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메일링하네요. 드디어 시장에 빨간 햇사과가 나왔습니다. 맛있더라구요~
-------------
기술혐오의 사회적 함의
일명 “인터넷게임 셧다운제”로 불리는 청보법 26조는 ‘인터넷/게임중독’ 이라는 위험논쟁에 의해서 촉발되었다. 그런데 정작 ‘인터넷게임중독’ 개념은 모호하고 아직 연구자들 사이에서 합의되지 않았다.[1] 따라서 ‘인터넷게임중독’이라는 표현은 “약물중독(Drug Addiction)' 개념에서 차용된 은유(Metaphor)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는 일상적인 언어사용에서 강조의 의미로 또는 주위를 환기하는 의도로 ”중독적“이라는 표현을 흔히 사용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인터넷게임중독’을 법률용어나 공식적인 정책용어로 곧바로 사용하는 것은 성급한 결정이었다. 그런 점에서 일부 연구자들은 국가가 기술혐오를 적극 부추기거나 국가통치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3]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해석하자면 그런 성급한 결정이 발생할 만큼 사회적 압력이 존재했다고 할 수도 있다. ‘인터넷중독’ 또는 ‘게임중독’ 개념은 시민들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수용된 것은 아니지만, 명백히 거부되지도 않았다. 그들은 이 새로운 기술현상에 대해 아직 적절한 설명을 들은 적이 없으나 직관적인 우려가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인터넷/게임중독’ 개념이 메타포적 표현이더라도, 그것이 널리 유포될 수 있었던 것은 대중의 기술혐오와 결합하여 증식되었다. 기술혐오는 단순한 회피만이 아니라 일종의 기술에 대한 위험인식이며, 암묵적 저항이다. 따라서 기술혐오를 비난하기 보다는 그 사회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기술혐오는 비난의 대상이었다. 기술혐오는 정부정책이나 시장정책의 장애물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정보통신기술을 적극 독려해왔고 산업은 그런 정책의 수혜자였다.
기술혐오의 기원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 어느 지역에서나 나타나는 일반적인 기술에 대한 위험인식이다. 정보통신기술은 빠르게 그리고 위력적으로 현대문명의 토대를 구축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정보통신기술이 개인의 삶의 방식을 변형시키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 기술을 신뢰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상태이다. 인터넷은 정보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에 다리를 놓아, 더 이상 지리적 언어적 경제적 장벽 때문에 그런 불평등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새로운 희망을 제공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약속에 대해서 회의하고 있다.[2]
인터넷기술은 근대문명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 생산시스템의 진화의 결과이다. 그러한 기술시스템은 국가시스템만큼이나 그 자신의 자율성을 위해서 인간의 독자적 주체성을 지속적으로 소거시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런 만큼 인간과 기계의 상호적 관계가 지속될수록 인간의 자기통제성이 위축될 위험이 언제나 존재한다.
게다가 인터넷기술은 상당한 정도의 기술훈련과 리터러시를 요구하고 있고, 그런 조건에 부응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인터넷기술로 인하여 기존의 사회적 격차는 더 증폭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인터넷기술로 인해 개인정보 및 감시 문제와 같은 사회적 의제도 더 심각하게 부상하고 있다. 인터넷기술이 국가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증하기보다 오히려 시민을 통제하는 강력한 도구로 작동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졌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인터넷/게임중독’ 관련 논문들이 인간과 기술적 인공물 사이에 형성되고 있는 강한 관계를 약물과 같은 수준의 위험물로 표지한 것은 일종의 기술에 대한 위험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중독‘개념은 인터넷 기술을 ’위험한 것‘으로 표시함으로써 사회적 경고를 보내는 효과가 있다. 특정 기술을 그 자체로 독성물질로 표지하겠다는 의도는 과장된 것이긴 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문제의식을 표출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지역맥락적 위험인식이다. 특히 중국 및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대체로 국가주도로 첨단기술을 수용하고 장려해왔고, 그 과정이 매우 급격하게 이루어지면서 기술혐오가 더 강하게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1994년 정보통신부를 신설하고 국가정보화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함으로써, 5-6년 정도의 짧은 기간 내에 전국을 정보통신망으로 연결했고, 거의 전 국민이 정보통신기술을 익히고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부는 기술도입과 기술정책 결정과정에서 소수의 전문가들과 협의하였을 뿐 일반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경로를 고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럴 가능성을 배제함으로써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고, 신속하게 기술정책 추진을 담보할 수 있었다. 국가는 그런 기술관료주의 문화에 익숙했고, 때문에 새로운 기술에 대한 비판적 접근은 거의 부재했다. 새로운 기술을 수용하지 않거나 느리게 반응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에 뒤쳐지는 것으로 낙인찍히는 것이었다.
일반 시민들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자연스러운 이해와 자기결정을 수행해 나아갈 기회와 시간을 박탈당했다. 국가주도의 신속한 기술정책 추진 과정에서 시민들은 그 기술사용을 스스로 결정하거나 해석하거나 비판하는 주체로서 설정되기 보다는, 그 기술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졌다. 그 기술이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변형시키는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수동적 대상으로서만 행동하길 강요받았다.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인터넷/게임중독’ 개념의 확산은 하향식으로 이루어진 급격한 기술수용 과정에서 잠재해있던 저항의식 또는 부작용의 표출이었다고 볼 수 있다.
부수적으로 인터넷/게임산업은 정부가 추진하는 정보통신기술정책에 직접 참여하거나 지지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인터넷/게임산업의 급속한 성장은 그러한 정부주도적인 급진적 정책추진이 가져온 혜택이었으므로 그들 역시 국가주도의 기술정책에 관해서는 동조자라고 할 수 있다. 정부도 기업도 전문가들도 기술도입과 경제성장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새로운 기술환경 아래에서 의사결정 주체로서의 시민의 지위문제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 과정에서 누군가가 인터넷기술을 ‘독’을 표지하는 주장을 했고, 시민들은 인터넷기술에 대한 비판적 훈련을 경험하지 못했던 만큼, ‘인터넷/게임중독’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비판적일 수 없었다. 오히려 그 용어가 넓게 포섭하고 있는 인터넷기술에 대한 잠재적 불신에 동조하고자 했다. ‘인터넷/게임중독’ 논쟁의 배경에는 인터넷기술이 적절한 담론과정을 통하여 비판이 수행되고, 시민참여적으로 관련정책이 결정되며, 관련된 위험문제가 해소되는 과정을 거치지 못했던 사회적 함축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신속한 국가주도 기술도입이 추진되었던 반면에 기술에 대한 비판담론과 자기결정 과정이 상대적으로 더 부족했다.
마지막으로, 기술전문가 또는 기술기업의 태도는 대체로 합리주의에 근거하고 있었고, 그것은 기술혐오를 더욱 가중시켰다. 합리주의는 대중에 대한 우월주의와 결합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선진적 기술을 지향하는 기술관료들과 기술전문가들은 언제나 비기술 사용자에 대한 폄하의 발언과 태도를 취해왔다. 직접적인 발언은 아니더라도 다수의 발언들을 통하여 기술전문가들은 대중의 기술에 대한 무지를 비난해왔다. 주로 인터넷/게임 규제론자들에 대한 발언에서 자주 드러나곤 했다.
기술전문가 및 기업집단의 반응을 경험하면서 일반 시민들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희망만큼이나 우려와 이질감을 품었을 것이다. 사실 합리주의는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전통적인 사고만큼이나 편향적이기도 하다. 오히려 때때로 합리주의는 맥락적 지식을 제거함으로써 더 심각한 오류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상과 같은 점에서 볼 때 기술혐오는 기술에 대한 무지라기보다는 기술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터넷/게임중독’ 개념의 타당성은 은유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하며, 법률규제의 근거로 차용되어서는 안되지만, 그 논쟁 속에 포함되어 있던 기술혐오는 정당한 것임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김지연>
[1] 한국정보화진흥원, 2010, 주요국의 인터넷 중독 해소 정책 및 시사점, CIO REPORT Vol. 23, ISSN 2092-6944.
[2] Kranich, Nancy 2004, ‘Libraries: The Information Commons of Civil Society’, Shaping the Network Society ; The New Role of Civil Society in Cyberspace, edited by Douglas Schule r& Peter Day, The MIT Press.
[3] 강신규 외, 2013 “게임포비아”, 커뮤니케이션북스.
[4] 모상현·장근영·이장주, 2012 “디지털게임에 대한 이미지 분석 연구”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게임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