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주체(speaking subject)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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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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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1, 2012, 5:42:12 AM1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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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이 딸랑 5명인지라, 시험삼아 가볍게 메일링 날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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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주체(speaking subject)에 대해


우리는 ‘주체(subject)’라는 개념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말하는 주체(speaking subject)’란 무엇인가? 당연히 주체란 말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굳이 말하는 주체라고 다시 언급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우리는‘말하는 주체’란 개념을 보며, 그 동안 우리가 주체라고 인정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주체성을 부여하려는 전조를 느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개념은 우리가 그 동안 주체라고 인정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주체성을 인정하려는 시도라고 보인다.

 

“폭넓게 말해서, 사람, 개별인간, 인간주체라고 불리는 주체(subject)는 즐거움과 고통을 경험하는 주체성의 장소(a locus of subjectivity)이다주체는 (필수적으로) 시간과 공간 안에 존재하고, 유한하고 죽음이 운명지어진 채 체화된 것이다. 반대로 말하는 주체(speaking subject)는 하버마스의 유명한 이론에 따르면, 언어적 주체이고, 기호화된 주체이고, 진실과 권위 그리고 이해가능성이 발생하는 책임의 장소(a locus of responsibility)이다. 말하는 주체는 반드시 체화되거나 유한하거나 죽을 운명인 것은 아니다. 이는 논쟁적이긴 하다.(Trevor Pateman, The Subject and the Speaking Subject)

 

 여기서 ‘말하는 주체(speaking subject)’는 말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예술작품이거나 프로그램 코드일 수 있다. 사람은 언어로서 자신을 표현한다. 자아를 언어로 표현하고 자신의 존재를 언어로 선언하는 한 그 사람은 말하는 주체이다. 그런데 언어적 주체이며 기호화된 주체로는 인간만이 아니라 미술작품이나 연주곡 그리고 소프트웨어도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그것들은 종종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만큼이나 주도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며 선언한다. 프루스트는 이미 베토벤 4중주의 자율성(autonomy)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천재의 작품이 금세 찬탄을 받기가 어려운 것은, 그것을 쓴 천재 자신이 상규에 벗어나고 거의 모든 사람이 그와 비슷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을 이해할 줄 아는 뛰어난 정신의 소유자를 만들어 내어, 그것을 길러 내고 중식시키는 것은 그 작품 자체이다. 베토벤 사중주곡( 12·13·14·15), 그것을 이해하는 대중을 낳아, 기르는 데에 50년이 걸렸다. 그리하여, 모든 걸작이 다 그렇듯이, 예술가의 가치, 아니 적어도 지식인 사회에-이 걸작이 맨 처음 세상에 발표되었을 때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오늘날 그것을 애호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널리 구성되어 있는 지식인 사회에-진보를 초래한 것은 바로 베토벤의 사중주곡 자체이다. 사람들이 일컫는 후세란 작품의 후세를 말하는 것이다. 때문에 작품 자체가(이야기를 간략히 하기 위해, 몇몇의 천재가 동시대에 배출되어, 평행적으로 미래를 위해 보다 나은 대중을 마련하고, 그리고 그러한 대중으로부터 다시 다른 천재들이 혜택을 입게 되는 경우는 잠시 제쳐놓고서) 그 후세를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꽃피는 아기씨들 그늘에서1, p. 150)

 

프루스트의 말처럼, 예술작품은 자신의 언어로 관객을 끌어들이고 교육시키고 단련시키며 관객의 몸 속으로 침습해 들어간다. 그 과정을 통하여 관객은 그 예술작품을 이해할 수 있고 즐길 수 있게 된다. 자신의 관객을 끌어들여 작품과 관객 사이의 관계를 창출해낼 수 있는 것만이 예술작품이 된다. 그 순간 예술작품은 ‘말하는 주체’가 된다. 그 작품과의 관계에서 관객 역시 ‘말하는 주체’로서 작동한다. 예술작품과 관객은 서로 직면하는 순간 등가의 것이 된다. 둘 다 기호학적인 차원에서 말하는 주체로서 위상을 가진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게임 프로그램에도 적용된다. 온라인게임은 자신의 언어 형식으로 무수한 이용자들을 끌어들이고 교육시키고 단련시키며, 이용자들의 몸 속으로 침습해 들어간다. 물론 이용자들의 행위도 그 게임시스템 속으로 침투해 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그 게임은 자신의 이용자와의 관계를 창출하고 말하는 주체로서 작동하며, 이용자들은 그 게임을 이해할 수 있고 즐길 수 있게 된다. 동시에 말하는 주체들-, 게임과 이용자들-사이의 무수한 상호적 관계는 고유한 시공간의 장(field of space-time)을 발생시킨다.  -김지연, 가톨릭대 SSK 연구교수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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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30, 2013, 6:34:32 PM12/3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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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전 메일링에 등장했던 "말하는 주체"에 대해 조금 덧붙이기 합니다. 
이 개념이 하버마스 보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는군요. 

라캉은 주체개념을 "언표의 주체"와 "언표행위의 주체"로 분리했는데, 
언표주체란 타자에 의해 보여지고 식별되는 주체를 말합니다.  
누군가의 이름, 또 그에 대한 평판과 그의 모습은 그자신 자체가 아니라 기표이며 이 기표가 그를 대신합니다. 
그래서 언표된 주체라고 부릅니다.

언표행위의 주체는 기표화되지 못하고 소거된 존재의 부분인데. 
라캉은 주체가 자기자신을 기표에 의해 대변되도록 수용하는 대가로 불가피하게 자신의 소거를 승인했다고 표현함.
기표의 질서 자체가 모든 존재를 표현할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임.

(이런 개념 이해할 때 온라인게임에서의 경험이 많이 도움이 됨ㅎ) 

그 소거로 인해 주체는 그자체로 결핍을 안고 있는 존재이며 그 결핍을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욕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언표행위의 주체를 "무의식의 주체"이며 "욕망의 주체"라고 부름. 
이것이 영어식으로 번역될 때 speaking subject가 됐군요. 

제가 요새 데이터감시 문제를 연구하고 있어서 개인정보보호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데, 
여기에 "정보주체"라는 단어가 112번 등장합니다. 
제가 법전문가는 아니어서 장담할 수는 없지만
다른 법에서는 "주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있나요?

계속 고민 중...........오늘은 여기서 이만 총총.......

시간은 끊김이 없이 흐르는데 
기표는 오늘이 한해의 마지막이라고 하고 내일은 한해의 시작이라고 정의하고 있네요~
새해 복많이 받으시길~ 


[관심있으시면 아래 논문들 참조]

김석, 2008 소외와 분리: 욕망의 윤리가 발생하는 두 가지 결정적 순간, 라깡과 현대정신분석 제10권 제2호. pp 55-76.

문장수, 2009 쟈크 라캉의 주체 개념, 새한철학회 논문집 철학논총 제56집 제2권. pp 39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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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일 월요일 오후 6시 42분 13초 UTC+9, 김지연 님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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