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라디오 다큐멘터리 역사를 찾아서” 강추합니다.
http://www.kbs.co.kr/radio/1radio/history/replay/aod.html
특히, 조선을 다룬 부분(2012년 7월)부터가 재미있습니다.
http://www.kbs.co.kr/radio/1radio/history/aod/index,1,list,2.html
중세의 거버넌스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고,
역사학자들의 해설도 재미있습니다.
마치 어제 일처럼 구석구석 얘기해주고 있어서 놀라울 정도입니다.
한국사 연구자들을 존경하게 됩니다.
작년 12월23일자 지폐유통에 관한 내용도 기억에 남고요.
9월 15일자 세종때 한양성 축조때 전국에서 부역을 동원하는 상황이나,
9월 22일자 부민고소금지법과 문신형에 관한 대목 등도 흥미진진합니다.
아껴서 듣는 중~
김지연드림
2013년 12월 19일 방송내용이 신기해서 한마디!!!
세종의 공법(정액조세징수방식) 개정과정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조세방식을 변경하기 위해서
5개월간 전국적으로 172,806명에 대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고 합니다.
오~
그 결과 찬성의견이 조금 더 많았는데….
당시 영의정 황희는 여론조사를 토대로 공법 반대 보고서를 기안했답니다.
찬성이 양적으로 좀 많았지만 반대의 질적 측면을 고려했다네요.
강원도와 같이 토질이 좋지 않은 지역에서의 반대가 극렬함이 있었다고 함.
오~~
우리는 정량화된 의사결정에 익숙해있고 그것이 마치 민주주의인 양 생각하는데……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소수의견이더라도 그 의견의 질적 맥락을 고려했다는 점에서…..
그런데 당시 인구수가 692,477명(세종실록지리지 기준)이었다네요.
지금 경기도 부천시 인구보다 적어요.
70만도 안 되는 인구로부터 세금을 걷어서
어떻게 관료들 급여도 주고 성도 쌓고 군사도 양성하고
한글도 개발하고 등등
그런 것을 다 할 수 있었을까요? 놀랍습니다.
(물론 강제부역이 있었긴 했지만)
참으로 빈궁한 국가재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게 효율성을 체화하게 된 연유가 아닐까 합니다.
집요한 기록문화도 효율성에서 온 습관이 아닐까 하고요.
다시 들어도 이 공법제정과정은 참으로 숙연함이 있습니다.
그런 빈궁한 재정에도 불구하고 전 인구의 4분1에 해당하는 여론조사를 하고
그러고도 극렬한 반대를 고려하여 시행을 하지 않았다니~
이 공법을 수정하면서 시행하는데 이후 25년이 걸렸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