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계속 오니까 풀들은 더 싱싱해지는데, 나는 조금만 걸어도 무릎이 뻑뻑해짐~
다행히 오늘은 약간 햇볕이 날듯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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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속의 발화주체, “우리”
바커와 갈라신스키의 “문화연구와 담론분석(2009)”은 1990년대 중반 미중앙정보부(CIA)의 신조(credo)를 분석하고 있다. 아래는 그 신조중 일부이다.
We are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 We produce timely and high quality intelligence for the President and Government of the United State. We provide objective and unbiased evaluations and are always open to new perceptions and ready to challenge conventional wisdom. ---(중략)---
We believe our people are the Agency’s most important resource. We seek the best and work to make them better. We subordinate our desire for public recognition to the need for confidentiality.
이 문장에 대한 저자들의 분석은 흥미진진하다. 요약하면 이렇다.
이 신조의 모든 문장구조가 능동태 현재형의 선언적 형태이다. 이는 외부세계가 CIA를 책임 있는 집단으로 보게 하려는 것이다. 이어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자산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우리의 직원들이라고 믿는다”는 문장을 좀 살펴보면, 여기서 ‘우리(we)’는 ‘직원들(people)’이 아니다. ‘우리’와 ‘직원’은 다른 존재이며, 그들 사이는 소유관계이다. 그러므로 이 신조에서 주어가 되는 ‘우리’는 중앙정보부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이 아니라 ‘상급직원들’이다[1].
주어(‘우리’)와 종속문장의 주어(‘직원들’)가 동등한 지위가 아니라 종속적 관계라는 분석은 탁월하다. 텍스트 상의 관계가 현실의 관계를 재현하고 있다는 것을 통찰한 것이다. 다만 ‘우리’는 ‘상급직원들’이라고 단정한 것은 못내 아쉽다. 왜 주어(‘우리’)가 반드시 사람이어야만 하는가? 명백히 최초의 문장에서 “우리는 중앙정보부이다”라고 밝히고 있는데 말이다. 이 신조의 발화주체(speaking subject)는 ‘중앙정보부로서의 우리’이다. ‘우리’라는 표현은 중앙정보부를 의인화한 표현이다. ‘우리’라는 자칭은 이 글을 읽을 대상이 인간이기 때문에 사용된 배려일 뿐이다.
CIA 처럼 어느 기구(시스템)이든지,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그 때 흔히 독자들은 ‘우리’가 자신과 같은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그 조직의 사람들이거나 적어도 그 조직의 수장이거나 최고위 집단일거라고 간주한다. 그러나 그들 조차도 그들의 하급직원들과 마찬가지로 그 조직이 소유하고 있는 ‘자원(resource)’일 뿐이다. 만약 상급직원이 ‘우리’라면 상급직원 중에서는 그 기구의 목표와 가치에 반하는 자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언제나 그렇지 않다. 국가기구의 수장들 중에는 자기 조직의 가치를 스스로 저버리는 행위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의도하지 않게 그런 일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그 조직의 창조자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에디슨은 전기시스템을 발명했지만, 그가 직류표준에 집착할 때 그의 회사는 교류표준회사에 투자를 결정했고 결국 에디슨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었다. 시스템은 어느 순간 자신의 창조자로부터도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행동한다.
잘 알고 있듯이, 기구는 그 기구 내의 사람들을 전부 합한 것과 등치가 되지 않는다. 기구는 그 기구 내의 사람들 모두의 이해관계와도 일치하지 않는다. 물론 외부의 사람들 보다는 일치성이 더 높을 수는 있다. 하급직원보다 상급직원이 더 일치성이 높을 수도 있다. 그 기구(시스템)가 그런 사람(자원)을 선택했을 것이고, 오랜 훈련을 통하여 자신의 사람들을 자신의 가치에 조응하도록 변형시켰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반대로 기구(시스템)도 인간(사회)에 의해 구성된다~)
기구(시스템)의 목표는 그 기구 내의 사람들의 목표와는 다른 자신만의 독자적 목표와 독자적인 행위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CIA의 신조는 텍스트를 통해서 발화주체로서 자신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다. 발화할 수 있는 능력은 주체의 핵심적 특질이다. 발화주체란 동시에 행위의 주체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치 한 명의 인간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기구(시스템)는 인간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어느 순간 인간과 분리되며, 오히려 인간에게 상당한 영향을 행사한다. 그럼에도 그 주체는 인간과는 명백히 상이하다. 그 주체는 사람과 같지 않아서 평소에는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고, 그 실체가 명확히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다소 유령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에 대해 오해하게 된다. <김지연>
[1] 크리스 바커·다리우시 갈라신스키, 2009, 문화연구와 담론분석-언어와 정체성에 대한 담화, 백선기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Barker, Chris & Galasinski, Dariusz 2001, Cultural Studies and Discourse Analysis- A Dialogue on Language and Identity, S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