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필변호사가 등장하였으므로 관련된 일화 하나 전합니다~
예전에 이변과 함께 게임등급위원으로 있을 때, 저녁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했었는데...
제가 또 말을 시작하면 엄청 많이 합니다. ㅎ
저의 학문분과에는 '전문성의 정치'라는 개념이 있다면서 제가 그 개념을 설명했었습니다.
당시 제가 구체적으로 뭐라 말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대략~
"과학기술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전문적 의사결정에 대한 정당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중요한 사회적 의사결정이 주로 소수의 전문가들에 의해만 이루어진다. 그 결정으로 인하여 일반시민이 받는 영향이 큼에도 불구하고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사회전체에 영향을 주는 결정을 할 권한이 주어진다"
그리고 나서 두서없이 이것저것 얘기했고,
다른 주제로 옮겨가서 제가 영화등급제를 비판했더랬습니다.
왜 18세 영화는 부모가 동반하더라도 볼 수 없냐!
아들과 디스트릭트9 관람하려다 실패한 사건이 있어서 수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열받아 있는 중임 (이 문제는 두고두고 계속 물어늘어질 생각임 ㅎ)
말이 되느냐! 우리도 등급위원이지만 등급판정하는 것이 정말 어렵지 않냐?
등급위원이라고 해서 등급을 잘 판정하는 것이 아니다.
15세와 18세사이를 막 고민하다가 어쩔 수 없이 모르는 시험문제 찍듯이 버튼을 눌러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말이다.
확신을 가지고 결정했더라도 문제는 여전하다.
모든 청소년이 표준적인 것은 아니니까........
그렇게 제가 막 핏대를 세우고 있는데...조용히 듣고 있던 이변이 말하기를
"그게 바로 전문성의 정치네"
그 순간 저는 뻥한 표정으로, "뭔 소리야!"라고 생각했죠.
다시 이변 왈
"등급전문가들이 등급결정하고 부모는 선택권이 없고 무조건 따라야 하는 구조니까 이게 바로 전문성의 정치인거잖아!"
아! 그렇구나, 이변은 왜케 똑똑한 거지
그 개념을 연구하고 설명한 것도 나고
영화등급제를 비판한 것도 나인데
정작 그 개념이 그 사건과 연결된다는 것은 생각치 못했다...
나는 멍청한 건가라는 자책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잘 설명했기 때문에 이변이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걸 연결할 수 있었던 것이라 위안 삼았습니다.
그리고 이변이 게임등급은 영화등급 보다 훨씬 더 부모선택권이 없다고도 알려줬습니다.
시민으로써 자신의 권리를 국가시스템(전문가시스템)이 침범하고 있는데도
이걸 문제삼는 부모는 거의 없습니다.
제가 아는 한 민주주의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 조차도 이런 문제제기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들도 '부모'가 되는 순간 무력해지나 봅니다.
그렇게 오랜동안 부모들은 선택권이 없는 상태를 살아왔고 '적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을 조금 더 확장해 보면,
부모들이 그 상태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면,
사업자의 자율규제의 전망도 그다지 밝지 못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당연히 사업자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지만,
자율규제의 다른 축인 소비자(유저/부모)가 이 메커니즘 내로 유입되지 않는다면 잘 작동되지 않을 것입니다.
소비자가 게임을 구매할 때 스스로 등급정보를 보고 판단해주지 않는다면 사업자가 등급을 자율적으로 붙이는 것이 의미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사람들은 강제적 등급제를 지지하게 될 것이므로........
한국에서 사업자들이 자율규제를 하기 위해서는,
자율규제기구를 운영할 조직을 만들어야 하는 것만이 아니라
시민의 주체적 역량을 증대시켜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습니다.
사업자의 자율규제가 낭만적인 것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저는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또 누군가 똑똑한 사람들이 나타나서 새로운 연결점을 찾으실 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