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믿음으로 나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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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ls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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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8, 2012, 5:22:31 AM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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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날새오늘의영성

 

믿음은 영적인 것이다.

신앙은 육적인 세상의 삶에서 영적인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며

육신적인 자아를 벗어나 영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집중하는 것이다.

 

우리가 땅에 있으나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영적인 삶은 사는 것이 신앙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땅에 속하고 땅의 것들에 얽매여 살아간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과 달라야 한다. 비록 몸은 땅에 있으나

그 영은 하늘에 속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몸은 단지 이 땅에 거하시는 성령의 전이 되어야 하며

그 영은 성령과 연합하여 하늘에 속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육체는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영을 담은 그릇이며 용기인 것이다.

그것이 참 그리스도의 정체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을 모신 성령의전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자신의

정결함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우리안의 탐욕과 교만을 몰아내고 성령의 불로서 모든 죄악과

거짓들을 소멸하시며 정결케 하시도록 성령께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탐욕과 교만은 사탄이 오염시키고 부패하게 한 본성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탐욕과 교만으로부터 비롯되는 죄악에 팔려 사탄의 종이 된 것이다.

우리 육신은 이미 부패되어 죄의 본성에 깊숙이 참여하고 있으므로

우리의 힘으로는 아무도 죄의 육신을 벗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육신의 한계를 인정하여 겸손해져야 한다.

우리는 바울의 고뇌의 탄식이 우리 자신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 찬송하리로다.

이 얼마나 거짓없는 진실된 고백인가...

십자가에서 사탄을 멸하고 승리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인하여

하나님께 찬송하리로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영이야 말로

사탄을 멸하고 죄를 이기는 유일한 승리자이신 것이다.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바로 성령이시다.

그 부활의 영이신 성령은 생명주시는 영이 되셔서 믿는 이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나눠주시며 그들 안에 내주하셔서

믿는 이들을 새롭게 하시며 거룩하게 하시며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시며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시고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도록 인도하시며 이끄시는 것이다.

 

우리들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 외에는 없다.

성령을 따라 행하며 성령께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 사실상 우리 믿음의 모든 것이다.

그러면 성령께서 우리를 통하여 그 분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 나가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항복하며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성령을 사모하고 환영하며 우리 안에 모셔 들이고 성령께서 우리를 정결케 하며

성령의 불로서 우리의 오염과 죄들을 태우시도록 허락하며 성령의 인도에

온전히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진정한 믿음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께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행하시려는

그분의 기쁘신 뜻을 행하실 수 없고 우리는 여전히 육신 속에 머물러

죄 속에서 방황하며 살다가 멸망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구원받았으나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에서 하나님의 인도에 불평하고 불순종함으로 인하여

안식의 좋은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 엎드러져 죽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그분의 안식을 허락지 않으신다.

그분의 안식의 평강은 순종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은혜의 보응인 것이다.

 

은혜 받고도 여전히 불순종하며 육신 안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꺼려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감당할 수 없었다.

정결하지 못한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면 즉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마음과 자세가 없었다.

그들의 탐욕이 그들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백성은 멀리 섰고 모세는 하나님의 계신 암흑으로 가까이 가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임재앞에 뒤로 물러났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상심하시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재자를 세우셨다.

그러나 그것은 애초에 계획하신 것과는 다른 차선책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그분의 백성들을 거룩하게 구별되게 하시고

그들과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원하셨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시고 세상의 빛이 되게 하시어

세상을 구원을 하는 축복의 통로로 쓰시고자 하셨다.

하나님은 분명히 자신의 뜻을 전달했으나 그들은 자신들의 탐욕에 몰두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시는 정해진

광야의 그 여정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가나안의 좋은 땅에 들어가기 전에 광야로 인도하신 것은

그 분과의 친밀한 관계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분을 그 백성들이 좀 더 깊이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백성들이 그분을 충분히 알기 전에 그분이 공급하시는 풍성한 선물에

마음이 뺏앗기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에 그들을 광야로 이끄시고

만나로 그들을 먹이시며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하며 그 백성이

그들을 인도하며 보호하시는 그 분을 알게 하시며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갖고자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애굽의 노예에서 구원하신

그분의 목적과 마음에는 관심이 없었고 자기 자신들에게 몰두했다.

그리하여 광야 여정동안 물과 음식과 환경 등에 대하여 끊임없이 불평했다.

경건한 두려움이 부족했고 그들의 마음은 미래의 가나안 땅에서 탐욕으로 가득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갈망에는 무관심하며 자신들의 욕망에 탐닉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을 때 자신의 쾌락을 위하여

하나님의 낯을 피했으며 하나님과 모세가 그들을 떠나 있었을 때

자신들의 탐욕을 채워 줄 수 있는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금은 오늘날로 말하면 돈을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심령은 돈을 섬기게 되어있다.

그러면 속임수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게 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성경은 말한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도록 창조 되었다.

창조주인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섬기지 않으면 다른 것을 섬기게 된다.

다른 것을 섬기면 결국 섬기는 그것의 노예가 된다.

우상을 섬기면 우상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의 노예가 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을 굴레와 죄의 종으로부터 해방시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안에서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기를 원하시고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원하시며

종으로서의 복종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의 순종을 원하신다.

 

예수님은 그가 인간을 사랑한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귐을 가지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만큼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하기 원하는 것이다.

예수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친분관계가 바로 그런 것이다.

 

육적인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순수한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그들의 육신적인 탐욕으로 인하여 거부하며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를 배회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구약의 롯과 같이 세상에 얽매인 삶을 살아간다

하나님을 섬기기 원하지만 그것은 소망일뿐 현실적으로 육적인 입맛에 중독되어

세상풍속과 세상기준을 따르고 쫒아간다. 이러한 명목상의 기독교인들은

구원을 받기는 원하지만 동시에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보다 자신의 쾌락이나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중요하고 자신의 야망과 일과 스케줄이 더 중요하다.

 

그들은 십자가에 그들의 육정을 죽이도록 허락하지 않는 자들이고

주님의 거룩하게 태우시는 불세례에 저항하며 도망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주님의 뜻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거나 행하지도 않으며

주님을 열정적으로 추구하거나 하나님의 일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성소의 바깥을 배회함으로 진실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맛보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왜 그들을 세상의 억압으로부터 구원해 내셨는지

깨닫지 못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며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의 부르심은 듣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과 보호하심과 돌보심의 은혜와

부유함의 설교를 듣기 좋아하나 마음의 중심을 드리는 문제에서는

마음의 문을 닫는다. 인생의 만족을 채워 줄 것을 추구하지만

생명의 샘인 마음의 문제는 간과 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슬픈 일이다.

 

우리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고자 사람은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며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하여 엄청난 댓가를 치른 분이시다.

그 하나님 예수를 우리가 믿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친구가 되지 않고

세상과 친구가 될 수 있는가?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세상과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밝히고 있다.

 

우리들이 참된 믿음으로 하나님과 친밀한 사랑의 관계로 나아가며

오직 성령을 따라 행하며 순종하는 참 믿음의 신앙인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멘.

 

 

                                                                 하날새  

 

                                                 하날새오늘의영성 함께하는 모임   GOD Dream 하날새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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