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일반적으로 기술에 대한 관점으로 두 가지를 언급하곤 한다. 하나는 기술결정론적 관점이다. 이것은 기술이 사회와 독립적으로 자신의 고유한 자율성에 의해 발전한다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기술이 사회의 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고 본다. 대표적으로 린 화이트 주니어는 등자의 발명이 중세사회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관점은 기술의 위력을 새롭게 조망했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 기여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술에 대한 사회적 영향을 폄하했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기술결정론적 관점은 종종 기술에 대한 맹목적 신뢰로 나타나거나, 그와 정반대로 기술에 대한 혐오로 드러나곤 했다. 예를 들어 첨단기술의 개발이나 수용만으로 사회가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 생각이 여기에 해당한다. 정부의 기술관료들은 다른 사회적 요소를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단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것만으로 사회적 풍요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고 강력한 기술정책을 주도하곤 한다. 그런 국가주도 방식의 기술 수용은 대중적으로 환영받기도 하지만, 그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수용대상이 되어버린 대중의 기술혐오를 불러오기도 한다.
기술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은 도구주의이다. 이것은 기술결정론과는 대조적으로 기술 자체에 아무런 독자적 행위성이 없으므로 기술은 가치중립적이라고 간주한다. 기술은 단지 인간의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기술 자체는 투명하다고 본다. 이 주장에 따른다면 총과 같은 무기는 단순한 도구이므로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용도가 달라질 뿐, 총 자체에는 어떤 행위성도 없으므로 총 또는 총의 제작자에게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다. 이 관점은 결과적으로 책임소재를 인간행위자-특히 사용자-에게만 귀속시킨다. 중요한 문제가 일어났다면 그 사용자를 찾아서 그에게 책임을 물어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1]
도구주의는 이성주의 또는 휴머니즘적 사유에 기반한다. 여기서 인간은 다른 모든 것(자연/기술적인공물)을 자원으로만 간주한다는 점에서 비판받고 있다. 인간은 인간에게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자신이 창조한 인공물에게도 역시 그렇다. 예를 들어 원고지를 이용해 글을 쓰던 작가들은 어느 때 부터인가 컴퓨터의 텍스트 작성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원고지가 아닌 상태에서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들은 곧 적응했고, 이제는 다시 원고지 사용방식으로 되돌아가기 어려워졌다. 원고지를 사용할 때와 텍스트 작성기를 사용할 때는 데이터 수집방식이나 과정, 글의 작성 방식도 달라진다. 이것은 사유의 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기술결정론이나 도구주의만으로는 현대의 기술들을 해석하고 그 문제를 분석하는데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최근 기술사회학의 공통 입장이다. 기술이나 인간행위자 어느 한쪽에 책임을 모두 귀속시키는 방식은 해석상의 편의성은 있으나 문제의 해법을 도출하는데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다. 기술결정론이나 도구주의는 모두 편향이지만 또한 모두 부분적인 진실을 담고 있다. 두 관점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두 관점 모두를 배제하기 보다는 두 상이한 관점을 모두 포섭할 수 있는 새로운 해석틀이 시도될 필요가 있다.
정보통신기술이 인간과 인간, 인간과 기계, 그리고 기계와 기계 사이를 안정적으로 연결해주면서, 이제 기술적 인공물의 행위성은 가시적인 실체로서 부상하고 있다. 인간이 인공물을 설계하고 구성하지만, 그 반대로 인공물도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할 가능성이 증가하고 있다. 그래서 특정 인공물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 인공물로부터 받게 될 자기 변형을 승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기술의 사용은 실존의 문제이다.
우리는 어떤 기술을 사용할 때마다 그 기술에 대해 투표를 하고 있는 것과 같다. 우리가 매번 인터넷표준프로토콜(TCP/IP)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 기술에 매번 지지를 표시하는 것이며 그 기술이 우리의 정체성을 변형시킬 것을 승인하는 것이며, 결국 그 기술의 통치에 동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과 기술의 관계는 정치적이다.
[1] 김지연, 2013, ‘인터넷 검색엔진: 사용자의 관심을 흡수하여 전문성을 강화하는 기술’, 과학기술학연구 13권 1호, pp. 181-216.
[2] Pinch, Trevor & Bijker, Wiebe (1989), ‘The social Construction of Facts and Artifacts: Or How the Sociology of Science and the Sociology of Technology Might Benefit Each Other’, in Bijker, W., Hughes, T., & Pinch, T. (eds.), The Social Construction of Technological Systems, The MIT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