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관료와 전문성의 정치
현대의 통치 시스템은 기술관료(technocrat)에 의해 유지되고,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지적 도구, 계산과 합리적 형식에 의존한다. 통치기술은 전문적 지식으로 무장하여 통치행위를 '진실에 관한 새로운 체제(new regime of truth)'로 진입시킨다. 그런 점에서 통치 시스템은 지식-권력 장치이다. 이 체제는 자신의 통치대상을 ‘과학적’으로 특정하고 표준화하여 통치대상들의 행위에 개입할 수 있다. 동시에 이 체제는 존재하지 않는 것(광기, 불이행, 성욕)을 실재하는 것으로 표지할 수도 있고, 반대로 존재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여 배제할 수도 있다. [1]
이는 일종의 '전문성의 정치(politics of expertise)'이다. 전문성의 정치란 특정한 지식이 더 권위를 가짐으로써, 경합의 과정 없이 다른 지식보다 더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는 것을 의미한다. 통치 시스템 내에서 기술관료는 특화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전문적 규칙을 훈련받을 수 있다. 기술관료들은 통치적 관리(governance)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전문지식과 정보기술을 강조하며, 공리주의적 효용성(utility)을 그들의 통치 기술로 삼는다.
이 통치 시스템의 의사결정은 정치적 숙고보다는 경제적 사회적 지표들에 의존한다. 그런 지표들은 어떤 사회적 목표가 가능한지를 알기 위해 현 상태를 과학적으로 관찰하도록 설계된 것들이다. 그렇게 도출된 과학적 합리주의는 정치적·문화적·도덕적 중립성이라는 환상을 창조한다. 전통적인 정치 행위와 달리, 기술관료적 관리체제에서는 지도자도 없고 바리케이트도 없다. 다만 관리적 위계를 통하여 '조용히' 그리고 '얼굴 없이' 움직인다.
기술관료적 시스템이 전문성을 동원하여 일정한 책임성과 효율성을 측정결과로 내놓는다면 그 정책의 수용대상들은 효과적으로 저항하기 어렵다. 기술관료는 전문성의 정치를 통하여 합의적이고 숙고적이어야 할 정치의 맥락을 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 더구나 이러한 통치방식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시민참여는 논쟁적인 주제로 변하는데, 상당수의 사람들이 대중적 견해와 시민참여 보다 전문가에게 의존하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기술관료적 또는 전문가적 합리성은 곧 탈정치화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기술관료들은 이해관계집단의 참여를 경향적으로 배제한다. 정부차원의 정책 결정을 하는데 있어서, 기술관료들은 이해관계집단들 사이의 차이를 협상하도록 유도하기 보다는, 탈정치화된 '자문가 메커니즘'으로 귀결시킨다.[2] 이 과정에서 기술관료는 전문가들을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기능에 봉사하도록 조직한다. 결과적으로 이 구조에서는 전문가의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지배적 이해관계자의 요구에 우선순위가 두어진다.
이렇게 전문성과 합리성을 동원하는데 성공한 국가의 통치는 독자적인 내재적 규칙을 형성하며, 국가의 통치를 주권의 행위자로부터 분리되어 자율적인 것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자유주의적 통치체제는 권위주의적 통치체제와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 엄밀하게 정의하자면 현대의 통치 체제는 '강한 국가'와 '자유롭고 훌륭한 경제'라는 이중의 원칙을 추종하는 ‘권위주의적 자유주의(authoritarian liberalism)’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자유주의적 통치 형식은 우리의 삶에 포괄적으로 개입한다. 그리고 개인과 집단의 자유를 선언한다. 그러나 이 자유는 통치시스템이 규정한 범주 안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결과적으로 전문성을 수반하는 자유주의적 통치 아래에서 정책적 의사결정은 탈정치화되고, 그 통치 시스템은 자동성을 획득하게 된다. <김지연>
[1] Foucault, Michel. 2008. The Birth of Biopolitics: Lectures at the College de France, 1978-1979. New York : Palgrave Macmillan.
[2] Fischer, Frank. 1990. Technocracy and the Politics of Expertise. Sage Publ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