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조카에게 “세 명의 죄수” 퀴즈를 냈다. 얼마 전 세미나를 하면서 내가 정확하게 이해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던 문제였다. 조카에게 뭔가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무나 붙잡고 주저리주저리 말하다 보면 말하는 과정에서 나 스스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였다. 처음에는 말로 상황을 얘기해주고, 이어서 아래 지문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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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죄수(Three Prisoners)
고대 그리스의 궤변론에서 나온 이야기. 감옥에 세 죄수가 있었는데 하루는 책임자가 그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여기 둥근 원판이 다섯 개 있는데, 세 개는 흰색이고 두 개는 검은 색이다. 내가 이것을 섞어서 너희들 등에 붙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각자 남의 색은 알 수 있지만 자기 색은 모른다. 이 중에서 흰색이 자기 등에 붙었다고 가장 먼저 생각한 자에게 그 이유를 듣고 석방해 주겠다.” 책임자는 이렇게 말하고 그들의 등에 모두 흰색만을 붙이고 검은색은 감추었다. 세 죄수는 한참 생각에 잠기다가 한꺼번에 문을 나섰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댔다. “만약 내가 검은색을 붙였다면, 다른 두 사람은 즉각 문을 나섰을 것이다. 그런데 모두들 머뭇거렸다. 그러므로 내가 흰색이 분명하다.”
라캉은 이 이야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위의 경우 세 가지 배합이 가능하다. 모두 흰색이거나 검은색 둘에 흰색 하나, 아니면 흰색 둘에 검은색 하나일 것이다. 이때 죄수는 다른 두 사람이 머뭇거리는 행동을 보면서 자기가 흰색이라는 미리 앞당긴 가설(즉 中略, syncopation)을 순간적으로 확인한다. 결국 모든 논리 과정은 타인과의 관계를 배제하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논리적 과정은 시간적 구조(남들을 살펴보는 시간)를 가지며, 또 논리적 진리는 타인과의 합의 속에서만 파악될 수 있다고 결론내린다. [출전: 멜컴 보위의 “라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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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카에게 “여기서 문제는 원반을 색깔을 맞추는게 아니야. 우리는 세 개 모두 흰색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문제는 죄수들이 그걸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거야. 죄수들이 자신의 원반 색을 맞출 수 있었던 과정을 설명해봐, 고모도 잘 이해가 잘 안되서 그래, …….지문을 보면 상대방이 머뭇거리는 걸 보면서 알게 되었다고 나오는데……그렇다고 하더라도..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거든………죄수가 각자 상대방의 등에서 흰색 두 개를 봤을 때도 머뭇거리겠지만, 흰색 하나와 검은색 하나를 봤을 때도 머뭇거릴텐데…그것만으로 자신이 흰색이라는 추론이 어떻게 가능한 거지? (얼마 전 세미나에서 동료 연구자가 내게 했던 질문!)”
30분쯤 후에 조카가 알았다면서 왔다. 이렇게 빨리 설명할 수 있다니 설마!했다. ….. 조카는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A야, 나는 B와 C의 원반이 하얗다는 걸 봤어. 이제 나(A)는 B가 되어 생각해보는 거야. [헉! 나는 순간 놀랐다. 타자의 관찰을 상상한다! ] 우선 B가 ‘내(A) 등에서 검은 원반을 보았다’고 해보는 거야. B는 C의 원반이 희다는 것을 나(A)와 동일하게 봤겠지. 그 상태에서 B는 자신의 원반이 흰색인지 검은색인지 아직 알 수 없는데….B는 계속 생각하기를…. 만약 C가 B의 등에서 검은 원반을 봤다면, [그런데 B가 A의 원반이 검은색임을 보았다는 전제가 있으므로] C는 무조건 흰 원반이기 때문에 C는 자신이 흰 원반임을 알고 즉각 나가야 한다. 그런데 C가 나가지 않고 머뭇거리므로, A와 B 중에 하나는 반드시 흰 원반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 순간 B는 자신의 원반이 흰색임을 알고 즉각 나가야 한다. 그런데 B도 머뭇거렸다. 그렇다면 B는 A(나)의 등에서 검은 원반이 아니라 흰 원반을 본 것이다. [즉, B가 ‘내(A) 등에서 검은 원반을 보았다’는 최초의 가정이 틀렸음이 증명된 것이다!] 그렇게 각각 세 죄수는 동일한 과정을 거쳐 자신이 흰 원반이라는 것을 모두 알아냈다.” [이상은 조카가 말하고 내가 ‘잘’ 정리함]
나는 조카의 설명을 단번에 알아듣지도 못했다. 다만 ‘A가 B가 되어 상상한다’는 것이 매우 핵심적인 힌트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설명해줄 것을 부탁했고, 두번째 듣고서야 이해가 갔다. 조카는 특별히 뛰어나지 않는 보통의 중학생(2학년)이다.
“너 어떻게 그런 생각했어? 나도 정말 몰랐던 거거든!” 조카가 좋아한다~그냥 그림을 그려서 생각하니까…알게 됐었단다. …………조카가 자신의 생각을 내게 설명하던 순간, 조카는 완벽하게 A가 되어서 B의 생각 속으로 뛰어들었고, B의 생각 속을 헤집어서 모든 것을 얻어낸 다음 다시 A의 자리로 되돌아왔다. 나에게는 분명히 그렇게 보였다.
조카는 모두 흰원반임을 이미 알고 있던 현실의 자신과 부분적인 사실만 아는 가상의 자신(A)을 ‘완전히’ 분리해서, 현실의 자신을 잠시 유예시켜 놓았다. 반면에 나는 '완벽하게’ A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B의 생각 속으로 완전히 뛰어들 수도 없었던 것이다.♤
아 선생님 조카분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천재인거 같아요^-^
다른것보다 삼십분을 한문제를 파고들었다는 얘기인데 이건 대단합니다
조카분이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와 황농문 선생이 말하는 몰입flow 상태에 들어간것 같습니다.
조카분이 부럽습니다^^
이준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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