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기계 3 : 시-공간 프레임
"TIME CRISIS", "THE HOUSE OF THE DEAD" 같이 게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인용 슈팅게임을 아이와 자주했었다. 두 명의 플레이어가 가상으로 ‘동료’가 되는 설정인데, 게임이 진행될수록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면서, 정말 ‘동료의식’을 느끼게 된다. (난 좀 쉽게 현혹되는 스타일인 듯~) 일시적이긴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조차 매우 드물게 느껴볼 수 있는 그런 고매한 감정이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우리의 마음 안에서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반복적으로 재현될 수 있다.
'나'와 '내 동료' 사이에는, 두 개의 슈팅건과 게임본체, 그리고 그것을 서로 연결하는 금속선이 있을 뿐이다. 물론 게임 스토리와 보조 캐릭터들도 있지만 매우 단순한 설정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런데 이토록 간단한 연결설정 내에서도 마음의 변이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매우 낮선 곳에서 그리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대면하게 되는 이 기이한 현상은 무엇인가? 어떤 변이가 있었다면 거기에는 그 변이를 발생시키는 무엇인가가 있었다고 추론해야 하지 않을까!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그것'이 있음을 점점 더 자주 목격한다.
이와 유사하게 컴퓨터 스크린 상의 텍스트들이 실재성을 가지는 현상에 대한 연구들이 있다. 예를 들어 주식 중개시스템의 참여자들은 물리적으로 같은 장소에 함께 있지 않지만 실시간으로 공통의 대상에 반응할 수 있고 그 반응을 서로 확인할 수 있다. 정보기술에 의해 매개되어 마치 같은 시각에 하나의 장소 안에 있는 것과 같은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스크린에 나타나는 주가나 거래 내역들을 동시에 인지하고 반응한다. 참여자들은 서로의 단말기 스크린에 무엇이 나타나는지를 함께 알고 있다. 그런 조건에서 각각의 스크린 위에 나타나는 텍스트나 이미지는 단지 기호일 뿐인데도 참여자들 사이에서 실재하는 것이 된다. [1]
이런 실재성은 실행과 관련이 있다. 정치적인 것이든, 경제적이든, 기술적이든, 사회적이든 또는 유기체적이든 기호학적이든지 실행은 관계의 제정(enactment of relation)으로 이어진다. 실행은 관계를 생산하고 수립한다. 그리고 일단 발생한 관계는 일정한 체화의 양식으로 안정화될 수 있다. 기억이나 습관과 같이, 또는 생물학적 진화나 도서관의 책들처럼, 그리고 데이터베이스들처럼...... 실행은 무엇인가로 체화된다. 이를 실행의 시간화(temporalization of practice)라고 한다.
철학적으로 시간이란 현재 안에 압축되어 있는 과거와 미래의 두께이다. (여기서 과거란 과거의 실행으로, 미래란 미래의 실행으로 대치할 수 있다. 실행은 다시 관계의 제정으로 대치할 수 있다) 그 시간의 두께가 공간화될 될 때 우리는 그것을 현재로서 지각하게 된다. 그것이 아름다운 리듬이든지, 눈부신 색깔이든지, 딱딱한 느낌이든지 간에………우리가 지각하는 것은 단순히 현재의 표면이 아니라 그 자신의 과거에 의해 밀어 올려진 현재이며, 그 시간의 두께를 압축적으로 대변하는 현재이다. 그렇게 우리가 무엇인가를 지각했다는 것은 그렇게 구성된 시간이 공간화되었다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며 서로를 직조하는 관계에 있다.[2] 모든 차원의 실행들은 서로 뒤엉켜서 하나의 고유한 시-공간 프레임(space-time frame)을 구성할 수 있다. 실행에 의해 발생하는 관계의 제정은 자신이 속한 고유한 시-공간 프레임 안으로 안정화된다. 그 시-공간 프레임내에서 일정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실재로서 승인된다. 즉 실재(real)란, 특정하게 구성된 시-공간 프레임 내에 “위치지어진 지식(situated knowledge)”이다. 어떤 것이든지 우리가 참여하는 일정한 시-공간 맥락 안에서 관계지어지고 위치지어질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정보통신기술이 매개하는 전자적 표상(텍스트나 이미지)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우리가 참여하는 시-공간 프레임에 의존한다. 정보통신기술이 구성하는 시-공간 형식은 인간과 전자적 표상들 사이의 편재적 거리를 무시하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즉각적으로 불러올 수 있고 과거 실행을 압축적으로 참조할 수 있기 때문에, 그곳의 표상은 그 시-공간 형식에 참여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든지 실재로서 작동한다.
더 중요하게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실행 또는 인간과 기계 사이의 실행의 양보다 기계와 기계 사이의 실행의 양이 훨씬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계에 의해 수행되는 실행의 양이 많아졌다는 것은 기계에 의한 관계의 제정이 차지하는 부분이 많아졌다는 의미이다. 시-공간 프레임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인간의 실행만이 아니라 기계의 실행이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계의 실행은 인간의 실행만큼이나 그 시-공간 프레임 내에서 ‘실재’라고 승인되는 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정보통신기술이 매개하는 시-공간 프레임에 참여하게 될수록 우리의 경험은 그 시-공간형식에 의해 변형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공간 형식은 균질적이기 보다는 특정한 방향성을 띤다. 인간만이 아니라 기계조차도 지향성(instrumental intentionality)을 가지기 때문이다. 인간과 기계는 상호적 학습과정에서 서로의 물질형식을 학습하고 체화한다. 인간과 기계의 실행이 생산한 관계는 각자의 형식 속으로 끼워 넣어져서 재강화되는데, 어떤 관계는 자신의 형식 속으로 결합될 수 있지만 어떤 관계는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재강화 과정은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된다. 그런 점에서 시-공간 프레임은 비균질적인 의미의 관계망이다.
앨런 튜링에게 있어서 생각하는 기계란 “거짓을 말할 수 있는 기계”이다. 들뢰즈에게 있어서 영화는 “거짓을 말하는 역량을 가진 기계”이다. 거짓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뒤집어서 말한다면 “진실을 생산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엄밀하게는 무엇인가가 진실이기 위한 시-공간 프레임을 구성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튜링의 꿈은 단일 기계 단위에서는 실패했지만 네트워크화된 기계 시스템 단위에서는 성공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지연>
[1] Knorr Cetina, Karin and Bruegger, Urs (2002), "Global Microstructures: The Virtual Societies of Financial Markets",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107:4 (January 2002). pp. 905-950.
[2] 김지연. 2012. 온라인 게임: 정보통신기술이 매개하는 시-공간 프레임과 실재성. 과학기술학연구, 12권 1호(통권 제23호). pp. 79-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