이루어지며 고난의 체험을 통해 은혜로 만들어진 존재의 문제인 것입니다. (고후1:21-22) 그리하여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 말합니다. (1:12)
결국 새 언약의 사역은 우리존재의 어떠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새 언약의 사역자들은 하나님을 부활의 하나님으로 체험해야 합니다. (고후1:8-10) 부활은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하나님자신이신 것입니다. (요11:25)
십자가의 역사는 우리의 자아를 종결시키어 우리가 부활 안에서 하나님을 체험하도록 합니다 새 언약의 사역자들은 스스로 죽음이라는 단정을 내렸는데 이것은 그들이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만 신뢰하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고후1:9, 3:5, 4:14-15)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친밀함으로 우리의 사역현장에서 부활의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며 하나님의 위로속에 새 언약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